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잇단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국가적 재앙이 닥쳤을 때 중국 지도부는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북한 지도부의 경우 현장에 전혀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2일 쓰촨(四川)성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현장을 누비며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타자 국민들 사이에서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서민 총리’로 불리는 원 총리는 대지진이 발생하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를 거쳐 피해가 극심한 두장옌(都江堰)시를 찾았다. 그는 임시 천막에서 대책회의를 소집하며 첫 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통곡하는 주민들 앞에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달하고 정부 대책을 자상하게 설명했다. 구조대원들 앞에서는 확성기를 붙잡고 분초를 아끼지 말고 1명이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고 독촉했으며, 밤에도 피해 현장을 누비고 다녔고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구호대책을 숙의했다.
하지만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의 경우 사고현장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수백만이 굶어 죽었던 1995~1998년 고난의 행군 시기, 2004년 용천역 폭발 사건 때 김정일이 현지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지난해 8월 수도 평양을 강타한 수해로 사망 454명, 실종자 156명, 이재민 96만 3887명이 발생(북 적십자사 발표)했던 참사에도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에는 지난해 발생한 대홍수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식량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의 어떠한 선전매체도 김정일이 식량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런 김정일이 13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쓰촨성 일대를 강타한 대지진 사태에 대한 재빠르게 애도의 뜻을 전하는 등의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한∙미,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한∙미∙일 삼각 협조체제가 강화되는 추세에 따른 외부적 환경변화에 따른 반사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가 악화 돼 대북 식량지원 등 경제적 지원이 감소하면서 북한이 의존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뿐”이고 “조만간 개최될 6자회담에서 중국의 중재적 역할 등에 대한 절실함을 고려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요청 시 인도지원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선매체를 통해 남한을 향한 반(反)정부투쟁만을 선동할 뿐 전혀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이는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일이 체제유지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은 ‘내부붕괴’를 막기 위한 주민통제와 권력엘리트들에 대한 감시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이기동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의 비정상적인 통치형태를 볼 때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수령의 무오류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부에 큰 재난이 발생했다는 것은 수령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김정일이 재난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오류성을 국내외에 보여주는 것으로 리더십에 대한 훼손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김정일은 일반 주민들이 있는 곳에는 절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김일성 사망 이후 군사부문에 대한 현지지도가 62.6%를 차지할 만큼 군사부문에 대한 현지 시찰에는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고 있다. 올해 공개된 30차례의 동향 중 군 부대 시찰이 총 16회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에 대해 이교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은 본인의 정치적인 에너지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지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고, 같은 연구원의 허문영 선임연구위원도 “김정일은 군부대 방문 등을 통해 강력한 지도자상을 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