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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로 군부대를 중심으로 현지지도를 해왔던 김정일이 핵실험 이후 기업소, 농장 등 경제 시설을 집중 시찰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6자회담 재개 협의 이후 김정일은 일주일에 3차례 이상 왕성한 공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달에만 현지 지도가 벌써 5회에 달한다. 반면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40일간 잠적했던 그는 핵실험을 한 10월에는 3회에 그쳤었다.
김정일은 지난달 총 13여 차례의 현지지도를 했으며, 이중 군부대 시찰은 4회, 기업소, 발전소, 농장 등은 9회로 경제부분을 집중적으로 시찰하고 있다.
그는 함흥시 룡성기계연합, 흥남비료연합기업소, 함흥화학공업대, 함주군 금진강 흥봉청년 발전소, 정평군 금진강구창발전소 건설현장, 광포오리공장 등을 시찰했다. 이어 12월 현재까지 황북 예성강발전소 건설현장, 황북 미곡협동농장마을 등을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선전하면서 “함경남도는 화학공업, 기계공업, 채취공업을 비롯한 기간공업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발전에서 큰 몫을 맡고 있다”며 핵실험 이후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김정일의 활발한 행보는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와 미국의 계속된 금융제재로 고조돼온 위기국면 속에서 북측이 ‘6자회담 재개’ 카드를 던지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는 정세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 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일정정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고조된 위기를 ‘6자회담 재개’‘핵군축’‘선 금융제재 해제’ 등의 이슈를 선점하며 미국 대선이 끝나는 2008년까지 지연전술로 임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선군정치의 일환인 군부대 챙기기에서 경제 시설에 관심을 내보이는 것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예상과 달리 식량지원이 끊기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인민들의 동요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6일 동아일보가 공개한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라는 북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핵무기 개발에 성공으로 미국의 위협에서 벗어난 만큼 이제는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김정일의 활발한 행보는 위기 국면이 진정된 것으로 판단, 앞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어려운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시만 있을 뿐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앞으로 북한은 기존 방향대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북한 내부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11월 북한당국은 ‘핵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공화국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군인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강연회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05년에 탈북한 김진철(가명)씨는 “김정일은 핵실험 등으로 인민생활이 어려우니까 인민들을 챙긴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현지지도를 할 것”이면서 “북한 인민 대부분이 김정일의 이런 행보가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김정일의 현지지도는 독려하는 수준이고 조치라고 해봤자 지시를 내리는 것이 전부”라면서 “여태껏 북한은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력갱생’만 강조해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