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친위대 3대혁명소조 부활하나

▲ 김정일 친위대 3대혁명소조원들

최근 북한에서 72년~94년까지 20여 년 동안 김정일의 중요한 당 권력 지지기반이었던 ‘3대혁명소조’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은 “경제부문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이 지난 4년간 1,800여 건의 기술혁신을 이룩하는 성과를 냈다”고 보도했다.

‘3대혁명소조’는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김정일의 당 권력장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직이다. 김일성은 72년 김정일에게 3대혁명소조 운동 발기를 지시, 이후 3대혁명소조는 당시 30세에 불과했던 김정일의 당내 지지기반을 넓여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 지지세력과도 겹쳐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의 권력이 확고해진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으나 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조직이다.

그러다 지난해 4월 “3대혁명소조원들이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파견돼 커다란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는 보도가 등장했고, 올해 다시 한번 3대혁명소조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그 배경에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전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김정일 매제)의 최근 컴백설과 관련, 3대혁명소조가 다시 등장하면서 김정일이 장성택을 재신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장성택은 89년부터 92년까지 당 ‘청년 및 3대혁명소조부장’을 지내며 김정일의 젊은층 지지기반을 확고히 해준 바 있다.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의 지지기반과 장성택 세력이 일부 겹치는 셈.

아울러 물밑에서 진행 중인 김정일의 후계문제와 관련, 3대혁명소조가 다시 후계자 지지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 정성장 연구위원은 지난해 ‘정세와 정책’ 10월호에서 “현재 북한이 후계자 결정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199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이 없었던 3대혁명소조의 재파견”을 든 바 있다.

3대혁명소조에 지나친 찬사

최근 북한관영매체의 3대혁명소조 활동 보도는 지난해 4월과 올해 5월 두 차례다. 지난해 보도에서는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10ㆍ30공장, 평양ㆍ신의주화장품공장 등 북한을 대표하는 공장, 기업소를 비롯 각 농촌의 협동농장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활동지역을 밝혔다.

올해에는 “지난 4년간 1,800여 건의 기술혁신을 이룩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는데, 여기서 ‘지난 4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이 기간 3,320명의 소조원들이 각종 과학기술증서를 받았으며 수백 명이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았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소조원 가운데 3,320명이 각종 과학기술증서를 받았다면 실제 소조원은 그 이상이라는 말인데, 지난 4년 동안 그렇게 많은 소조원이 북한 내에서 활동한 소식이 주민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존재하는 않는 3대혁명소조를 북한 당국이 사회기강확립의 차원에서 조작해내었을 가능성 ▲3대혁명소조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지만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어 일반 주민들에게는 포착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20년간 김정일 친위대로 활동

‘북한판 홍위병’으로 불리는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당의 ‘친위대’로 조직되었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과 김일성고급당학교 학생, 대학을 갓 졸업한 기술자와 사무원 등 ‘젊은 피’를 주축으로 구성, 북한 전역의 주요기관, 기업소, 협동농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관과 조직에 20~50명을 파견했다.

형식적인 목적은 사상, 기술, 문화혁명으로 불리는 ‘3대혁명운동’이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러나 실제의 목적은 하부 단위의 비리를 캐내서 김정일에게 직보(直報), 김정일 앞에 모든 기관과 조직이 무조건 충성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원들을 “당에서 파견한 특사이자 공개된 암행어사”라고 추켜세우면서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맡겼다. 혈기왕성한 소조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당 정책에 위반되는 사항을 낱낱이 찾아내 보고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권력기반을 다지면서 3대혁명소조가 오히려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북한은 기본적인 생산자재와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에서 지시한 생산목표를 완수하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뇌물을 주고 어떻게든 외부 자재를 끌어들여오거나 결과를 거짓 보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거대한 조직이 된 ‘3대혁명소조’를 계속 운영할 만큼 당자금도 충분하지 못해, 1994년 말 조용히 해체되었다.

DailyNK 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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