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일본 팬들의 사랑마저 잃어 버렸다”

▲ 지난 2005년 조총련 창설 50주년 기념식

재일 교포 3세 이석(가명·35) 씨.

그는 어려서부터 김정일을 위해 일본과 싸우는 ‘전사’가 되고 싶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에게 일본은 적일 뿐이었다. 그는 다른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을 부르는 일본어)처럼 북한체제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조선어를 쓰는 총련 학교를 다녔고, 북한이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배웠다.

그러던 1990년 초. 그는 총련 간부 자격으로 평양을 처음 방문했다. “북한은 내가 배웠던 곳과 180도 다른 곳이었다. 북한이 얼마나 비참한 곳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 씨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지만 조총련에 대한 실망이 커지며 2001년 탈퇴를 결심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0일 ‘김정일은 어떻게 일본 팬들을 잃었는가’는 기사를 통해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사회를 떠나는 재일조선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타임은 최근 몇 년 새 북한 정권의 추악한 실상이 잇달아 폭로되면서 김정일에게 등을 돌리고 조총련을 탈퇴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1955년 설립된 조총련은 일본 사회의 차별에 맞서 재일 조선인 사회를 보호하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등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존하는데 헌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재일 조선인 사회의 삶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자금을 건네는 창구로 그 역할이 퇴색해 갔다.

1960년대부터는 조총련의 주도로 재일조선인 수만 명의 귀국사업이 시작됐다. 지상낙원을 꿈꾸며 북한 땅에 도착한 이들의 앞을 기다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억압과 고통뿐이었다.

올해 69세의 최구일 씨는 조총련의 탄생과 몰락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1961년. 대학까지 졸업한 그였지만 일본 회사에서는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조총련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조선인 차별 줄어들어…日 사회에 동화

그러나 그는 곧 “조총련이 김일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김일성은 자이니치들을 북한 체제를 위한 인간 자원으로 활용했을 뿐”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조총련은 분단 이후 수 십년 동안 재일 조선인들이 반의무적으로 낸 기부금을 북한에 건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북한에 비밀리에 전달한 조총련은 현재 5억 달러의 빚을 지고 도쿄에 있는 중앙본부의 건물과 토지는 차압 조치까지 당했다.

조총련의 한 관계자도 “조총련이 재일조선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잘 대변하지 못하다보니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북한에 대한 충성심이 저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의 가혹한 인권탄압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2년엔 북한 정권이 일본인 납치 사실까지 시인하며 재일조선인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지난해 10월 북한 당국이 핵실험까지 감행하며, 일본 내에서 재일 조선인들이 설 땅은 극도로 좁아지고 있다. 조총련을 이탈하는 재일 조선인들의 움직임도 더욱 가속화됐다.

또한 지금은 일본 내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많이 완화되었다. 일본인과 결혼하거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점도 조총련 탈퇴가 늘어난 원인으로 보인다고 타임은 분석했다.

조총련의 관계자는 “비록 복잡한 감정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대한 재일조선인들의 호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월드컵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을 응원했다. 일본에 살면서 북한을 응원하는 것은 이제 매우 이상한 일이 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