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정권 옹호, 위험한 도박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일련의 대북관련 발언은 핵문제에 대한 이른바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의 적극적 표현이다. 노대통령의 발언들은 아주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견제하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인다는 구체적인 실천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순치시키고, 다른 한편 북한은 달랜다는 야심에 찬 목표가 그 것이다.

미국을 순치시킨다는 목표는 일견 성공적으로 보인다. 부시대통령을 비롯한 미행정부의 대북발언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의 ‘체제변형(regime transformation)’을 바란다고 밝혀 ‘정권교체 목표설’을 부인하였다. 부시대통령의 김정일에 대한 원색적 비판도 자제(?)되고 있다. 또한 힐 주한 미대사는 대북한 군사적 수단 사용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달라진 것 없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미국내에서는 정책전환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시행정부가 기왕에 북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거나, 군사적 수단에 관심이 높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한국에서만 부시가 재선되면 북폭이 임박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설들이 난무했을 뿐이다. 정작 미국은 북한에 추가적인 양보조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대북핵정책의 핵심은 불변임을 확인해 주었다.

북한이 대미불신 또는 공포감 때문에 협상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현 정부의 일반적 인식이다. 그러나 지난 6자회담을 분석해보면 북한이 불만을 갖는 대목은 미국의 깐깐한 태도이다. 북한의 제안들을 보면 클린턴시절의 과거 제네바회담과 같이 미국이 적당히 넘어가 주길 절실히 바라고 있음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핵동결만 해도 보상을 해 달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북한의 대미불신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면서 조금만 주겠다는 지나친 탐욕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의 최근 활약이 북한에게는 실속 없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구체적인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진정 바라는 선물은 ‘정권교체에 관심이 없다’, ‘군사공격 의사가 없다’는 외교적 언사 보다는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신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거나, ‘핵동결 단계부터 보상하는 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등의 언질이다. 문제는 이런 대목에는 한국이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핵문제로 북한에 한번 크게 사기를 당했다고 보는 미국은 공화, 민주 할 것 없이 이번에는 깐깐하게 가야한다는 공감대가 매우 확고하다.

한편 노대통령의 북한을 달래는 방식은 주로 북한을 앞장서서 옹호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최소한 남한을 믿고 유연화 되어 6자회담에 나와 핵포기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의 적극적 대변 활동에 고무되어 더 강경하게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버티면 버틸수록 한국의 북한 옹호는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나아가 한미간에 어떤 균열이 벌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볼 수 있다.

북한읽기에 주관 개입

미국을 견제하고 북한을 옹호해주면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현 정부의 전제는 일견 그럴 듯 해보이지만,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모험적 정책이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현 정부의 대북핵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계산과는 다른 결과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시기에 북한은 노대통령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NPT탈퇴, 핵재처리 강행 등 강공 드라이브를 편적이 있다. 이처럼 남한의 관용과 옹호를 믿고(?) 북한이 더 강경한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여기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현 정부가 상황이 보다 선명해졌을 때 정책을 교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북한이 6자회담에 안 나오거나 나오더라도 진전된 제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편의 기대와 더불어 다른 한편 회의감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매우 공개적이고 반복적으로 북한을 옹호해왔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나중에 다른 말을 하게 되면, 자신의 권위도 훼손된다는 계산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의 전제는 주로 북한정권에 대한 그들만의 이해와 관련된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구체적인 사실적 근거보다는 어떤 주관적 바람이 북한의 이해에 개입된다는 느낌이 든다. 나아가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보는 입체적 분석보다는, 한 가지 가능성에 집착하는 편향도 발견된다. 이러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이나, 여하튼 국가정책은 항상 여러 가능성을 놓고 입안되어야 한다는 상식의 회복이 대북정책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홍진표 논설위원 hjp@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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