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나 “북미 양자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부 6자회담 복귀를 시사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 절대 불가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다. 얼핏 보면 조건부지만 김정일이 다자회담에 6자회담이 포함된다고 직접 밝힌 것은 진일보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밝힌 조건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사실상 미국과의 양자대화 결과를 전제조건으로 건 것이기 때문에 무늬만 ‘진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까보니 또 껍질이 있는 양파까기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 절대 불가 입장을 내놓으면서 올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과 2차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후 플루토늄 전량 무기화, 우라늄 농축 실험 성공 단계 진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전세계적 비핵화가 진행돼야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북은 핵보유국으로 미국과 군축 협상을 하자는 말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6일 “우리 공화국(북)은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 맞게 자기 할 바를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중 대화를 지켜본 미국의 반응은 신중했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김정일의 발언과 관련해 “우리의 목표로 나아가는 궤도라는 것이 명확하다면 고무적인 것”이라면서도 “중국측으로부터 얘기를 들을 때까지 성격규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식 논평을 유보했다.
우리 당국자들은 미북대화가 북핵 문제와 관련 구체적인 협상이 이뤄지는 공식 회담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아직은 미북대화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현재 북한의 행보대로 라면 기존의 핵무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고 최근 밝힌 플루토늄 전량 무기화와 우라늄 실험 성공단계를 협상카드로 내놓을 가능성이 훨씬 커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김정일이 6자회담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미북대화 결과’를 내건 것을 내용적인 진전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번 방북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북핵 협상의 큰 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고 대화모드 진입을 주도했다는 데 자찬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도 않고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확보한 것은 북한의 퇴행적인 행동에 보상을 해준 것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의 후퇴로 비칠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은 6자회담 복귀 가능성 입장만 밝혔을 뿐 북핵 상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김정일은 원 총리가 방북한 4일 순안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갔다. 두 사람은 북한판 ‘홍루몽’을 같이 관람했고, 5일에는 집체극 ‘아리랑’을 함께 관람했다. 이후 북핵문제를 논의했으며 만찬도 함께하는 등 이틀간 총 다섯 차례나 자리를 함께했다.
김정일은 중국 총리를 극진히 대접해 중국의 영향력을 대외에 과시하게 해주고 ‘경제 이익’이라는 실리를 챙겼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중국의 정확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미북 대화를 앞두고 중국과 북한 간의 사전 간보기 대화는 끝났다. 북한의 진의가 드러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