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노무현 이용 ‘핵보유국 세탁’ 시도하나?

북한이 핵협상 전략의 윤곽을 대강 드러내는 것 같다.

25일 도쿄신문은 북한이 지난 16~17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비핵화 실무회의에서 핵무기를 신고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협상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또 북한은 신고 대상으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계획, 신고 대상 물질로는 재처리한 모든 핵물질을 제안했으며, 미국이 지적해온 고농축우라늄(HEU)에 의한 핵개발 의혹 해소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고 전했다.

북한은 최근 영변의 5MW 흑연감속로와 핵연료봉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가공시설 등 3곳에 대해 가동정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신문은 비핵화 실무회의에서 핵무기와 영변 이외의 시설에 대해 다른 회담 참가국들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북한측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검토하겠다”고만 대답했다고 전했다.

도쿄신문의 보도가 정확하다면, 이미 예상된 것이지만 북한은 이제부터 복잡한 핵협상 전술에 돌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9.19 공동성명 제1항은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북핵과 관련하여 1)핵개발 프로그램(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 포기 2) 핵시설 폐쇄 3)핵무기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6자회담 관련국은 9.19 공동성명을 모두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편의상 ‘2.13 합의문’으로 부르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즉 9.19 공동성명을 모법(母法)으로 해서 만들어진 베이징 합의문 제2조 2항은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되어 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하여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로 되어 있다.

또 제4조는 ‘초기조치 기간 및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포함한 다음 단계 기간중, 북한에 최초 선적분인 중유 5만톤 상당의 지원을 포함한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이 제공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가 있고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 기간중에, 나머지 중유 95만톤이 제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2.13 합의문)에 신고 및 폐기 대상으로 ‘핵무기’라는 표현이 명기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9.19 공동성명에는 확실히 명기돼 있는 ‘핵무기’라는 표현이 2.13 합의문에 빠진 배경에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딜레마가 일부 숨어 있다.

즉,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이 공식적으로 ‘핵보유 선언’을 하는 등 그해 9.19 당시까지는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말로써 ‘주장’해왔다. 따라서 9.19 당시 관련 5개국은 ‘당신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니까, 그러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고 NPT-IAEA 체제로 복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2.13 합의문은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행동’을 하고 난 다음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핵무기’라는 표현을 여기에 명기할 경우, 북한이 ‘실제 핵보유국’임을 국제적으로 공인해버리는 ‘증거물’을 만들어주는 결과가 된다. 이렇게 되면 NPT-IAEA 체제가 더욱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을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요 핵클럽이 스스로 나서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국제사회는 아직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핵무기’를 명기하지 않고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시키려 하다보니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되어 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핵프로그램…’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2.13 합의문은 9.19를 이행하기 위한 ‘행동의 원칙’이다. 따라서 북핵 폐기와 관련한 상위 규정(母法)은 어디까지나 9.19 공동성명이다.

2.13 합의의 내용을 규정한 제목도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이다. 비유하자면 9.19가 북핵 폐기를 위한 헌법이라면 2.13은 9.19에 의거한 시행령 같은 것이다.

아울러 9.19, 2.13 어디를 보아도 ‘북한의 핵무기는 신고목록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명기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북한이 과거처럼 문장의 허점을 꼬투리 삼아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9.19공동성명 제1항에 ‘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는 문장을 못박았고, 이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92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공동선언이 이행되어야 한다’고까지 규정해놓았다.

김정일, 노무현 이용가치 높다

그러나 최근 6자회담 한반도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그 일단을 비쳤듯이 북한은 ‘핵무기’라는 표현이 빠진 2.13 합의문 제2조 2항 및 제4조의 ‘모든 핵프로그램'(플루토늄, 농축 우라늄)을 왜곡 해석하면서, 핵무기는 신고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

아울러 북한은 핵무기는 미국과 핵군축 회담이나 평화회담을 별도로 열어서 논의할 ‘미-북간의 군사문제’라고 주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핵프로그램 신고 및 협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에게는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를 요구하고, 관련국으로부터는 95만톤 상당의 중유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2.13 2조 3항, 4항).

아울러 9.19 공동성명 제1조와 3조에 의거하여 한국으로부터 200만 킬로와트 전력을 받고, 나아가 먼저 경수로 제공 논의를 하자고 나올 것이다. 즉, ‘우리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면 앞으로 우리는 평화적으로 핵에너지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 대신 경수로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 예상되는 북한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은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고 ‘핵시설 불능화’ ‘모든 핵프로그램 포기’ ‘미북 관계 정상화 논의’를 매개로 하여 미국의 각종 대북제재 해제부터 경수로까지 모두 챙기려 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보유한 핵무기는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에 의거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실질적 포기를 증명하는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완전 파기, 그리고 미-북 핵군축 협상과 연계하려 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이같은 협상전략이 꼭 성공한다고 보장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일관된 행동은 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고 또 이같은 단계를 지금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 하는 과정이 좀더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같은 전략이 성공하려면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2차 핵실험을 하는 것인데, 지금 미-북간에 분위기 좋은 유화국면에서 돈도 많이 들어가고, 중국도 싫어하는 짓을 굳이 강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좀더 자연스런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10월 2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평양을 찾아온 노무현을 이용하여 이같은 ‘자연스런 과정’을 한번 거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남한에서 어느 신당이 ‘당 세탁’을 한 것처럼 김정일은 노무현을 앞에 두고 ‘핵보유국 공인 세탁’을 한번쯤 거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정일이 대화의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군대에서 핵무기를 몇 개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마치 남의 말 하듯 하면서, ‘하지만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핵무기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조선반도 비핵화, 주한미군 철수 등)는 식으로 툭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이런 발언을 한다면 한국 일본 미국 언론들이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정일 스스로 ‘우리는 핵무기를 몇 개 갖고 있다’고 발언하는 것은 최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종류의 발언은 무엇보다도 김정일이 노무현의 등 뒤에 어른거리는 미국의 부시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김정일은 노무현을 통해 남북경협을 빙자한 경제지원을 듬뿍 받고 한미 동맹을 이간시켜 놓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핵무기는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고, 미국과도 협상이 잘 되고 있으니, 김정일에게는 손쉬운 남북정상회담인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을 지렛대로 이용하여 미국(유엔군 대표 정전협정 당사자)과 서해 NLL 문제를 재협상할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정말로 만에 하나, 서해 NLL을 둘러싼 미-북간 재협상이 현실로써 성립된다면 남한은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에서 완전히 아웃되는 전초전이 될 것이다.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미북 실무 회담, 6개국 장관 회담, 한미 정상회담 등 여러가지 중요한 회담이 예정돼 있다.

한국사회는 12월 대선까지 한반도의 명운을 가늠하는 태풍의 핵 지대로 점점 진입하고 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