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南에 냉담-美에 구애-中에 우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3일 중국 공산당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과 만남을 통해 올해 추진할 전반적인 대외정책 구상을 육성으로 내놓았다.

우선 남북관계와 관련, 김 위원장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맞춰 가는’ 정책을 구사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왕자루이 부장이 남북관계에 중국측 입장을 피력하고 이에 김 위원장이 답변한 것인지 등 이 발언의 전후 맥락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9.5담화’와 올해 신년 공동사설, 북한군 총참모부 성명을 포함해 그동안 김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측이 대남 관계에 대해 주장해온 것들로 미뤄 보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능동적 의지 표현이라기보다는 남한에 해소 책임을 넘기는 말로 들린다. 긴장을 원치 않지만 피해가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왕자루이 부장이 방북에 앞서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김하중 통일부 장관과 만나 남북관계와 대북정책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청취한 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에 대한 답변의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은 올해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존중.이행”이라는 기존 원칙 위에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에 대응을 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24일 “북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남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온 만큼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분석, 성급한 남북관계 개선 전망을 경계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에 대해선 호의적인 메시지를 통해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보였다.

그는 비핵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우리는 6자회담 유관 당사국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 이어 다시 직접 비핵화 입장을 언급한 것은,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에 외교정책의 초점을 맞춰 북한과 `과감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벌이겠다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6자회담 진전을 희망한 대목은 비핵화와 동북아지역 안보대화 등을 위한 6자회담의 효용성을 인정한 것으로,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6자회담의 유용성을 강조한 것에 호응해 6자회담이 동력상실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한 핵협상에 계속 참여하면서 명목상 그 틀안에서 이미 부시 행정부 때 확고해진 북미 양자간 논의구조를 북미관계 정상화에 활용해나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이 그동안 원칙적인 입장을 강경한 어조로 밝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최근 황준국 북핵기획단장 등 남한 관계자들로 구성된 실사단을 수용한 것에서도 비핵화 과정을 이어감으로써 미국과 관계개선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남, 대미 정책을 구사해나갈 전략적 파트너로 김 위원장은 중국을 선택했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중 초청을 수락하면서 “북.중 관계는 과거에도 중요하고 현재도 중요하며 미래에도 중요하다”고 수교 60주년을 맞은 양자관계의 확대.발전 의지를 피력했다.

북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종전체제 종식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주장으로 중국 배제론이라는 해석을 낳아 한때 북.중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었었다.

김 위원장의 중국 접근은 특히 핵협상 과정에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과 중국 틈에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문제에서 만큼은 중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과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과 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기초작업이 될 것”이라며 “북한의 입장에서 중국 일변도로 가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미국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중국과 관계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우기 북한과 중국은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를 `친선의 해’로 설정했기 때문에 양국간 교류와 협력은 연초부터 어느 해보다 활발해질 전망이어서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파트너십을 더욱 자주, 강하게 과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