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군(先軍)이라는 개념은 1998년 6월 19일 자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서 ‘선군혁명령도의 빛나는 력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선군은 말 그대로 “군대가 우선이다”는 뜻인데, 군국주의를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군국주의’라는 말이 1930·40년대의 일본제국을 비롯한 우파 독재와 결부 짓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다른 용어를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1989~1992년, 동유럽의 대부분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붕괴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사건은 루마니아의 반공혁명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사형이었다. 혁명의 지도적인 세력이 군대였다는 측면을 북한 당국은 상기하게 되었다.
북한 김정일은 동구와 소련 등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완전한 실패와 심각한 경제 위기인 ‘고난의 행군’ 이후인 1990년대 말 선군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혹시 모를 정변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인민 대중을 결속시키겠다는 나름의 ‘복안(腹案)’이었다.
북한 도서 대부분은 “외국 세력에 반대한 조선인민”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 김정일이 “공화국을 보위하도록” 선군 사상을 선언했다고 강변한다. 또한 동구와 소련에 사회주의 제도의 멸망을 ‘군대의 약함’으로 설명하였고, 사회주의 제도를 보위하도록 하는 군대 발전을 ‘필수적’이라고 덧붙인다.
즉, “사회주의 제도를 지키려면, 군대의 발전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선군의 정수(精髓)라는 주장이다.
또한 선군은 사회의 선두적인 세력을 군대로 규정,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북한은 이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는 김정일이 언급한 ‘선군후로'(先軍後勞, 즉 군대는 노동계급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사자성어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은 선군 정치를 표방하면서도 북한 사회를 많이 군국주의화하지는 않았다. 여성 징병제, 장교 학교 수의 확대, 민방위 학습 지속 실행 등의 군국주의적 조치로 볼 수 있는 것 중 제대로 된 실시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다만 선군시대의 기본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다:
1)국가 원수의 직명을 주석에서 국방 위원회 위원장으로 함.
북한은 1998년에 헌법을 개정해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선언하며,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국가 원수로 명시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런 변화가 선군사상과 연결돼 있고, 국방위원회의 영향력이 원래보다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2)보다 더 많은 군인에게 고위 군사 계급을 수여함.
김일성은 최고사령관에 42년 동안 있으면서 군에서 원수 다음의 직급인 차수급에 2명밖에 승진시키지 않은 반면, 김정일은 20년 동안 18명을 차수, 3명을 인민군 원수로 진급시켰다.
3)북한 사회를 ‘포위당한 요새’로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의 강화
선군에 대한 북한 도서를 살펴보면, 스스로를 ‘포위당한 요새’로 규정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즉, ‘미제를 비롯한 침략자들’이 공화국(북한)을 공격하려고 한다면서, 선군사상이 이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선군은 이처럼 실제적인 북한 정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선군사상으로 인한 북한 변화를 꿈꾸기 보다는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군대의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민 동원과 결집을 통해 북한 독재 정치체제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북한 김정은도 스스로 체제가 안정되어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쉽게 선군을 버리지는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