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멱살’ 잡아야 개혁개방된다

▲ 김정일 건강변화 ⓒ조선일보

K교수라는 분이 있다. 필자가 정부기관 연구소에 있을 때 연구원으로 같이 근무한 분이다. 그는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90년대 남한으로 망명했고, 지금은 미국에 있다.

K교수는 필자에게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김일성은 신장이 좋지 않았다. 정확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김일성 장수연구소’ 의사들의 집중토론이 진행된 끝에 당시 사회주의 진영에서 신장수술이 가장 앞섰다는 헝가리로 가서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채택됐다.

그러나 김일성이 외국에 가서 수술을 받으면 ‘수령님’의 건강에 대한 일체의 정보가 외부세계에 유출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국내에서 수술받기로 결정됐다. 헝가리에 유학한 경력이 있는 평양의대 출신 명단이 올라가고 면밀한 검토 끝에 35세의 젊은 의사가 김일성의 집도의(執刀醫)로 최종 선정됐다.

김일성 수술 위해 ‘인간 모르모트’ 선발

문제는 의사가 너무 젊은데다 ‘수령님의 옥체’에 칼을 대는 것 자체가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 때문에 만에 하나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어버이 수령님’을 잠시 한번 만나는 것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르게 된다는 주민들의 심리를 감안하면, 집도의의 긴장감이야 오죽하겠는가.

김일성은 젊은 의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그를 관저로 불러 6개월동안 같이 생활하게 했다.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시며 ‘수령님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일상생활을 같이 한 것이다.

또 한편 ‘장수연구소’는 김일성과 체질이 비슷한 사람들을 골라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혈액형, 신장, 사상체질 등에서 김일성과 공통성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 신장에 좋다는 음식과 여러 차례 투약실험을 해보면서 신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았다. 말하자면 김일성의 신장 수술을 위해 선발된 ‘인간 모르모트’였던 셈이다. K교수도 여기에 선발되었다. 덕분에 좋은 음식도 맛보았다는 K교수는 그 ‘공로’로 상도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김일성의 신장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정일, ‘불안한’ 개방보다 ‘안전한’ 핵(核) 선택

오늘(7일) 아침 한 조간신문에 9명의 전문의가 최근 김정일의 사진을 비교 분석하여 ‘김정일이 당뇨에 의한 신부전증을 앓는 듯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필자는 의학에 전문지식이 없지만, 김일성의 병력을 감안하면 이 기사는 상당히 정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김정일의 살이 빠진 모습과 손목과 손가락이 부어 관절윤곽이 사라진 사진은 전문의들의 잠정결론을 훌륭히 뒷받침했다.

최근 김정일의 방중 때 살빠진 그의 모습을 두고 일부에서 ‘다이어트설’이 나왔으나, 이 분석기사는 다이어트로 인한 체중감소가 아님을 입증해냈다.

김정일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온유한 유형의 인간이 못된다. 그의 ‘처조카’ 이한영(97년 북한공작원에 피살)은 “김정일은 80년대에 독일인 주치의의 권유를 받고 다이어트를 시도하며 계단 오르내리기를 하다 나중에 포기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정일은 자신에게 힘든 일을 용기있게 정면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간형이 못되는 것이다.

김정일은 미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방미 초청을 받고도 거부한 적이 있다. 이같은 사실은 김대중씨가 2003년 6월 15일 KBS ‘일요스페셜’에 출연, “클린턴 대통령이 나(DJ)에게 편지를 보내 김위원장을 미국에 오도록 초청했다”고 발언함으로써 밝혀졌다.

당시 김정일은 남한, 중국과는 이미 정상회담을 했고 일본과는 수교협상이 진행 중이었으며,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미사일 협상까지 거의 타결된 상황이었다. 김정일이 클린턴을 만나 미-북 관계개선을 위한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만 하면 되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미국에 가지 않았다.

김대중씨는 TV에서 “그때 김위원장이 가지 않고 미국 정권이 공화당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무척 원통(?)해 했다.

김정일은 왜 그같은 역사적 호기를 버렸을까.

당시 김정일이 클린턴을 만나 미-북 관계개선을 하려면 결정적으로 핵무기를 버려야 했다. 핵을 버리고 주변국과 수교하며 개혁개방하면서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핵을 갖고 자기의 독재체제를 계속 지켜갈 것인가, 이 둘 중 김정일은 ‘안전한’ 후자를 택한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씨가 ‘김위원장이 왜 그때 미국에 가지 않고 내 속을 태웠을까’라며 애석해 한 것은 김정일이 클린턴을 만남으로써 햇볕정책의 최종 성과를 뽐내고 싶은 김씨 개인의 욕심일 뿐이었다.

선군, 수령 버리지 않는 한 개혁개방은 어렵다

김정일은 스스로 당당하게 개혁개방으로 걸어 나가기 어렵다. 북한을 개혁개방 시키는 방법은 김정일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느니 마느니 꼼수를 쓸 게 아니라,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그냥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김정일의 멱살을 틀어쥐고 개혁개방으로 끌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것이 2천3백만 주민들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의 대북 금융조치(압박)와 6자회담(대화)을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또 미국의 금융조치는 김정일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일정한 효과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방중 후 북한은 조만간 7.1 조치나 신의주 특구 비슷한 제한적 ‘개혁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야 김정일은 중국과 남한정부의 점수를 따고, 노무현 정권에게 차기대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시간을 벌면서 미국에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제한적 조치가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란 어렵다. 김정일이 선군(先軍)과 수령제를 버리지 않는 한 개혁개방은 어려운 것이다.

어제(6일)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있었다. 이 내정자는 북한의 수령제와 개혁개방의 관계를 묻는 정문헌 의원의 질문에, “수령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수령제의 변화는 곧 김정일 정권의 변화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 정권유지를 도와주고 있다. 수령제 개선을 말하면서 김정일 정권은 유지시켜줘야 한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해괴한 말장난인가?

이 내정자는 “저는 통일부 장관,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능력이 안 되니 인사권자께서 재고해주셨으면 한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옳았다.

이러한 무능정권을 믿고 국민들이 꼬박꼬박 세금 내는 게 억울하다 못해 슬픈 일 아닌가?

말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무능정부가 국민들에게 소주를 마시도록 빌미를 제공해놓고 소주값을 올리려는 이유는 또 뭔가. 한편으로는 소주 마시게 하고, 또 한편으로 정부 세수를 확보한다? 순전히 날강도 논리 아닌가.

손광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