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北美관계 일괄타결 타진 나섰나

북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은 북미관계 일괄타결을 희망하는 걸까.

김 위원장이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통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강력히 희망한 사실이 공식 확인되면서 궁극적 목표인 북미수교를 핵폐기와 ‘빅 딜’하기 위한 의사타진에 나선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더욱이 최대 관심사였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자금해제 문제가 해결된 터라 북한의 이런 입장은 대북 체제안전을 보장해줄 경우 북미관계정상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 김부상의 뉴욕 발언 요지 = 김 부상이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 참석차 이달초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차례로 방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 고위관리들에게 밝힌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크게 두가지였다고 한다.

복수의 정통한 고위당국자들 전언에 따르면 하나는 김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과 친서 교환을 원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시 대통령에게 ‘고위급 특사'(high-level envoy)를 평양에 파견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는 것이다.

◇ 北, 부시 친서 원하는 이유 = 미국의 정통한 소식통들은 김 부상이 이번 뉴욕 방문때 수차례 “미국의 대북 메시지가 혼란스럽다는 뜻을 밝혔다”고 확인했다.

힐 차관보가 자신들에게 귀띔한 대로라면 핵폐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 백악관 등 미 수뇌부 기류는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 발표를 앞두고 재무부가 느닷없이 BDA 계좌 동결조치를 발표한 것을 비롯, 북미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을 앞두고 유엔개발계획(UNDP)이 대북사업 중단을 전격 발표한 것을 보면 아직 미국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게 김 부상의 주장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BDA 송금 문제를 이유로 제6차 6자회담을 보이콧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BDA 자금 해제를 공식 발표해 놓고도 송금을 지연시키는 것에 미 수뇌부의 의중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으며, BDA 자금이 북측으로 확실히 넘어오기 전까진 미국을 완전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북한이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북한측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20일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이 실물로 확인된 것이 아니다”며 테러지원국 해제, 대 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 해제 조치를 거듭 요구한 데서도 이런 기류가 감지된다.

고위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요구하는 것은 김 위원장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달라는 주문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 北, 대북특사 요구 배경과 전망 = 김 위원장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핵폐기 문제, 대북 체제보장 등 쟁점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선 고위급 인사의 평양 방문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전언이다.

그러나 미국의 분위기는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는 견해와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으로 나뉜다. 실제 파견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副)장관 중 한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북한은 라이스를 지목하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대북 정책의 주무부서장(長)이기도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거물’이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 부상의 이번 뉴욕 방문때 북미 관리들간에 라이스의 방북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설명이다.

◇5월 초 6자외무회담→5월 중순 힐 방북→6월 라이스 방북(?) = 김 부상은 이번 뉴욕 방문기간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 사례를 여러번 거론했다고 한다.

양국의 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궁극적인 수교를 목표로 한 관계 복원의 구체적 단계들을 논의하면서 올브라이트의 방북 얘기를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0년 10월 북한의 2인자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미국의 올브라이트 장관이 각각 워싱턴과 평양을 방문, 관계 정상화를 본격 논의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올브라이트가 전격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과 회담함으로써 북미 관계정상화 논의의 극적인 계기를 마련했던 것처럼 라이스의 방북을 통해 다시 한번 북미수교 협의의 물꼬를 터보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아닌게 아니라 라이스 같은 ‘고위급’이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평양을 방북하는 것 자체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로 해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도 있다.

고위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김 위원장은 친서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도 우호적인 메시지 전달에 더 의미를 두는 것 같다”면서 “북미 현안을 고위급에서 해결하자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4월 말이나 5월 초로 예상되는 6개국 외무장관회담 이후 힐에 이어 라이스가 방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지만 이는 부시 대통령의 결단을 요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예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일본 NHK는 최근 “북한이 2.13 합의에 따라 4월 중순까지 초기조치를 취할 경우 힐 차관보가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만약 북미 지도자간 친서가 오가고 북한이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중단 조치의 실마리가 풀릴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수교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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