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면담 ‘좋은 징조'(?)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이 19일 오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정연한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은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로이고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루트.

그러나 중국이나 남한의 특사가 항상 김 위원장과 면담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결국 북한이 뭔가 ‘선물'(?)을 줄 수 있을 때만 만남이 성사됐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특사 방북 이후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고 제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던 상황에서 당시 임동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 인수위원이던 이종석 현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했지만 김 위원장과 면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임 특보는 김용순 북한 노동당 비서와 만나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를 놓고 심한 언쟁을 주고 받았으며 북측에서는 김 위원장이 지방 현지지도라는 점을 들어 면담을 거부했다.

북핵문제가 불거지고 북한의 반발이 고조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남측 특사에게 별다른 대답을 해주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면담을 피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사는 아니었지만 북한이 지난 7월5일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에도 방북중이던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가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과 함께 김 위원장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미국의 금융제재에 반발해 위기지수를 최고조로 끌어가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우방인 중국의 부총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면담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위원장과 면담이 이뤄진 경우에는 이후 분위기가 면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탕 국무위원의 면담결과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탕 국무위원은 지난 4월27∼28일과 작년 7월12∼14일 두 차례에 걸쳐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졌다.

특히 작년 7월 면담은 6자회담 복귀를 결심하고 난 뒤 이뤄졌고 북측의 적극적인 비핵화와 회담 참여 의지를 이끌어냄으로써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데 밑거름 역할을 했다.

탕 국무위원과 함께 방북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부부장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3년 7월 특사 자격으로 방북,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한 데 이어 미국으로 날아가 딕 체니 부통령을 면담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전하는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미는 이후 중국의 중재하에 한 달여 간 물밑접촉을 계속한 끝에 ‘다자회담 속 양자대화’ 원칙에 합의했고 결국 북한은 기존 3자회담국에 한.일.러가 추가된 6자회담에 북.미 양자회담을 가미한 형식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첫 6자회담을 열 수 있었다.

임동원 특보도 미국의 부시 행정부 집권 이후 북한이 남북관계를 올스톱 시킨 상황에서 2002년 4월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등의 내용을 담은 4.5합의서를 만들어냄으로써 남북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었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방문이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쌍방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문제는 북한이 탕 국무위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 입장을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며 “김 위원장이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하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수위가 아니면 문제해결에 실마리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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