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여자관계, 수많은 희생 불러

김정일(金正日)의 여자관계는 인간 김정일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다. 그의 나이도 벌써 예순 셋. 고령 대열에 들어섰다. 후계작업에 돌입해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물론 실제 후계작업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별개다.

김정일이 후계자 문제를 결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복잡한 여자관계에 비롯된 가족관

▲ 중성동 15호 관저에서 1981년 촬영된 사진. 김정일과 아들 정남, 뒷줄 왼쪽부터는 정남의 가정교사였던 성혜랑(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딸 이남옥, 맨 오른쪽이 피살된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본명 이일남),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이한영의 증언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계도 한 몫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정일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사생활의 특성상 객관적 자료가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모든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특히 김정일과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증언은 묵과할 수 없다. 김정일의 사생활을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서 나온 증언들을 상호 교차시켜 일치하는 증언은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김정일은 외교 행사에 부인을 동반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부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실 김정일이 동반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생활과도 연관이 깊은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일의 본처는 중앙당 타자수 출신 김영숙

그의 공식 본처는 김영숙(58세)이다. 김영숙은 함경북도 안전국 전화교환수로 일하다 중앙당에 와서 김정일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74년에 결혼했다. 김정일은 김영숙과 결혼해 설송(雪松)이라는 딸을 낳았다. 설송(31세)이라는 이름은 김일성이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그러나 김영숙은 김일성이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이외에는 부인으로서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김정일과 같은 관저에 머물며 김정남의 가정교사를 했던 성혜랑(김정일의 ‘처형’)은 그의 저서『등나무 집』에서 “김영숙은 아버지 앞에 합법화된 여자라는 의미 외에는 없다. 가계는 공민증(남한의 주민등록증에 해당)도 없다. 그 어떤 법적 수속도 문서도 없다”면서 “누구를 아내로 인정하는가는 법 위에 군림한 최고 수반 자신의 인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본처를 만나기 전에 성혜림이라는 여인과 장기간 동거했다. 성혜림은 6.25전쟁 때 부모를 따라 월북한 북한의 유명 여배우였다. 나이는 김정일보다 다섯 살 위였다. 김정일과 성혜림은 1969년 중성동 15호 관저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 29세. 성혜림과 동거 사실은 김일성에게도 비밀에 부쳐졌다. 그녀는 1971년 봉화진료소에서 김정남을 낳았다. 김정일의 첫째 아들이다.

김정일의 본처 역할은 지난해 사망한 고영희

성혜림은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로부터 아이(정남)를 두고 나가달라는 말을 들은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극도의 불안과 신경 쇠약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스위스와 러시아에 장기간 머물며 요양하다가 2002년 모스크바에서 63세로 사망했다.

김정일과 가장 오랫동안 동거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로 역할을 해온 인물은 고영희다.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 고태문(일명 고경태)의 딸로 1952년생이다.

만수대 예술단 무용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70년 중반 김정일의 눈에 띄어 비밀파티의 고정 파트너가 되면서 동거녀로 눌러 앉았다. 그녀는 애첩(愛妾)에 불과했지만 김정일의 마음을 가장 오랫동안 사로잡았다. 고영희는 지난해 6월경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 중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정일 후계 구도, 고영희 두 아들 정철, 정운 두고 설왕설래

김정일은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정철(24세)과 정운(21세) 형제를 낳았다. 지난해 5월부터는 군부대에 고영희의 초상화가 걸렸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인민군대 강연자료에 등장하는 ‘존경하는 어머님’은 고영희를 지칭한다는 해석이 절대적이다. 국내에서는 후계구도가 정철로 모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김정일은 후계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 일본 국민배우 요시나가 사유리

송봉선 전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은 “고영희는 동그란 얼굴형에 잘생긴 여자라고 하며 김정일은 이런 타입의 여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졌다”고 쓰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최은희도 1978년 김정일의 생일날 그의 집에서 ‘집사람’이라고 소개 받은 여자(성혜림으로 추정)가 동그란 얼굴에 잘생긴 여자라고 밝혔다. 김정일은 “일본 여배우 중에서는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다(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요시나가 사유리도 얼굴이 계란형인 미인이다.

일부에서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홍일천을 김정일의 첫 번째 여자라고 거론하고 있지만, 증언자의 직위와 북한 고위층에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김정일과 이혼 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을 유지하는 것도 북한 체제의 특성상 납득하기 힘들다.

김정일은 이 세 여자 이외에도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송봉선씨는 귀순자와 해외 보도를 근거로 “김영숙, 성혜림, 고영희 이외에도 주 러시아 손성필의 여동생 손희림, 여배우 홍영희, 주 튀니지 대사의 처 이상진 등과 단기간 동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면서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 교예조, 배우, 관저 담당 간호원, 김정일 집무실 타자수들과도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고 말했다.

외국 여인들까지 데려와 평양에서 비밀파티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했다가 의문의 살해를 당한 고 이한영씨는 자신의 저서 『김정일 로얄 패밀리』에서 “어떻게 해서든 김정일을 기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내 애들만 데리고 파티를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져 외국 애들도 계약이나 납치 등으로 북에 데려왔다”면서 “데려온 여자들은 태국, 필리핀 외에 아랍 출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 고영희와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

일본 월간잡지 『문예춘추』92년 3월호는 80년대 한 일본 여성이 돈벌이 목적으로 태국여성과 함께 평양에 들어갔다가 김정일의 파티에 동원되어 술시중을 들었던 체험담을 보도하기도 했다.

“대낮부터 벌어진 파티는 김정일의 독판이었다. 측근의 고위 간부들은 뜻밖에도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군가인 ‘리바울이여 안녕’을 열창했다. 주흥이 오른 김정일은 실내 악단을 직접 지휘하면서 시중을 든 외국인 호스티스들에게 빳빳한 100달러 짜리 지폐를 뿌렸다.-월간 『문예춘추』92년 3월호 中-

북한에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가 쓴『김정일 왕국』하권에도 북한으로 납치돼 김정일의 파티에 동원된 외국인 여성들이 “김정일 파티에 여러 번 동원되어 이제는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을 것 같다”면서 울면서 하소연 한 사실을 직접 기록하고 있다.

김정일 사생활 폭로는 수용소행, 민감한 사안은 공개 처형

김정일의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김정일의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경호부대인 ‘친위대’와 측근 및 관저 근무자(간부5과 대상)들은 공민증이 발급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로 편입될 수도 없고 비밀을 누설했을 때는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심한 경우 비밀리에 처형된다.

▲ 2004년 6월 사망한 고영희

일부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여자관계와 지도력은 무관하다고 평가한다. 지도자의 여자관계를 앞세워 도덕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도자의 도덕성과 통치력을 여기서 화두로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최고 지도자가 권력을 이용해 남의 부인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데리고 살거나, 자신과 성혜림과의 관계가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수 많은 예술인들을 수용소로 보내고, 여배우 우인희와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확대되지 않도록 당사자를 처형 시킨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우인희는 6∙70년대 중반 북한 영화계에서 톱스타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영화감독 유호선을 만나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70년대 후반 우인희는 김정일과 불륜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재일 교포 청년과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관계를 갖은 후 차 안에서 히터를 켜고 잠들었다가 청년이 질식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생활 비밀 유지 위해 수많은 사람 희생시켜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세간에서 우인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그녀가 조사받는 와중에 최고 지도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김정일에게 들어가자, 김정일은 즉각 총살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영화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민 배우 우인희는 부화 방탕죄를 범했으므로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는 소리가 끝나자 마자 처형당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애타게 “지도자 동지를 만나게 해달라”면서 김정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부탁은 거절당했다. 이 사건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일의 여자관계는 온전히 사적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무한 권력을 여자관계에서도 이용했고, 비밀 유지를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이한영의 죽음이 김정일의 지시라는 것은 이미 부부간첩 ‘최정남, 강연정 체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여자관계 폭로는 사생활 침해가 아니다. 그는 여자관계에서도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탄시키고, 많은 주민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The DailyNK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