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군부 못믿어 핵포기 못한다”

▲ 아래로부터 급격히 붕괴중인 인민군의 충성맹세의식.

7월 26일 재개되는 4차 6자 회담은 북한의 대응 태도에 따라 ‘마지막 협상’이 될지 모른다. 김정일은 과연 완전한 핵 폐기에 동의할 수 있을까? 만약 협상이 결렬된다면 위기상황은 극도로 고조될 것이다.

협상의 결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위기감을 느낀 한국정부는 50만 톤의 식량원조, 전력 공급 계획 등 ‘중대 제안’을 연발하며 김정일 달래기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눈물겨운 노력의 근저에는 ‘체제 보장’이라고 하는 본질적 문제가 놓여있다. 핵 폐기를 조건으로 한•미•일이 공조해 김정일 체제의 존속과 안전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핵만 빨리 폐기했어도 독재체제의 안전은 사실상 ‘보장’ 된다. ‘단순한 최빈국’에 지나지 않는 북한에, 미국이나 일본이 관심을 둘 리 없다. 김정일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김정일 체제의 진정한 위협은 북한의 ‘외부’가 아니고,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미•일이 아무리 체제 보장의 약속어음을 끊어 주더라도 체제 파산의 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극도로 빈곤한 경제상태는 언젠가 민심의 배반을 부른다. 경제 파탄을 벗어나려면 개혁 개방 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 독재체제가 동요, 자멸하게 된다. 암시장을 공인했을 뿐인 ‘개방 없는 개혁’ 아래에서조차, 김정일은 ‘이색적 녹화물•인쇄물’의 유입과 ‘이색적 생활 풍조’의 만연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 북한은 ‘이색생활 풍조’와 전쟁 중 참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핵이 없는 김정일 체제의 안정보장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최빈국 독재정권에 대한 그 나라 국민의 목숨 건 투쟁이 발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제 여론의 관심은 순식간에 북한 주민들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김정일은 여론에 힘입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을 무서워하고 있다. 이것을 막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김정일의 핵’이다.

김정일이 핵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국민의 반란을 진압해야 할 군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선군 혁명’의 용감한 호령과는 정반대로, 인민군은 현저하게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다. 노후화된 구식 무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투에 나가 무기를 다뤄야 할 병사가 완전히 ‘병약화(病弱化)’ 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양 실조의 만연, 거기에 따르는 훈련 부족, 그리고 ‘교육의 질 저하’의 ‘삼중고(三重苦)’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장난감 군인’이 더 이상 의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김정일은 더욱 핵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 잠입을 감행한 탈북자 김만철씨가 입수한 내부 문서와 비밀 영상을 바탕으로 북한 ‘인민군 병약화’의 실태를 알아보자.

▲ 김만철씨가 입수한 ‘청년동맹집중학습제강 2’는 북한 젊은이들에게 군입대를 장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만철씨가 입수한 6통의 문건 중 하나인「청년동맹집중학습제강2」의 표제는 「청년들이 전 세대 청년들처럼 당을 따라 선군 혁명의 천 만리 길을 꿋꿋이 이어 나갈 데 대하여(근로 청년용)」(금성 청년 출판사, 2005년 3월 25일, 24 페이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문건의 마지막 부록에「상식」이라 묶여진 4개의 짧은 글이다. 각 글의 제목은「미국은 왜 이스라엘을 적극 비호하는가」「독일 파시즘 정권이 첫 핵 보유국이 되지 못한 원인」「평화와 비둘기」(피카소 그림의 해설-역자주), 「야스쿠니 참배」이다.

글에서는 이스라엘을 미국 중동 전략의 첨병이라고 평가하고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는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의 암’이라고 말한다. 또 독일인 학자가 ‘세계에서 최초로 핵분열 현상을 발견’ 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정권이 원자 폭탄의 개발에 실패한 원인은 국내 문제에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 4편은 연관 없이 나열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4편을 잘 엮어보면 김정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일본에 대입하고, 히틀러의 실패를 교훈 삼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본 군국주의’와 대결한다는 모양새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김정일의 핵 무기가 조준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명확해진다.

이 문서의 가장 큰 특징은 제2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우는 숭고한 애국의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에 나타나 있는 ‘군입대의 권유’에 나타나 있다.

‘설탕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총탄 없이는 살 수 없다’ ‘선군 시대의 청년이라면 당연 총을 가져 조국 수호의 제 일선에서, 청춘 시대를 자부심 강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 보위 정신으로 강고하게 무장하는 한편, 육체적 준비도 틈새 없게 행해, 현대적인 전투 기술 기재의 취급과 익숙한 군사 기술적 능력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선군 혁명’의 이러한 기치에 따르면 인민군 병사는 ‘필요한 것은 뭐든 아낌없이 주는 철저한 원칙’에 의해 육체와 정신이 강철과 같이 단련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완전히 정반대다.

▲ ‘영양보급’을 위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북한 인민군 ‘영실’ 병사

김만철씨는 이번에 ‘영실’(영양실조에 빠진 병사를 가리키는 북한 용어)에 걸린 인민군 병사와의 인터뷰 동영상 촬영을 처음으로 성공했다. 촬영은 5월 초, 함경북도 청진 역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이뤄졌다.

침대석이 아닌 지정석에 완전히 생기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19세의 병사. 강계시(자강도의 도청 소재지) 출신으로, 입대 후2~3년째에 영양 실조로 입원했지만, 변변한 치료(=급식)도 받지 못해 누나가 있는 친가에 ‘영양 보급’을 위해 일시 요양 가는 중이다.

김만철과 병사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김 – 밥은 먹었는가.
병사 – 먹어도 소화할 수 없습니다. 내장이 안됩니다(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김 – 병사인데 부대에 보내지 않고, 왜 친가(본가)에 가나.
병사 – (부대에는) 소금절이(소금에 절인 식품)도 없습니다. 소금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먹습니다. 그것도 몰래 …
김 -그런 몸으로 군무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인가.
병사 –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차량에도 ‘영실’인 병사가 다수 탄다. 결핵이나 영양 실조로 일시 제대하는 병사가 급증한 것은, 계속하는 경제 파탄과 함께 병역 제도의 개혁과 크게 관련한다.

북한 당국은 2003년에 종래의 지원제로부터 강제 징병제로 전환하고, 병역 기간을 7년부터 13년으로 대폭 연장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을 덮친 대기근(95~98년)에 있다. 인구의 10%를 넘는 3백만 명 가까운 희생자의 대부분은 노인과 10세 이하의 아이였다. 병역은 원칙적으로 고등중학교 4학년(16세)때 시작하므로, 2000년대에 들어오면 방대한 아사자의 탓으로 신병(新兵) 부족에 처한다.

김정일은 인민군 2백만 명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강제 징병제와 복무 기간 연장을 도입했다. 동시에 입대 기준을 ‘신장 148 cm, 체중 48 kg 이상’으로 큰 폭으로 완화했다. 일본이라면 초등학교4,5년생들의 체격이다. 아사하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도, 충분히 학교에 다녔던 적이 없다. 통학율은 30% 정도다. 체격이 입대 기준을 넘어도, 읽고 쓰거나 계산도 할 수 없다.

신병의 상당수는 대체로, (김만철씨가 차창 밖에서 찍은) 부랑아에게 억지로 군복을 입힌 차림새이다. ‘강고한 육체’ 등은 꿈같은 이야기다. 간신히 군대에 밀어 넣어도, 군 상층부나 상관이 조직적으로 식량을 횡령해 시장에 부정유출 하는 탓으로, 신병은 1년 내내 배가 고프다. 부족한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훈련을 무시하고 농사일에 매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이렇게 인민군은 완전히 ‘농민군(農民軍)’이 되어 가고 있다. .

이것으로는 ‘현대적 전투 기술 습득’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병역 기간의 대폭 연장에 불만이 쌓인 고참병은 신병 괴롭히기로 울분을 푼다. 이제는 ‘조국 수호의 최전선에서 자부심 강한 청춘을 보낼 수 있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것 같다.

선군 혁명의 시대에 인민군 전용 열차에는 ‘병든’ 병사들만이 수 없이 타게 된다. 이런 인민군의 병든 얼굴을 보면, 김정일은 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대량파괴무기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영화/ 일본 간사이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 오사카 출생(1954)
– 평양 조선사회과학원 유학(1991)
– (現)간사이(關西)대학 경제학부 조교수
– (現)<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대표
– 주요저서<북조선 수용소군도>, <재일 한국, 조선인과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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