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정권 對 2300만 주민 대결로 결딴나야 해결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을 보는 여러 전문가, 언론들의 시각을 보면 과거와 좀 달라진 면이 있다. 


만약에 이번 화폐개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일어났다면, 국내 북한 전문가들과 언론의 해석은 어떠했을까? 모르긴 해도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가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했을 수도 있다. 


김정일은 ‘개혁개방’이라는 말조차 싫어하는데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여권 정치인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면 좋겠다’라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섞어 북한당국의 조치들을 객관적 관점(?)에서 해석했었다. 김정일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고 ‘늘 있는 그대로’인데, 그런 조치들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만 ‘개혁개방’도 하고 ‘진보’도 했었다.   


하지만 11월 30일 북한의 화폐개혁을 보는 관점은 비교적 차분하고 합리적인 해석이 대세인 것 같다. ‘시장 통제’ ‘시장 파괴’ ‘중산층 파괴’  ‘시장에 풀린 돈 강제 회수’ ‘민간 부(富)의 정부 강탈’  ‘돈 가진 자 때려잡기’ 등의 해석이 많다.


11월 30일 화폐개혁 첫날의 반응은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경제주의 관점에서 본 해석이 많았고 또 그런 해석이 일정 부분 맞지만, 그래도 이번 화폐개혁을 경제 사건 보다 ‘정치 사건’으로 규정하려는 해석이 우세한 편이다. 


어제(7일) 한반도평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북 화폐개혁 세미나’에서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이번 조치는 북한 정부와 시장 세력간 대결의 첫번째 라운드로, 앞으로도 수차례 반복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느낌이다. 김일성종합대에 유학한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교수)는 “북 화폐개혁은 시장 뭉개기”라는 정확한 칼럼을 썼다.


자화자찬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 저어되지만, 필자는 북한 당국의 여러 조치들을 둘러싼 남한 내부의 해석이 과거와 달라진 데는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데일리NK처럼 북한 내부의 사건사고 등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언론과 NGO가 조금씩 늘어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사실관계(fact)에 충실하게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올바른 해석, 사안의 본질을 꿰는 해석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보다 먼저, 북한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보도’도 가능해진다. 사실 이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소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주지만 팩트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전체적인 그림은 선명해질 것이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보수’니, ‘진보’니 주관적으로 규정하게 앞서, 팩트를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북한의 각종 사건 사고들은 남한 내 자신의 이념성향과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다. 지난 10여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북한문제를 둘러싼 해석에서 ‘천동설(天動說)’로부터 이제 좀 ‘지동설(地動說)’로 옮겨가는 것 같다. 이제 문제의 실체에 접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북한에 시장이 확대되고 돈 가진 자가 늘어나면 가장 불안해지는 장본인이 수령절대주의 독재정권을 지켜야 하는 김정일이다.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기본 뼈대는 수령-당-대중의 수직관계이다. 다시 말해, 북한인민들은 수령의 지도에 따라, ‘장군님의 향도’에 따라 무조건 따라 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과 상거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른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속성을 갖는다. 이같은 개인 대 개인의 수평관계의 확대는 수령-당-대중의 수직체계를 결정적으로 파괴한다. 게다가 돈 가진 자가 늘어나면 권력있는 자, 무력을 가진 자와의 결탁 가능성이 잠재한다. 김정일은 이것을 견딜 수 없다. 시장과 민간의 부(富)를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화폐개혁의 근본 목적은 역시 ‘수령절대주의 독재체계의 보존’이다. 인플레 강제 조정 등은 부차적이다.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유일적 지도체제 등 김일성 수령절대주의 독재체계를 창안한 장본인이고, 독재체계 보존에 관한 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의 각종 대내외 정치행위(political behavior)를 해석할 때, 동심원의 맨 안쪽 핵심(core)은 ‘수령절대주의 독재체계의 보존’으로 파악하고, 그 다음 동심원 바깥쪽으로 차츰 확대해가면서 시장통제, 인플레 조정, 강성대국 선전 등으로 파악해가면 그리 틀리지 않는다. 


‘수령절대주의’라는 용어는 97년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 처음 사용했다. 황위원장이 국가정보원 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였던 2000년대 초, 그는 재미있는 비유를 한 적 있다. 김정일이 김대중 정부에게 돈을 받고 정상회담을 허락해주는 동시에, 중국을 방문하여 ‘천지개벽’ 등의 발언을 하면서 마치 개혁개방 할 듯한 쇼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 정부와 일부 전문가, 언론 등은 북한이 곧 개혁개방할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당시 황위원장은 자신의 심경을 영화 ‘나홀로 집에’에 나온 꼬마(맥컬리 컬킨)에 비유했다. 개구장이 꼬마는 건너편 집을 몰래 망원경으로 보던 중 자신의 집을 노리는 도둑 2명을 우연히 발견하는데, 도둑이 집 근처에 와있다고 형과 부모에게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당시 황위원장은 “김정일의 저 행동은 개혁개방을 하는 척하면서 한국, 중국에게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남한 내부를 둘로 갈라놓으려는 전술”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김대중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것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햇볕론자들은 그런 황위원장을 무슨 ‘수구 극우주의자’로 몰아부친 적이 있었다. 김정일의 그런 제스처의 배경이 무엇이냐가 핵심 사안인데, 엉뚱하게 남한내 보수-진보의 척도로 본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안 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달을 보고 무슨 ‘보수 달’ ‘진보 달’ 하고 있었으니, 청맹과니도 그런 청맹과니들이 없었다.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해보면 ‘북한정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미친북’을 신앙으로 하는 종북주의자들을 논외로 치면, 북한을 전통적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해석하려는 경우가 있고, 김일성-김정일 봉건왕조의 각도에서 바라보는 해석이 있다. 둘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존재한 공산주의 사회의 사례가 중요한 연구 소재이기 때문에 일단은 공산주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 김정일 정권은 2300만 주민 착취계급의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더 정확히 보인다. 


구소련 공산주의는 망했지만, 과거 소련정권은 ‘특권계층’이었지, 주민 착취계급은 아니었다. 구동독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주민들이야 죽든 말든 수령독재정권을 지킬 수 있다면 주민들을 마음대로 죽이는 것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생각한다.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못된 정권이라도 ‘기본적으로는 국민들을 위할 것’이라는 선험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비록 독재자이긴 하지만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하지 않고 미북간 수교를 하는 등 대내외적 조건이 성숙되면 김정일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그렇지 않다. 김정일에게 2300 북한주민들은 ‘인간’이 아니라, 수령독재정권을 지키는 도구로서의 ‘인구’일 뿐이다. 그래서 개혁개방 할 수 없다. 김정일 입장에서 북한주민들이 잘 사는 것보다는 못사는 것이 독재통치에 훨씬 유리하다. 때문에 일반적인 독재사회라면 단계적으로 민주화를 해나가면 되지만, 북한의 경우 결국은 2300만 주민들이 사느냐, 김정일 정권이 사느냐로 양단간에 결딴이 나야 해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김정일에게 ‘부디 청컨대, 개혁개방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할 게 아니라, ‘개혁개방으로 나올래, 핵을 갖고 그냥 앉아서 죽을래, 둘 중 택하라’라고 강요해야 하는 것이며, 북한을 ‘개혁개방의 틀 안으로 밀어넣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김정일 정권은 시간이 흐르면서 죽게 되고, 북한 주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현재 김정일이 가장 신경 쓰는 계층은 군대와 자신에게 충성하는 ‘혁명의 수도 평양 사람’들인 것 같다. 김정일 정권의 종말은 결국 평양 사람들이 김정일에게 등을 돌리는 날이 될 것으로 본다.


이번 화폐개혁이 평양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직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당· 군 ·보위 계통의 사람들이 화폐개혁으로 당장에 손해본 것 같진 않다. 그러나 함경도, 양강도, 평안북도 등의 주요 도시들에서 장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거의 망했다.


김정일은 멀리 보는 전략적 판단보다 전술적 판단이 앞서는 사람이다. 김정일로서는 화폐개혁이 자신의 정권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으로 착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입술(脣)이 망하면 이(齒)가 곧 시리게 된다. 망해가는 기업 3푼 이자 급전 빌려서 이번달 부도 막았다고 해서 그 다음달이 안 오는 것이 아니다. 청진, 신의주, 회령, 평성 등지의 불만은 평양으로 옮겨갈 것이다. 결국은 ‘시간 문제’인데, 그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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