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답방’약속 언제 실현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서울 답방은 결국 그의 생전에 이뤄지지 못했다.

2000년 정상회담 합의문인 6.15공동선언 제5조는 `김 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문안을 담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 `피스메이커’를 보면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처음엔 서울 답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막판 `적절한 시기’라는 문안을 수용, 합의문에 담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김 전 대통령 퇴임 전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임 전 장관이 2002년 4월 특사로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은 “남쪽의 한나라당과 우익세력이 6.25전쟁과 칼(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사죄하라 하면서 방문 반대와 반북 분위기를 조성하며 협박하고 있는 판에 서울에 가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고 말했다는 것.

당시 김 위원장은 “제3국에서 만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며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를 장소로 제안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수용 불가 결론을 내렸다. 미국을 비롯해 우방의 오해를 살 수 있고 또 반드시 김 위원장이 남쪽 땅에 와야 답방 합의가 의미있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임 전 장관은 당시 북한 김용순(2003년 10월 사망) 노동당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내 제2차 정상회담을 그해(2002년)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하자고 역제안했다.

그러나 김 비서는 “판문점은 ‘악의 축’이라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미군이 관할하는 지역”이라며 일축했다.

그후로도 김 위원장의 답방건을 놓고 남북간 논쟁은 지속됐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때도 장소는 결국 평양으로 결정됐다.

제2차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답방 문제를 재차 거론했으나 김 위원장은 남한 방문은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미루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김 위원장의 답방 불발은 남북간 합의 중 북한이 이행하지 않은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게 됐고 현재도 언제 성사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김 위원장은 19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애석하게 서거하였지만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