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김목사 납치공작원에 포상”

“납치공작 실무지휘자는 지영수”

북한공작원으로 활동하다 작년 1월 입국한 탈북자 이춘길씨(35. 가명)는 16일 북한전문 인터넷 뉴스 dailynk.com 과의 단독인터뷰에서 “김목사 납치 총책임자는 윤창주(2000년 당시 함북 도보위부 반탐처장)이며, 실무지휘자는 ‘지영수’(본명, 당시 함북 회령 곡산공장 보위부장)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또 “실무지휘자 지영수는 김목사 납치성공 후 2000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보위부일꾼대회’에서 북한 최고대우에 해당하는 ‘김정일 명의 오메가 금시계’를 포상받았다”고 밝혔다. 김목사 납치사건의 실무지휘자가 ‘지영수’이며 김목사 납치공작성공으로 김정일 명의의 오메가 금시계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김정일 명의 오메가 금시계’는 북한의 당 군 최고위급이나 대남공작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둔 공작원에게 수여되는 북한 최고예우의 포상방식이다.

이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2000년 11월 26일 내가 평양소재 국가안전보위부 병동에서 퇴원, 12월 3일 함북 회령으로 이동시 나의 신병을 인수한 윤창주로부터 ‘김동식 목사 납치공작은 지영수가 실무지휘했으며, 그 수훈으로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보위부일꾼대회에서 김정일 명의의 오메가 금시계를 수여받았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춘길씨와의 인터뷰는 16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시내 모처에서 dailynk.com과 단독으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이춘길씨와의 일문일답.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을 최초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납치조 일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으로 귀순하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안된 시점인 1999년 11월 18일 중국 선양 영사관에 귀순 신청을 하고 기다렸지만 열흘 후에 신청이 보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선양영사관을 나와 한국으로 가는 밀항 배를 타려고 대련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당시가 12월로 기억된다. 그 때 함경북도 도보위부 반탐처장(함경북도에서 간첩체포 총 책임을 맡고 있던 자로, 이춘길을 지휘하던 담당자) 윤창주에게 전화가 왔다.”

-윤창주와 나눈 통화내용과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해낼 수 있겠나

다음은 이춘길씨가 기억해낸 윤창주와의 통화내용.

윤창주: 지금 연길(옌지) 쪽으로 나올 수 없겠나
이춘길: 왜그러는가.
윤창주: 한국 ‘밥가마’(공작조에서 사용하는 남한국적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하나 사야되겠는데(납치해야겠는데) 거기(연길) 체포조가 손이 모자라서 당신이 가서 좀 도와줘야 되겠다.
이춘길: 내가 움직이면 나하고 ‘같이 있는 사람’(공작대상 지칭)이 나를 의심한다. 몸도 불편해서 못가겠다. (이씨는 공작사업에 이미 회의를 느끼고 한국행을 시도하는 중이라 대충 변명을 했다.)
윤창주: 알겠다

-윤창주의 전화를 받고 한국인 납치정보를 선양 한국영사관에 통보했는가
“곧바로 선양 한국영사관에 전화했다. 영사관 민원실에 전화해서 ‘연길에서 한국사람 납치계획이 있는데 조심하라’고 하니까, 대답이 ‘그 많은 한국사람 중에 누군지 알고 주의를 시킵니까’라고 오히려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김동식 목사 체포 경위는 누구에게 들었나
“이전에 같이 공작사업을 하던 박건춘(보위부 소속)으로부터 들었다.”

-언제 들었는가
“2000년 1월 20일 내가 칭다오 영사관에 귀순신청을 다시 했지만 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청도에서 대련으로 왔다. 대련으로 왔을 때 박건춘에게서 전화가 와서 김목사 납치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박건춘이 먼저 전화를 했나
“그렇다”

-어떤 내용이었나. 자세히 말해달라.

박건춘: 쓰얼링(이춘길 암호 420을 뜻함) 너만 큰 일 한 줄 아는가? 우리도 큰 것 했다
이춘길: 뭐했는데?
박건춘: 한국 ‘밥가마’ 하나 사갔다(납치했다). ‘상품’ 좋은 거다(보위부에서 큰 공을 들인 인물을 뜻함).
이춘길: 누군데?
박건춘: 그 있잖아..한국 목사..김동식이..
이춘길: 상품 마사 안됐나?(탈없이 납치했나?)
박건춘: 깨끗하게 했다.
이춘길: 누구랑 했는가
박건춘: 나하고 영화, 광철, 남수, 용철, 너도 알꺼다..그 여자…
이춘길: 그여자 누구?
박건춘: 그 있잖아. 작년 4월쯤 보위부 그 여자… (그 여자는 김동식을 체포하기 위해 함경북도 도보위부에서 김동식 목사 주변에 침투시킨 인물)

이후 이춘길은 2000년 2월 김동식 목사 납치건에 대해 국내 언론에 제보했다. 당시 이씨가 한국언론과 인터뷰하는 도중 함경북도 도보위부 반탐처장 윤창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내용이었나
“윤창주가 ‘이번에 싸온 밥가마 본명을 확인해라. 그리고 안기부하고 연결됐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했다.”

그후 2000년 2월 3일 이춘길의 제보로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이 국내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후 이춘길은 2000년 7월 18일 중국 국가안전부에 붙잡혀 같은 해 9월 2일 북한으로 이송됐다. 북한으로 이송된 이춘길은 두 달동안 보위부 병동에서 총화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병동에서 김동식 목사의 소식을 듣게 된다.

-어디로 이송됐나
“보위부 2국 305 아지트에 있다가 9월 11일 국가보위부 병동에 입원했다”.

-병동에서는 무엇을 했나
“중국에서 있었던 나의 모든 공작사업에 대한 총화를 받았다. 그 곳에서 총화를 하면서 두 달을 보내고 있었다”.

-김동식 목사 소식은 누구에게서 들었나
“문00 국가보위부 2국장에게서 들었다.”

-어떻게 듣게 되었나
“당시 국가보위부 2국 8처 부처장 심00이 내 총화를 맡아서 진행했다. 그러던 중 11월 쯤에 문00 국가보위부 2국장이 심00 부처장하고 같이 왔다. 나에 대한 총화를 진행하다가 문 2국장이 ‘너도 김동식이 데려올 때 같이 했으면 공화국 영웅이 돼있을 것 아니냐’면서, 납치에 가담하지 않은 것을 추궁했다. 그 때 심00이 문00에게 ‘김동식이 지금 어디있습니까?’라고 묻자 문00이 ‘지금 만경대 초대소에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만경대 초대소가 확실한가
“김동식 목사에 대한 제보를 내가 처음 한국에 알렸기 때문에 유심히 들었다. 확실하다.”

다행히 이춘길은 중국에서의 행적이 들어나지 않아 11월26일 퇴원, 12월 3일 함경북도 회령으로 들어갔다. 회령에서 이춘길은 윤창주로부터 함경북도 곡산공장 보위부장 지영수가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을 실무지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실무지휘와 총책임자는 누구인가
“작전은 1999년 4월부터 준비되었다. 함경북도 곡산공장 보위부장 지영수가 실무책임을 맡았다. 어차피 납치공작은 도보위부 반탐처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니까 결국 최종 승인은 윤창주가 해 준 것이다.”

-지영수는 김동식 목사 납치사건으로 국가 수훈을 받은 것이 있는가
“지영수는 이 사건으로 2000년 10월 장군님(김정일)이 직접 참가한 국가보위부 일꾼 대회에서 명함시계를 탔다. 다른 공작조들도 국가 수훈을 받았다고 했다.”

-김정일이 직접 그 대회에 참가한 사실이 확실한가
“도보위부 반탐처장에게서 직접 장군님이 참석해 시상했다고 들었다. 곡산곡장 보위부장이 그 직위만으로 그런 대회에 절대 참가할 수 없다. 특별한 일을 했기 때문에 참가해서 상도 타게 된 것이다.”

-김동식을 납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동식 목사가 탈북자를 돕는 한편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탈북자 몇명을 다시 북으로 들여보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붙잡힌 것이다. 이 사건을 도 보위부가 ‘기독교 복음 전파를 통한 공화국 전복 음모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건이 이렇게 커지다 보니 지영수가 평양에서 개최된 보위부일꾼대회에서 김정일 서명이 들어간 시계도 받게 된 것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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