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랑은 김정일의 숨겨진 첫 동거녀였던 북한 유명 여배우 성혜림의 언니다.
성혜림은 애초부터 김정일과의 잘못된 만남 때문에 끝내 모스크바 외곽에서 2002년경 쓸쓸히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성이다. 그가 낳은 아들이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다. 성혜림의 묘비에는 평범한 러시아 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묘비에 ‘성혜림’이 들어가면 나중에라도 성혜림이 김정일의 동거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의 불행했던 삶이 외부에 알려지는 증거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혜랑, 혜림 집안은 원래 경상남도 창녕이 고향이다. 조선조 사대부 집안 출신이어서 창녕에서는 ‘성대감네’로 통했다고 한다. 성혜림의 아버지 성유경은 일제 때 도쿄 유학을 한 전형적인 좌익 지식인이었다. 어머니 김원주도 도쿄 유학생에 일제 때 ‘개벽’지 여기자를 지냈다.
성 씨 집안이 북한에서 겪은 인생유전(人生流轉)을 보면 당시에 공산주의 한번 해보겠다며 월북한 순진무구한 좌익 지식인들이 김일성, 김정일과 계급주의자들의 권력 탐욕에 얼마나 철저히 농락당했는지 알 수 있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수재였다. 김일성대 수학물리부에 입학하여 공부도 잘했다고 한다. 그가 쓴 자서전 성격의 ‘등나무집’에는 성 씨 집안의 조락(凋落)이 잘 나와 있다. 해방과 전쟁, 계급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 북한사회의 변화, 그리고 남한에 알려져 있지 않은 1960년대 말~70년대 초 ‘북한판 문화혁명’ 등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이를 보면 월북한 좌익 지식인들이 왜 절망적 삶을 살아야 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북한사회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래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기초이며, 그 위에 수령론과 군사우선주의로 대표되는 스탈린주의, 그리고 그 위에 1960년대 말부터 진행된 김일성유일사상 체계화 과정, 권력세습과 수령절대주의의 성립, 경제 파산, 그리고 이후 공산권 몰락과 90년대 중반 대아사 사건, 이어진 선군정치 출현까지의 북한 현대사 60년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분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햇볕정책 같은 미숙한 정책이 나왔고, 더욱이 김정일이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며, 대외적 조건만 잘 주어지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으로 믿는 ‘쓸모있는 바보들’이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이러한 기초공사도 안 된 상태에서 무슨 ‘북한문제 해결방안’ 식으로 불쑥불쑥 내놓는 것을 보면, 마치 수학에서 방정식, 인수분해도 못 푸는 학생이 미적분, 행렬을 풀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여 좀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일반인들까지 마르크스-레닌부터 공부하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비서의 회고록을 비롯한 저서들과 성혜랑의 ‘등나무집’, 이한영의 ‘대동강 로열패밀리’는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북한 연구자라면 세 사람의 책에 등장하는 내용 정도는 완전히 꿰고 있어야 하며, 이들이 남한 사람들의 북한 이해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자세한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 그 행간의 의미까지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북한의 전체주의 수령독재, 즉 수령절대주의는 수령이 ‘체제 그 자체’가 된다. ‘사회역사발전의 유일한 동력’이 수령이다.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긴 시간에 걸쳐 김정일이 그렇게 만들어놓았다. 김정일이 ‘김일성주의’(주체사상)를 신격화 · 절대화 하자, 나중에 김일성은 “정일이가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직접 몸으로 경험했다”고까지 말한다. 김일성 스스로가 ‘위대한 대사상가’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김정일은 아버지를 ‘위대한 대사상가’로 만들어준 대신 ‘수령의 대리인’으로서 아버지의 절대권력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북한이라는 나라의 ‘소유권 등기 이전’을 받은 것이다. 북한을 ‘김 씨 집안 개인 소유물’이라는 각도에서 바라보면 좀 더 선명히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김정일 이후’는 김정일이 지명하는 아들 중 한 명이 소유권자가 될 것은 불문가지다. 다만 장성택이 어떤 지위에서 새 소유권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냐, 또 장성택이 정치적으로 미숙한 새 소유권자를 데리고 어떤 방식으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꾀할 것이냐, 또 북한체제가 드디어 변화할 경우 그것은 과도적 체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체제가 될 것인가, 또 과도적 체제가 될 경우 그 이후는 과연 연착륙 체제전환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급변으로 갈 것인가 등이 주요 관찰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지금은 김정일이 병상에서 통치하고 있고, 김정일의 지시를 장성택과 차남 김정철이 다른 당, 군 간부들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정일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기존 통치방식에 별 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최근 북한당국이 군사분계선(MDL) 육로 통행 제한, 플루토늄 시료 채취 거부, 남북직통 전화 단절, 삐라를 핑계로 한 개성공단 압박 등으로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이전보다 강도 높은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이런 점이 도리어 김정일 스스로 자신의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노출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일은 이명박 정부를 계속 두들기면서 지난 10년처럼 착하게 말 잘 듣고 퍼주는 대북정책으로 바꾸도록 겁을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민간단체의 삐라 날리기는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했다. 따라서 삐라문제를 핑계로 하고, 군(軍)을 앞세워 남한을 길들이자는 것이 최근 북한의 기본 전술이다. 최근에 왜 북한군이 자꾸 남북관계 전면에 나서느냐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는데, 군을 앞장 세워야 남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겁을 먹는다는 사실을 김정일이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군인 김영철이 아니라, 당 관계자나 내각 개성공업지구 관계자가 직접 와서 개성공단 중단문제를 거론한다면 그것은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지금 김정일은 금강산 관광객 사살사건 때부터 군대를 시켜 남측 길들이기를 계속 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개성공단은 어차피 김정일에게 인질로 잡힌 성격을 띠고 있다. 김정일의 통치가 지속되는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인질상태를 숙명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야말로 북한에 어서 빨리 개방정부가 들어서도록 기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개성공단으로 북한을 개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만약 김정일이 개성공단, 개성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북한내부에 개방화 요구가 심해진다고 판단할 경우, 개성공단 사업을 실제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개성공단은 계속되는 것이 좋다. 아울러 ‘김정일 이후’를 대비하여 현재의 개성공단과 연결시켜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계란 프라이 형태’로 도라산 남쪽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들고 북한 근로자들이 출퇴근 하는 방식을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 김정일이 잇따라 3건의 대남 압박을 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 및 심리상태, 북한 내부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거꾸로 보여주는 행동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정일은 지난 8월 뇌출혈을 맞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후 과장되고 어설픈 사진 슬라이드 쇼를 계속 한다든가, 대남 압박을 하는 것이 김정일이 자기 불안감과 자기 집착이 조금 더 커진 데서 한번 원인을 찾아볼 필요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은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후계문제가 안정적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불안할 것이다. 그런 한편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로 장차 외부세계의 대북지원이 대폭 늘어나고 외화벌이도 잘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고무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직통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MDL 통행제한 조치 발표 등의 압박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건강문제와 성격문제는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전체주의 수령독재 체제는 그런 개인 문제가 나라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위에 언급한 성혜랑이 본 김정일의 개인 스타일을 한번쯤 참고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성혜랑은, 말하자면 김정일의 ‘처형’(妻兄) 자격으로 김정일의 관저에 들어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정치인 김정일보다는 개인 김정일의 스타일을 중시하면서 거기에 맞추며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성혜랑은 그래도 나이가 김정일보다 많고 ‘손 위 사람’으로서 김정일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한영이 본 ‘이모부 김정일’보다 더 정확하고 깊이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여성의 섬세한 관찰이 도움되는 면이 있다.
성혜랑이 본 김정일의 개인 스타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김정일은 귀신같은 사람이다. 그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 어떤 상황에서건 유리하다는 것을 우리 자매(혜랑-혜림)는 터득하고 있었다.
2) 그는 정중하고 수수한 멋, 품위를 보면 굳은 얼굴이 풀리고 조금이라도 치사하고 너절한 것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엇이건 지나치면 밉살스러워 했고 미달되면 깔보았다. 가난하고 세도 없는 집안에 태어났다면 그는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3) 그는 무제한적인 권한과 호사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도 걱정도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본능만이 성장하였다.
4) 그의 장점에 속하는 너그러움, 남을 좋게 대해주고 싶어하는 선심, 인정 깊음은 그의 타고난 성격, 혈통에 속한다고 본다. 그를 나쁜 인간으로 보게 하는 과격함, 까다로움 등은 후천적 성격에 속한다고 나는 보았다. 무제한 권력, 비교육, 어머니의 부재, 북한 사회의 권위주의가 만든 성격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성격은 그에게서 종잡기 힘든 난해한 기질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 ‘먹는 문제’라는 사적 영역에 있었던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도 비슷한 평가를 한 적 있다.
1) 김정일은 평소 잘난 체하지 않고 웃는 얼굴이 끊이지 않는 온후하고 취미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국가운영에 관한 것, 특히 정보를 보고하지 않을 경우 그 자리에서 전화 등으로 열화같이 호통을 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2) 한번은 그의 최측근이며 매제인 장성택 제1부부장과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책상 위의 냅킨 스테인리스 통을 갑자기 던진 일도 있었다.
김정일은 무엇보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그래서 정보를 정확히 보고해야 한다. 황장엽 전 비서에 따르면 김정일은 특히 6하 원칙(5W 1H)에 따른 ‘통보’(스트레이트 보고)를 제대로 하는 체계를 직접 세웠다고 한다. 95년 당원 5만 명을 포함한 50만 명이 굶어죽었고, 96년 1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통계를 장악한 중앙당 부서가 바로 ‘통보 부서’였다고 한다.
그런 한편, 개인적으로 만나면 말이 잘 통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아마 그래서 북한체제 전반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김정일을 만나고 온 사람들은 대체로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지 모른다. 미국의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웬디 셔면 특사도 비슷했다.
하지만 성혜랑이 지적했듯이 비교육, 어머니 부재, 무제한의 권력은 그를 무자비하고 제멋대로 하도록 만든 요인이다.
국가간 관계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이지, 인간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만나본 김정일은 괜찮은 사람이더구만…’이라는 전제를 갖고 이를 남북관계에 대입시키려 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김대중 씨의 개인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지난 10년간 잘못된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의 개인 스타일을 남북관계, 대외관계에 대입시키려면 성혜랑이 본 “그는 무제한적인 권한과 호사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도 걱정도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본능만이 성장하였다”는 대목에 집중해서 참고해야 할 것이다. 실제 김정일의 행동 패턴은 지난 10년간 핵문제, 대남, 대미, 대중관계 등에서 성혜랑의 지적이 거의 들어맞고 있다.
김정일은 앞으로 남한 압박을 계속 하면서 강도를 더 높여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이 이명박 정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가보려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근본적인 북한문제 해결책, 다시 말해 북한 정권을 개방 정권으로 평화적으로 바꾸어주는 문제를 정부는 매우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고, 그 실행계획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그 일의 순서는 맨 먼저 한국이 시작하여, 한미합의-한미일 합의-한미중 합의의 순서를 거쳐야 할 것이며,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현안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해가면서도 장기적인 실행 플랜을 반드시 만들어두어야 한다. 지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국정원에는 이 문제에 집중하는 팀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