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정권 있는 한 학문발전 없다”

▲ 북한과학원의 기계공학연구소 연구사들 <북한화보>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인근에서 만난 탈북자 김경옥(가명, 42세)씨. 자강도 출신의 그녀는 중학교 졸업 학력의 농장원이었지만 한눈에 여느 탈북자에 비해 박식해 보였다. 말하는 것도 논리정연했다. 중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RFA)을 꾸준히 듣고 있는 탓도 있으리라. 그런데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인텔리적 태도’에 어린 배경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평양 출생이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자신이 무슨 집안의 출신인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평양에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역시 어느 나라에서 유학했는지는 몰라도, 유학생 출신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공학, 어머니는 의학을 전공했으며 전쟁 시기 유학중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부모가 자강도 ○○군으로 추방당한 것은 1959년. ‘49호대상’(북한에서 ’49호대상’은 현재’정신병자’들로 분류되어 있다)이 되어 발전소 건설현장으로 쫓겨왔다고 한다. 1959년이면 ‘중앙당 집중검열사업’이 있던 때다. 이른바 불순분자와 반역세력을 척결한다는 미명아래 성분분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김경옥씨의 부모도 그때 시범케이스로 자강도에 쫓겨왔다. 평생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을 그들의 부모가 겪었을 고생은 둘째치고, 특히 그의 어머니는 ‘언젠가 세상이 나아지면 다시 의학공부를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몇 번 이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그 두꺼운 의학서적들을 부득부득 우겨가며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나 공부했던 내용을 잊을 새라, 노동현장에서 피곤에 지쳐 돌아온 밤에도 쉼 없이 의학공부를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다시 공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전혀 실현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 공부할 기력도 남지 않은 어머니는 과거 유학시절 연구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과 손때 묻은 의학서적들을 사랑하는 자식인양 쓸어 만지며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이런 것을 계속 간직해봤자 뭐하냐”고 화를 내며 몽땅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내가 사랑하는 것들, 희망의 추억 한가닥을 불태워버린 남편의 심정인들 어떠했으랴.

숱한 지식인들 학문의 꿈 접어

북한에서 숱한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평생 책과 연구실밖에 모르고 살았던 지식인들이 무지막지한 성분개조사업과 육체노동자를 우월시하는 정책에 밀려 탄광으로 건설현장으로 농촌으로 끌려갔다. 터벅터벅 이사를 가는 리어카 위에 젊은 시절 졸린 눈을 비비며 보았을 책들을 한 켠에 쌓아놓고, 자신은 그 옆에 앉아 마치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듯 껴안고 눈물 흘렸을 지식인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밟혀 쏟아지는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김경옥씨의 어머니는 자식들만은 꼭 성공시킨다는 희망만큼은 끝까지 잃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너희는 똑똑한 인텔리겐챠 집안의 자식들”이라고 가르쳤고, 당신들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들은 학교에서 제일 좋은 것을 사입히고 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들은 그녀가 가난하고 성분이 나쁜 집안의 자식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했겠나. 하지만 발레를 배워 당시 가장 우수한 인재만 모인다는 ‘만수대예술단’에 들어가고자 했던 경옥씨의 꿈 역시 ‘출신성분’의 벽 앞에 가로 막혔고, 차라리 농촌에 시집을 가면 집안이라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시골총각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우대받는 일이었으니까.

“김정일 정권 있는 한 지식 발전 없다”

이렇게 해서 북한정권의 ‘지식말살정책’은 완수되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는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나 ‘부모 잘 만난 덕에’ 사는 사람만 남게 되었다. 똑똑한 사람, 소신 있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방으로 쫓겨났다. 그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노동당 깃발에 노동자, 농민, 인텔리가 새겨져 있다는 나라의 현주소이다. 최근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힘들고 지칠 땐 평양에 가보라’는 노래를 지었다는데, 그가 말하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평양’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김경옥씨는 다시 자신의 자식들은 이렇게 살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르치고 길렀다. 그러나 ‘성분’이라는 장벽은 3대가 되어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두만강을 건넜다. 그녀는 지금 “김정일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한에서 지식의 융성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북한은 지난 몇 년간 신년공동사설 등을 통해 ‘과학중시’를 외치고 있지만, 여기서 과학이란 오직 ‘수령을 위한 과학’이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통해 지식인을 학살한 후 우매하고 겁에 질린 대중 위에 법치를 행하려 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성분분류사업을 통해 지식인을 학살하고 유일사상과 선군(先軍)의 총칼아래 수령독재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어찌하랴. 진시황제는 세계의 유산으로 꼽히는 만리장성이라도 남겼으나 김부자(父子)는 3백만의 굶어 죽은 시체밖에 남긴 것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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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삔=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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