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비행기 못타는 ‘진짜 이유’는?

▲ 2002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전용열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연합

“김정일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

김정일이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그를 둘러싼 대표적 속설 중 하나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모스크바 방문 때도 비행기 대신 열차를 이용했을 정도이니 이런 소문이 나돌만도 하다.

김정일은 1965년 김일성의 인도네시아 방문을 수행할 당시 주석 전용기를 이용한 바 있다. 동거녀였던 월북 영화배우 성혜림의 마지막 출연 영화 ‘한 자위단원의 운명’ 촬영 현장이었던 백두산 기슭까지 헬리콥터(직승기)를 타고 다녀갔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북한 출판물에도 그의 항공기 탑승 사례는 여러번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후 40여 년간 김정일이 비행기를 이용해 외국을 방문한 사례는 전무하다. 김정일은 노동당 중앙위 비서 시절이던 1983년 6월부터 2000년 5월과 2001년 1월, 2004년 4월, 가장 최근인 2006년 1월까지 중국을 방문할 때 특별 전용 열차를 이용했다.

중국 뿐 아니라 2001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이뤄진 러시아 방문과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 때도 전용열차를 이용했다.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왕복 2만 km를 넘는 거리를 무려 24일에 걸쳐 열차로 오간 김정일의 기행에 국제사회는 ‘기네스북’ 감이라고 비꼬았다.

러시아 측은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용 비행기 제공을 북측에 제의했으나 김정일이 기차 여행을 고집해 깜짝 놀랐다는 후문도 전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정일은 1년에 100회 이상 실시하는 현지 지도 때 주로 열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지나친(?) 열차 사랑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 열차로 모스크바 방문…’기네스북’감=북한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테러에 대한 위협이다. 비행기 테러는 폭파장치가 제때 작동하기만 하면 다른 기습 테러보다 성공률이 100%에 가깝다.

김정일은 본인이 직접 비행기 테러를 지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 테러가 가진 가공할 위력을 더욱 잘 알고 있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 폭파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검거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김정일의 친필 공작지령을 받고 저지른 범행이었다고 자백했다.

이외에도 1970년 중반 북한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도 김정일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조선민항 소속 소련제 여객기가 이륙 직후 추락해 폭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객기에는 문화 예술인 100여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이전까지 외국에 잘 보내주지 않았던 ‘남반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김정일이 동거녀인 영화배우 성혜림과의 관계를 끝까지 비밀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지시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비행기 조종사가 북한 최고의 베테랑 조종사인 김만억(김일성 전용 비행기 책임 조종사)이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미국과 한국 등 적대국들에게 자신의 신변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열차는 다른 교통수단보다 안전성이 보장된다. 철도 주변의 철저한 점검과 경비, 차량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경호상의 문제점을 쉽게 해소할 수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며 “비행기는 열차에 비해 위치 추적이 쉽고, 테러나 미사일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 것이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특별 열차는 폭탄에 견딜 수 있는 방폭 장치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러시아 방문 때는 전기 기관차 2대가 이끄는 선두 기차가 특별열차보다 사전에 도착해 지뢰 매설 여부 및 사전 보안 작업을 철저히 벌이는 등 철두철미한 경호 태세를 갖췄다. 철로변 100m마다 경찰 1명씩을 배치, 여기에 투입된 사람만 9만 3천명에 이르고, 김정일이 머무는 역마다 동원된 경호요원들을 합치면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별열차가 정차하는 역에는 임시 소개령이 내려져 영문을 모르는 러시아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야는 “공허한 플랫폼과 얼어붙은 열차들, 그리고 무인지경에 당황한 참새들, 경찰의 경비선 등 (8월) 3일 밤 야로슬라브스키 역이 보여준 모습은 (현대사회의) 기적으로, 바로 공산주의의 망령”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2004년 김정일 중국 방문 당시 열차 내부 <북한 조선중앙TV>

김정일은 북한 내에서 열차로 이동할 때에도 물샐틈 없는 보안을 펼친다. 북한 호위총국 소속으로 김정일의 경호원 출신인 이영국 씨는 “김 위원장은 여행을 할 때 여러 대의 자동차나 기차, 배 등이 함께 움직여 이동 방향을 위장한다”고 말했다.

열차의 경우 2시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선발 열차, 본 열차, 후발 열차가 순서대로 출발한다. 이 중에 어느 것이 김정일이 탄 열차인지 알 수 없으며, 열차가 움직이는 6~8시간 동안 철로 주변으로의 접근은 전면 차단된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는 “관련 조사에 따르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독재자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만큼 김정일이 열차만을 고집하는 것은 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평한 바 있다.

◆ 인민 생활 느끼기 위해 열차 탄다고?=북한에서는 이러한 김정일의 열차 이용마저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김정일 열풍’이라는 책에서 “(김정일은) 인민의 생활을 더욱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열차를 탄다”고 주장했다.

2002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인터뷰했던 러시아 여기자 올라 말리체바는 김정일에게 “왜 기차로 여행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김정일이 “외신들은 나를 ‘고소공포증 환자’로 묘사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내가 뭘 알 수 있겠소? 나는 내 눈으로 러시아의 장단점을 직접 보고 싶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는 “비행기를 타면 (러시아의) 외교관과 정치인밖에 만날 수 없지만 기차 여행을 하면 온갖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 좋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인민의 생활을 시찰하는데 쓰이는 김정일의 특별열차는 북한 주민들의 일반 열차와는 달리 초호화 시설을 갖춘 이동 집무실이다.

열차는 보통 디젤기관차 2량이 앞과 뒤에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국내 여행 시에는 8~9량 정도로 차량을 편성하고 외국 순방시에는 20량 가까이 편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탑승하는 ‘1호 객차’에는 1인용 침실이 5개가 있고 방문 지역의 경제현황 등이 즉석 서비스 되는 위성 전자지도(GPS)와 인터넷 등을 할 수 있는 첨단 통신장비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연회실, 회의실, 경호대 탑승칸, 전용자동차(벤츠2대)의 차고 등이 갖추어져 있다.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했던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 대표의 저서 ‘동방특별열차’에 따르면 열차 안에는 영화 감상을 위한 대형 스크린이 있었으며, 응접실에는 노래방 기기도 비치되어 있었다.

열차 안에는 프랑스 산 와인이 가득 차 있었으며, 김정일은 레드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김정일이 가장 즐겨 먹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도 식탁에서 빠지지 않았다. 김정일이 먹는 음식의 재료는 북한에서 직접 비행기로 조달했고, 여기에서 나온 쓰레기도 밀봉해 북한으로 보냈다.

한편, 지난 2004년 김정일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발생한 용천역 폭발사고가 김정일 암살 시도였다는 설도 떠돌고 있다. 이제 하늘도 땅도 무서워진 김정일이 택할 길은 바다 밖에 없지 않을까? 다음 외국 방문 시 김정일이 어떤 길을 택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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