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평화메시지’에 목메는 정부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김정일이 한 말을 두고 반응이 제 각각이다. 혹자는 물잔에 물이 반이 찼는데, ‘반이나’와 ‘반밖에’로 보는 시각 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정일의 발언은 사실 긍정이니 부정이니 평가를 달 만한 가치도 없다.

김정일은 “미국이 계속 못살게 굴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 발언으로 김정일은 핵실험을 중단할 용의를 조금이라도 내비친 것일까? 유엔 대북제재가 본격화 되는 시기에 ‘못살게 굴지 않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내건 것 자체가 속보이는 행위다.

결국 갈수록 조여드는 경제압박을 줄여보려는 협상 카드를 슬며시 내비친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무슨 심오한 뜻이 담겨 있거나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라도 되는 것처럼 해석을 달 필요가 없다. 김정일의 ‘판에 박한 변명’을 ‘긍정적’이니 ‘물잔에 비유하면..’이라는 식으로 주석을 달았기 때문에 지금의 혼란이 생겼을 뿐이다.

김정일의 발언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핵실험에 따른 제재(못살게 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유엔결의를 수용할 의사가 없고, 제재를 추가실험의 협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하는 통일부는 과연 현실과 희망사항도 구분하지 못하는가?

북한 핵실험에 따른 유엔의 대북결의는 미국뿐만 아니라 안보리 15개국이 동의한 결과다. 북한을 못살게 구는 주체로 미국을 지목한 이유는 ‘미국 책임론’을 내세워 주변국의 제재 수위를 조절하려는 속셈이다. 결국 미국이 앞장서서 유엔결의를 내세워 압박하면, 추가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묻는 수순이다.

“6자회담에 나갈 테니 금융제재를 중단하라”는 발언도 중국을 의식해서 행동의 순서만 조작해서 바꾼 것으로 관측된다. 한마디로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담보가 없다면 6자회담에 나오지 않겠다는 의미다. 금융제재는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등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스스로 불법행위를 척결하고 핵폐기 수순을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핵으로 위협하고 ‘면죄부’를 달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라이스가 탕자쉬안과 김정일의 면담에서 어떠한 긍정적 신호도 받지 못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정일의 ‘한반도 비핵화’ 발언도 우습기 그지 없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한 시점에도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핵물질 추출용 5MW원자로를 가동했고 재처리시설까지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이보다 훨씬 큰 50MW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다. 비핵화공동선언 이후에도 이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후 1993년부터 시작된 1차 핵 위기는 전쟁일보 전까지 치달았지만 북한은 결코 국제사회에 핵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았다.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우라늄 농축으로 핵개발을 시도했고, 지난해 6월 정동영 전 장관의 방북시 “조선반도 비핵화 유효와 김일성 유훈”을 언급했지만 핵실험 사태까지 왔다. 김일성이 애당초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 유훈을 지키겠다는 말 자체가 원초적 거짓말에 해당한다. 국제사회를 거짓말로 철저히 우롱해온 것이다.

결국 탕자쉬안과 김정일의 면담은 이미 그 수명을 다해가는 6자회담을 살리려는 중국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만남’이란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잠시 대화의 기미를 보인 것을 외부에 포장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이 무슨 말만 하면 그것이 대단한 암시이고 전략인양 추켜세우며 ‘긍정적 신호’라는 주석을 다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행태는 어떻게 납득할까? 핵개발 사령관 김정일에게서 평화의 메시지를 간절히 기다리는 정부 당국자들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는 정부 당국자들이 나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모습이다. 이젠 유엔이 나선 만큼 한국 정부는 자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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