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대안세력·사상 마련돼야 혁명 꿈꿀수 있다

현대사에서 성공적인 혁명을 지도한 세력은 체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지식계층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흥미롭게 공산주의 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당은 자신을 무산계급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묘사했지만 공산당 고급지도자들은 거의 다 특권계층 출신들이었다.


레닌은 고위공무원 집의 아들이다. 트로츠키의 아버지는 재정러시아에서 유태인계 지주로 유명했다. 물론 반공민주화 운동 역사에서도 같은 경향을 볼 수 있다. 1989~90년에 동유럽에서 발생한 반공민주혁명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1960년대부터 공산 정권을 친소련 반민주, 반민족 정권으로 본 동유럽 지식인들은 소련의 국내 위기로 저항할 기회가 조성되자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포스트 스탈린 시대의 소련과 동유럽에서 실시된 부분적인 자유화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20여 년 동안 친구들 사이에서 정권을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대안적 사상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반정권 민주 의식으로 굳어질 수 있었다.


현대 북한의 국내 사정을 보면 위에 언급한 시민 혁명의 조건이 아직 너무 무르익지 않아 보인다. 물론 북한 경제는 ‘고난의 행군’ 시대보다 호전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식량이 모자라지만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생활은 이제 아니다. 역설적으로 부분적인 경제 호전은 김정일 정권의 기반을 강화시키기보다 약화를 불러올 것이다. 주민들이 생존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 문제를 고려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혁명이 발생할 조건은 보이지 않고 있다.


첫째, 북한 주민들은 아직 대안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한류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남한에 대한 지식의 유입 및 확산이 세월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확산은 아직 접경지역과 대도시, 특히 이 지역에 체류하는 청년층들에게 국한된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북한에 비해 잘 산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얼마나 잘 사는지 아직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남한 풍요를 초래한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남한과 해외에 대한 지식의 확산은 북한 정권의 기반을 파괴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려면 10~20년 정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북한 내 체제에 대한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때부터 말조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한다. 정부에 대한 항의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들의 두려움은 근거가 없지 않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 정권은 주민에 대한 진압을 어느 정도로 완화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독재국가다.
 
최근에 북한을 자주 방문하거나 북한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대부분은 북한 주민들의 두려움이 옛날보다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북한 주민들은 외국인들과 접촉을 덜 무서워하고 사회적 긴장감도 좀 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북한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셋째로, 북한이라는 국가는 주민들의 자율적이며 자발적인 사회 활동을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한다.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는 물론이고 시장경제의 권위주의 정권과 달리 북한은 학생 동아리라고 해도 문화 단체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이뤄진 단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민 간 수평적 관계 및 네트워크의 형성, 성장을 억제하려고 많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에 자발적인 시장화 때문에 북한에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저항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아직 없다.
 
또한 북한에서 체제를 비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적 사상을 창조, 추구하려는 지식인들이나 그들의 단체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다. 보위부를 비롯한 북한 국가 기관이 이러한 활동을 절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서 혁명적인 사상과 세계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술한 분석에는 문제점이 없지 않다. 세계 역사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독재 정권이 갑자기 흔들리다가 무너진 전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북한 급변사태가 언제든지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김일성 시대부터 전개해온 사회 진화를 보면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을 위협하는 요소는 많다. 북한의 자발적인 시장화가 초래한 해외 지식의 유입 및 확산, 부정부패와 직결된 감시 약화, 장마당에서 조성된 수평관계의 공고화, 컴퓨터와 휴대폰의 대중화 등은 장기적으로 보면 쇄국정치와 절대 감시 없이 생존하기 어려운 체제의 기반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인 결과를 즉각적으로 초래할 수 없다.
 
3대 권력세습이 국내 불안정을 부추길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은 민중혁명뿐만 아니라 권력 층 내부의 충돌이 북한 독재 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렇게 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논의로 미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