김정일 방중시 ‘용천폭발’ 트라우마 재발할까?

2004년 김정일은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용천역 폭발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항공기 테러를 우려해 장거리는 열차를 고집하고 있는 그에게 용천역 폭발 사건은 열차도 100%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을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관측을 뒤업고 2006년 1월 다시 열차편을 통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용천역 폭발 규모는 1000kg 중량의 폭탄 100개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맞먹는 위력이었다. 당시 폭발로 용천 시민 150여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이 김정일의 심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인구가 13만 명 수준인 용천은 도심지 인구가 6만 명 정도이기 때문에 이 폭발사건으로 용천의 도심 인구의 5%가 피해를 입었다. 


북한 당국은 이와 관련 “질산암모늄 비료를 실은 ‘화차와 유조차를 갈이하던 중’ 부주의로 인해 전기선에 접촉, 폭발사고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가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는 용천역 폭발 사건에 대해서 북한 당국의 보도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일부에서는 “김정일에게 일가 전체가 수용소로 끌려간 고 씨 성을 가진 80대 노파가 30년 동안 폭탄을 모아 김정일에게 보복테러를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신의주 출신 탈북자 A씨는 “용천 폭발은 원유가 아닌 비료의 질소가 폭발한 것”이라며 “김정일이 탄 열차는 용천역을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 경호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용천폭발사고는 김정일을 노리고 폭발물이 설치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북한 기술로 만들 수 없는 소형폭탄들이 장착돼 있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테러장비들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그는 “김정일 참가 행사에 폭발물이 3~5개씩 발견된다”며 김정일 참가 행사에 폭발물이 나온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대단한 센세이션이라고 여기겠지만 호위병들 사이에서는 “이번엔 몇 건 나와?” “오늘은 얼마 안 나왔어. 두 건 나왔어”라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이어 “용천 사고 당시에도 ‘중앙당 서기실 특별서기’라는 직제에 있는 무속인이 두 시간 후에 떠나라고 말했기 때문에 김정일이 생명을 건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은 오래전 제도적으로 무당 등 과거 유습을 모두 없앴으나, 김정일은 일종의 ‘천연기념물 보존 차원’에서 극소수 무당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원인을 ‘부주의에서 온 폭발사고’라고 발표한 북한 당국도 당시 용천역 폭발현장에서 접착테이프가 붙은 휴대폰 잔해가 발견되자 휴대폰이 기폭장치로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 해 주민들로부터 휴대전화 등을 압수하였으며 2004년부터 4년간 서비스를 중단해 왔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임박한 지금 용천역 폭발 사고와 같은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경호대책을 마련할지도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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