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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진전된 미국과 리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6일 성명을 발표, 향후 45일 이내에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양국 간 외교 관계를 전면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또 1979년 이슬람 시위대에 의해 불타버린 트리폴리 대사관을 다시 개설키로 했다.
그동안 리비아는 북한과 유사한 국가로 비교되었으며 북한의 김정일에 비근한 인물로서 리비아의 카다피가 꼽히곤 했다. 물론 국내 인권 상황을 비교하자면 김정일에 견줄 수야 없겠지만 리비아와 북한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 개발에 있어서 북한이 걸어 온 길과 동일한 방향을 고수했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에 대한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은밀하게 개발을 지속해왔던 왔던 것과 달리, 리비아는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는 물론 핵무기 계획의 완전한 해체를 미국과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양국 관계정상화, 리비아 경제 활력에 새로운 전기
그 후로 리비아와 미국은 속전속결로 관계를 복원시켜 나갔다. 미국은 리비아의 발표에 즉각적으로 화답, 2개월만에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으며, 4개월만에 다시 연락사무소로 격상했다. 이는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2004년 10월, EU는 18년 동안 진행되었던 대리비아 경제제재 조처를 전격적으로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지난 3월 15일에는 프랑스와 ‘핵에너지 평화적 이용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자진 포기한 대신 평화적 핵사용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리바아의 이러한 관계 정상화 움직임은 자국의 경제 발전에도 획기적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 해제로 인해 쇠퇴한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부터 수많은 외국 자본과 프로젝트가 리비아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대통령 카다피는 과거의 ‘독재자’에서 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외국의 투자 유치를 위한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OPEC 회원국 중 7위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리비아는 앞으로 석유 생산량이 약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굴지의 석유 자본이 리비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으며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리비아는 석유채굴권에 대한 공개 입찰을 40년 만에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내 놓았다.
리비아의 이러한 변신은 ‘리비아 모델’이라는 말로 이미 많이 알려졌다.
‘리비아 모델’ 원칙적인 美 외교의 승리
여기서 굳이 ‘모델’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이유는 다른 유사한 문제의 나라들에 하나의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핵심적인 지점은 첫째, 핵 문제를 중심으로 국제 사회의 위협이 되었으나 자진해서 그 위협이 해소된 특별한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후세인을 무력으로 제거한 것과 달리 평화적 방법만으로 달성된 것으로, 9․11 이후 ‘선제공격론’과 ‘협력해 온다면 응당히 보상한다’는 양 날개의 전략을 내세웠던 미국 외교의 주목할 성과로 평가된다.
둘째, 대체로 이 첫 번째 문제와 연결되곤 하지만 이른바 ‘불량 국가’로 지목되거나 테러와 유관한 나라로 분류된 나라가 그 불명예를 벗겨내는 좋은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나라들은 공통되게 미국을 적대국으로 규정, 대립각을 세워 왔다. 미국은 이미 테러지원국으로 이란, 북한, 쿠바, 시리아, 수단과 함께 리비아를 상정해 놓고 있었다. 잘 알려진 바대로 2005년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을 필두로 이란, 쿠바,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하면서 평소 악명 높았던 리비아를 그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 변화된 인식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악명높은 독재자의 반열에서 서방 세계에 실질적 위협이 되었던 리비아의 카다피는 어찌된 영문으로 이렇게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일까.
미국과 리비아는 1789년 이슬람 과격 시위대에 의한 미 대사관 방화 사태로 인해 국교가 단절됐다. 미국은 리비아를 두 차례나 폭격했으며, 리비아 또한 미국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테러를 자행하였다. 이렇게 무력 공격과 테러를 주고 받으며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리비아와 미국의 관계는 9․11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공격을 거치면서 새로운 전기를 향해 나아간다.
주민 굶어죽어도 꿈쩍 안하는 김정일, 리비아식 해법 힘들어
카다피는 이라크에 대해 여지없는 공격을 감행한 미국의 강경 노선에 자극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오랫동안의 경제제재가 리비아의 숨통을 옥죄는 불행한 상황을 더 이상은 지속할 수 없다는, 34년 장기 독재자 카다피의 마지막 결심이 작용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의 성사에는 카디피의 후계자 수업을 진행 중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알 이슬람은 유럽 문물을 가까이 접하며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아랍 세계의 변화에 강한 인식을 가지고 아버지를 설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리비아-미국의 관계 정상화를 지켜보며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도 리비아식 해법으로 향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 놓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는 단지 기대에 머물 전망이다. 사안의 내용과 형태는 유사하지만 결정적으로 해법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지금까지 김정일 정권이 보여준 모습에서 증명이 된다.
적어도 카다피가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면 3백만 이상이 굶어 죽는 사태에서도 ‘국민을 살릴’ 변화를 거부한 김정일은 결코 그 길을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20년 가까이 명확한 원칙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미국의 해법과 달리, 김정일 정권을 돕는 듯한 중국과 남한 정부의 비원칙적 대북 외교가 더욱 그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리비아와 다른 차이로 지적되고 있다.
27세의 젊은 장교로서 아랍 사회주의 종주국을 만들고자 했던 혁명에 성공하고,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으로 딸까지 잃었던 카다피. 그는 과거를 지웠으며 국민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하였다. 이제 나이 든 노회한 ‘혁명가’로서 다시 한번 혁명적 선택을 감행한 그의 변신을 국제 사회는 크게 환영하고 있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