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덩샤오핑 ‘南巡코스’ 밟나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南巡) 코스를 밟는 것같다.”

상하이(上海)의 한 외교소식통은 1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극비 중국내 행보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다.

현재까지 포착된 정보와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 위원장은 상하이-우한(武漢)-허페이(合肥)-광저우(廣州)를 거쳐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후 정확한 이동경로가 밟혀지겠지만 이 코스는 1992년 1월부터 시작된 유명한 덩샤오핑의 남순코스와 비슷하다. 시기적으로도 거의 같다.

이러한 점에서 일반의 예상과 달리 중부 내륙도시인 우한을 들른 이유가 설득력을 갖는다.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은 덩샤오핑이 남순을 시작한 우창(武昌)이 포함돼있다. 우한시는 우창, 한커우(漢口), 한양(漢陽) 세 지구로 돼있다.

1992년 1월18일 새해 벽두 당시 88세의 덩샤오핑은 노구를 이끌고 이른바 남순에 나섰다. 그는 먼저 후베이성 우창을 찾았다. 이어 광둥(廣東)성 선전과 주하이에 이어 상하이를 시찰했다.

그해 1월18일부터 2월21일까지 진행된 남순을 통해 덩샤오핑은 중국의 나아갈 길을 확실하게 제시했다.

“고양이가 검든 희든 무슨 상관인가,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지”라는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제창한 것이 바로 남순을 통해서다. 덩샤오핑은 가는 곳마다 대중을 상대로 연설을 하며 메시지를 던졌다.

덩샤오핑의 남순은 미묘한 시기에 이뤄졌다. 1989년에 일어난 톈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방황하고 있었다. 그가 남순을 결심한 것은 바로 이런 중국의 방황을 끝내고 중국 사회에 대해 전면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건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방간부들을 격려함으로써 시장경제 도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바로 그 내용이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로 정리된다.

남순강화의 주요 내용은 ‘세가지에 유리한(三個有利于) 표준’으로 집약된다. 다시 말해 당시 중국이 처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사상논쟁이 아니라 사회주의 생산력의 발전과 사회주의 국가의 종합국력의 강화, 그리고 인민생활 수준의 제고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이 걷는 길이 사회주의의 길이냐, 자본주의의 길이냐를 따지는 일은 진부하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남순강화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5년전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개벽’했다고 말했다. 상하이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도시이다.

따라서 덩샤오핑이 갔던 그 길을 김정일 위원장이 가는 의미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개혁을 놓고 북한내 논쟁을 종식시키고 확실하게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2001년 상하이 방문 이후 북한의 경제개선조치가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상논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남순강화 이후 15년만에 ‘천지개벽’한 중국의 실상을 북한 주요 인사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도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로 5년전 상하이 방문 이후 북한의 경제실무진들이 상하이나 선전 등 개혁개방의 도시들을 방문해 중국측으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북한 경제의 향후 나아갈 길을 확실하게 제시해주려는 것으로 풀이될 수있다.

상하이의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은 그 시기로 보아 작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권유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때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중국의 발전상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지방일정에 중국 지도부들이 이용하는 7인승 비행기가 동원됐다는 설이 나도는 것도 후 주석의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보여준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른바 ‘남순코스’를 밟고 있는 김 위원장이 앞으로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 그리고 그 파장이 북한의 미래, 나아가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상하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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