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생일놀음, 올해로 끝내야 한다

▲북한은 김정일위원장의 생일(2.16)을 맞아 평양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김정일화 축전을 개막했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생일은 1942년 2월 16일이다. 원래 생일은 1941년 2월 16일이었다. 1941년생으로 사용해오다 82년경 슬그머니 42년생으로 바꿨다. 고위 탈북자들에 따르면 80년대 전까지 1941년 생으로 계속 사용해왔다고 한다.

조선중앙방송은 81년, 82년 잇따라 ‘지도자 동지의 40회 생일을 맞이하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1980년 중국에서 발행된 <당대 국제인물사전>에도 김정일의 생일은 1941년생으로 기록되었다(김정일 연구가 오사무 에야).

1935년 16살 때 김일성 빨치산 부대에 들어와 작식(作食)대원으로 활동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은 1941년 소련극동군 정찰부대 제88여단의 밀영이 있던 하바로프스크 근교 브야츠크에서 김정일을 낳았다.

‘김정일’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金正一’이었으나 80년 10월 ‘金正日’로 바꿨다. 아버지 金日成의 중간자 ‘日’을 따서 김정일 스스로 만든 이름이다.

백두산 출생설, 생일 이름 바꾸기는 상징조작

김정일이 생일을 바꾼 것은 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하자는 정치적 상징조작이다. 김일성의 생일이 1912년생인 만큼 아버지가 60회 생일이 되면 자신은 30회, 70회가 되면 40회 생일이 된다. 이른바 ‘꺾어지는 해’(정주년)를 아버지와 맞추자는 것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면 소위 ‘대(代)를 이어 혁명을 완수하는’ 수령의 대리인은 김정일이 유일하다는 의미다.

‘正日’이란 이름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은 네 아들 정일, 만일(萬一・4세 때 사망), 평일(平一), 영일(永一)을 두었으나, 김정일만 ‘日’로 쓰고 있다. 자신만이 오로지 김일성의 유일적자(嫡子), 즉 본가지이며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라는 의미다. 브야츠크에서 태어난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조작한 것과 생일, 이름을 바꾼 것은 김정일이 오로지 아버지 김일성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귀틀집은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와 더불어 주민들의 ‘혁명전통’ 교육장이 되어 있다. 이 집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정일봉’이다. 이 이름은 김일성이 지어 주었다. 북한당국은 더 나아가 귀틀집과 정일봉 정상 사이의 고도차가 ‘216m(2월 16일)’라고 선전한다. 이밖에도 김정일의 50회 생일날 ‘정일봉에서 제비 216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졌다’는 둥 해괴한 선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이 ‘북한주민들은 그런 이야기를 진짜로 믿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그런 선전을 믿지 않는 주민들도 있겠지만, 김일성 김정일 정권은 오랫동안 주민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선전해왔다. 세뇌작업인 것이다.

생일놀음, 전세계에서 북한이 유일

사실, 김정일의 생일이 1941년생이든 42생이든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김정일이 진정한 ‘지도자’라면 생일과 같은 하찮은 일에 신경쓸 필요가 없이 주민들을 잘 살게 하고 정치를 똑바로 하면 된다. 지금 자기의 생일 문제에 절실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김정일이 유일하고, 지도자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만들어놓고 잔치놀음을 벌이는 곳도 지구상 북한밖에 없다.

오늘(16일)로써 김정일의 공식 나이는 64세가 되었다. 74년 후계자로 지명된 후 32년이 되었고, 김일성의 실권을 이어받은 지도 20년이 지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정일은 주민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맛있는 사탕을 줄테니 내 말 잘 들어라’는 식의 선물놀음을 벌일 것이다.

전세계가 하나로 묶여가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19세기적 봉건군주제를 이어가는 북한 정권을 다시 생각해본다.

북한은 반(半)봉건 농업사회에서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바로 계급독재로 넘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령독재로 이어졌다. 정치학자 터커의 말을 빌면 스탈린식 수령제가 ‘짜르 체제로의 복귀’였듯이, 민주주의를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수령’이라는 이름만 바꾼 ‘봉건 절대군주’를 모시는 데 더더욱 저항의식이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가부장적 유교봉건제가 의식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설사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른다 해도 해방후 북한사회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 있는 의식적, 물질적 제조건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이 과연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면서 북한사회를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이끌 수 있다고 한번이라도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주민들을 통치하면서 북한이라는 작은 땅에서 그저 ‘왕 노릇’이나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민 우매화와 정권의 속임수

북한정권은 여기에 더하여 주민들의 의식을 더욱 우매화했다. ‘주체’를 내세워 한자(漢字)를 퇴치하면서 주민들의 인문・사회과학적 각성(覺醒)의 빌미조차 원천봉쇄했다. 마치 중세 때 지배계급과 승려들이 문자를 독식하면서 평민들의 각성을 막았듯이,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 자체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선전의 대가’ 김정일은 통치에 필요할 경우 한자 조어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했다. 광폭(廣幅)정치, 인덕(仁德)정치, 선군(先軍)정치, 위민애천(爲民愛天), 강성대국(强盛大國)…

주민들은 이같은 김정일의 ‘유식한’ 조어가 나올 때마다 ‘영명하신 지도자’를 우러러 보며 더욱더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갔다. 김정일은 주민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의식에 자물쇠를 채워버리고, 세뇌와 공포, 속임수로 통치해온 것이다. 이것이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제 주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을 거치면서 연 1백만명 정도가 중국과 북한을 오고갔으며, 외부세계의 정보가 북한에 속속 유입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아무리 틀어막아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주민들의 각성이 시작되면 김정일 정권의 속임수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놀음이 그 대표적이다. 김정일의 생일날 선물놀음을 벌이는 것이 주민들의 자각을 막고 노예화하려는 ‘저질 쇼’였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알게 될 것이고, 이때부터 김정일 정권의 내리막길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김정일의 생일 쇼가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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