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마지막 중국 방문’이 될 것인가?


김정일의 이번 제7차 중국 방문을 보면서, 어쩌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방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김정일이 정말 죽지 못해 중국의 도움을 요청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적어도 ‘공무(公務)’를 위한 방중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그의 건강 때문이 아니다. 얼굴 빛을 보면 요즘 그의 건강은 되레 좋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일의 마지막 방중’이라는 주장에 무슨 물증(hard evidence)을 내놓으라면 딱히 내놓을 것은 없다. 하지만 김정일의 동선(動線)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번 그의 중국 행보는 지난 6차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김정일이 남양을 건너 투먼으로 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난해 5월, 8월 방중의 연장선에서 ‘실무 방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김정일은 이번에 그 어떤 ‘결심’을 하고 중국에 간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다.


오늘(27일) 아침 신문에 “중-북 경협이 잘 안 풀려서 김정일이 화가 나서 돌아간 듯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북중 경협에 문제가 발생해서 김정일이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부탁’을 중국이 들어주지 않았을 것 같다.


김정일의 부탁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군사 분야일 것이다. 짐작컨대 김정일이 중국에 전폭기와 신형 전투기를 달라고(그것도 거의 무상으로) 요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무상, 유상의 문제가 아니라 김정일에게 신형 전폭기와 전투기를 주기 어렵다. 미국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대주는 것을 엄청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에 무기를 대주면 “미국은 대만에 무기 대주지 말라”는 항의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중국에게 대만문제와 북중관계 문제 중에서 더 사활적인 국익(national interests)이 걸린 쪽은 대만 문제다. 후진타오가 ‘하나의 중국’ 외교 노선에 피해를 보면서까지 김정일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엄청 캐간다는 둥, 무슨 북중간 대단한 경협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은 예상보다 많지 않고, 유류(油類)와 식량 등을 흔히 하는 말로 ‘죽지 않을 만큼’ 지원해주고 있다. 나머지는 주로 북중 변경 무역이다. 


중국의 대북지원은 과거 주은래(저우언라이) 시절부터 그랬다고 한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의 표현을 빌면 “1년에 1억달러 정도, 그것도 주로 항공 휘발유를 무상 제공” 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중국 정부가 북한에 지어준 대안유리공장을 제외하면 정부대 정부간 지원은 많지 않고 주로 성(省) 단위 중소기업의 대북투자가 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의 민족자원을 중국에게 다 빼앗기니까 우리도 북한과 경협을 빨리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실패한 대북정책을 되살려야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해질 것으로 믿는 일부 사람들의 과장된 논리일 뿐이다. 속이 빤히 보이는 주장이다.      


다만 과거보다 최근 북중경협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경협과 “앞으로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뒤섞여 있다. 개성공단이 북한으로서는 여전히 최대의 경협이다. 김정일이 베이징에 가서 아무리 “중국 개혁개방이 잘 되었다”고 떠들어대도 그는 중국식 개혁개방은 어렵다.


2000년 10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에게 “개혁개방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자, 김정일 스스로 “우리는 중국과 달라서 종심(縱深)이 짧아 개방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한번 개방의 물결이 밀려들면 걷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한 뒤 도라산 국민보고대회에서 “개혁개방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고, 이 때문에 통일부 홈페이지에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를 다 지우는 등 웃지 못할 블랙 코메디까지 연출했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내가 개방하지 못하는 이유’에 확실히 설득당해 넘어가버린 것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 지도부는 무엇이 이익이며, 무엇이 손해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천안함 사건 때 중국이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서 사건 당사자인 ‘북한’을 명기하지 않은 것도 김정일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중국의 국익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중국의 국익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로서는 천안함, 연평도 때 김정일 정권을 곧바로 응징하지 못한 것이 결국 국가에 손해를 가져온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우리사회는 관념론과 포퓰리즘에 얽매어 대한민국 공동체가 손해보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통령 뽑을 때 후보들이 무엇이 대한민국에 이익이며 무엇이 손해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유권자들 앞에서 미리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여튼, 필자는 이번 방중에서 김정일이 자신이 생각하는 조(북)-중 관계와 중국이 보는 중-조 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번이 그의 마지막 중국방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중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라는 사실은 양국이 다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이 중국에 가면 정치국 상무위원들까지 총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간 우선 순위를 인식하는 내용에서는 갈수록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은 북-중관계를 당 대(對) 당 관계 및 양국간 군사전략적  관계를 기본으로 보고 있다. 간단히 말해, 김일성-마오쩌둥 시기의 북중관계를 양국관계의 기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지난해 5월, 8월, 이번 5월 방중에서 계속 김일성-마오 시기의 북중관계를 되살려 내려고 온갖 프로파간다를 다 했다. 지난해 방중에서 김일성이 다닌 육문중학을 방문하고, 중국공산당과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기의 자취가 남은 길림성에서 후진타오를 만나고, 김일성-마오쩌둥이 함께 본 홍루몽(마오가 가장 좋아한 극)을 직접 북한에서 제작해서 미녀 배우들을 데리고 갔다(홍루몽 상연은 불발).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단장(牧丹江)에 있는 김일성의 혁명유적지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양저우까지 가서 장쩌민 전 주석을 만나 ‘대(代)를 이어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그래서 김정일 입장에서 중국의 지원은 6.25 전쟁 때처럼 1)군사적 지원 2)’항미(抗美)’를 공통분모로 하는 정치외교적 지원 3) 경제적 지원이다. 이것이 김정일이 생각하는 조-중 우호협력관계의 기본 골조이며, 상황에 따라 그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상수(常數)’를 군사적 지원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 입장에서는 식량보다 더 급한 것이 군사적 지원이며 핵심 품목은 전폭기, 전투기다. 북한의 주력기인 미그 21, 19 등은 이미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F-15, F16 등의 기종에 상대가 되기 어렵다. 주한미군이 보유한 스텔스 기종들은 실로 두려운 존재다.


예컨대, 서해 5도에서 북한군이 도발을 하면 상황에 따라 우리의 전투기, 전폭기가 출격하게 되어 있는데, 북한 공군도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미그 기종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김정일의 판단인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의 최신예 전투기, 전폭기가 절실하다.


더욱이 김정일 입장에서 북한은 중국을 대신해서 미국에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중국이 군사지원을 안 해주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인 것이다. 중국이 경제지원을 덜 해주는 것은 후차적(後次的)이다. 그래서 이번에 김정일은 ‘결심’을 하고 3천 킬로를 달려 장쩌민 전 주석까지 찾아가는 ‘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 중국의 입장은 중-조관계가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이 있다.  북한이 전략적 요충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동해로 진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동해의 ‘주인’은 수면 위 아래가 차이가 있다. 동해 NLL 이남은 물론 대한민국이 주인이고 NLL 이북은 북한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를 돌아다니는 잠수함 숫자로 보자면 대략 미국 러시아 일본 북한 한국의 순이다. 중국 잠수함이 여기에 비집고 들어오려면 북한 나진항을 거쳐야 한다. 중국은 나진항을 이용하여 동해로 진출하여 미국 러시아 일본과 경쟁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중국 동북지방 곡물을 뱃길로 남중국으로 수송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겠지만.


따라서 김정일 입장에서 나진항을 중국에게 빌려주는 것은 엄청난 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비록 북한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북 관계를 ‘대를 이어’ 마오쩌둥-김일성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개혁개방 한 지도 이미 30년이 넘었고, 지난 3월 1일자로 WTO 체제에 가입한 지도 10주년이 되었다. 


따라서 북한과 당대 당 관계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가대 국가 관계로 이동해서 중-조 관계도 국제규범에 맞게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이 빨리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나와서 체제의 공통성을 확보하고,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양국간에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는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핵실험에, 천안함 연평도에, 한반도 군사긴장을 일으키는 꼴통 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후진타오와 김정일 간에 도저히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김정일은 한반도에 군사긴장을 높여야 체제생존이 가능하고, 중국은 어쨌든 국제규범으로 이동해야 더 발전할 수 있으니, 이것이 중-조 관계의 근본 딜레마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김정일이 정말로 ‘화가 나서’ 돌아갔다면 그것은 군사지원을 둘러싼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미 지난해에도 부탁한 것을 중국이 거절했으니 앞으로 김정일이 다시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3차 핵실험, 미사일 발사, 서해 5도 도발 등 결국 또다시 한반도 군사긴장을 불러 일으켜서 중국에게 북한의 ‘군사적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미국과 이른바 ‘조선반도평화협정’ 협상을 강제하는 것이다. 올 하반기는 그래서, 북한의 군사도발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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