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축구공’에 목숨버린 北군인 4명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선물을 받는 것이 최고의 영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이 새겨진 고급시계가 대표적이다.

김정일은 군부대 등 현지시찰을 하거나 명절을 맞을 때면 각종 표창과 선물행사를 벌인다. 선물을 받은 개인이나 단체는 ‘김정일의 배려’에 감격하여 충성을 맹세한다.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김일성-김정일은 선물을 통해 수령독재통치를 해왔다.

그런데 그놈의 선물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경우가 있었다. 필자는 18년이 지났지만 축구공 하나 때문에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은 4명의 북한 군인들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들의 나이는 갓 20살이었다.

1988년 봄 어느 날이었다. 황해남도 북한군 제4군단 소속 해안부대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김정일 이름으로 전연지구(DMZ)부대들에 각종 선물을 보냈다. 그중에 축구공도 있었다.

초소근무를 끝내고 휴식 중인 몇몇 대원들이 바다와 가까운 백사장에서 김정일이 하사한 축구공으로 편을 갈라 신나게 축구를 시작했다.

17살에 군에 입대하여 군복무 10년 동안 북한군인들은 휴가 한번 없이 군생활을 한다. 그러니 여가 시간에 축구시합을 하는 것은 최고로 즐거운 일이다.

한참 시합을 하던 중 누군가의 발에 맞은 공이 멀리 바다에 떨어졌다. 해안부대 앞쪽 바다는 파도가 높고 소용돌이가 심했다.

누군가 “축구공을 건져야 한다”고 소리쳤다. 초소장이 먼저 바다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공은 못잡고 파도에 힘쓸려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대원이 그를 구하려 바다에 뛰어 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심한 파도에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대원 두 명이 함께 바다에 뛰어 들었다. 맨처음 뛰어든 초소장은 파도에 휩쓸려 남쪽으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대원 3명도 파도에 휩쓸렸다.

중대본부에 비상연락을 하고 밧줄과 구명환(튜브)을 갖고 왔지만 이미 늦었다. 앞바다는 바다와 강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심한 소용돌이 때문에 초소장과 3명의 대원은 빠른 속도로 떠내려 갔고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동지’가 보내준 축구공

해안부대 대원들은 부대앞 해역이 매우 위험한 곳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목숨을 내던지며 바다에 뛰여 들었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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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다에 빠진 축구공이 반드시 건져야 할 ‘김정일 동지’가 보내준 축구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당시)가 보내준 선물을 목숨 바쳐 구해야 했다. 선물 축구공을 위해 20대 청춘 4명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며칠이 지나 남측 판문점에서 북측 판문각으로 북한군 시체 4구를 찾아 가라는 연락이 왔다. 떠내려간 시체는 서해 군산 앞바다 근처에서 인양되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시체가 되어 중대로 돌아왔고 요란한 장례식을 치른 뒤 중대 뒷산에 묻혔다. 그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당에 충직한 ‘혁명전사’들에게 전사 영예훈장 1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 그리고 전사자로 등록하라고 지시했다.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 축구공을 건지려 바다에 뛰어든 군인이 사망했는데 ‘전사자’로 등록한 것은 지구상 북한밖에 없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구하려다 불에 타 숨진 사람, 구호나무를 지키려다 잿더미로 사라진 군인뿐 아니라 김정일이 하사한 축구공을 구하려다 죽은 군인이 있다는 사실을 북한 외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군대에서 그 일을 겪으면서 ‘김정일 축구공’ 보다 못한 나의 인생이 한없이 슬펐다. 아니, 이것은 필자만이 아닌 북한 전체 주민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18년이 지난 오늘도 축구공보다 못한 2천 3백만 북한주민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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