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한은 1일 공동사설 형식으로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자”며 “우리(북한)의 사회주의 강성대국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사상으로 일색화된 주체의 나라”로서 “경제건설은 강성대국 건설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고 농업생산은 강성대국 건설의 천하지대본이며 올해 우리는 농사에 전국가적 힘을 넣어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는 1999년 북한의 공동사설의 내용을 전하는 당시 언론 보도 중 일부다. ‘강성대국 건설’ 부분이 눈에 띈다. 사실 북한정권이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미사일,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를 발사한 이후다. 북한은 일본 열도를 넘어간 탄도 미사일 발사를 놓고 “이는 주체조선 국력의 힘 있는 과시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의의 깊은 사변”이라고 부르면서, 1994년 김일성이 죽은 후 300만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의 후반부에 외형적으로 공개 출범한 김정일 정권을 강성대국의 ‘시초’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북한학을 전공한다는 한 교수는 한겨레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을 실었다.
“국민의 정부가 햇볕정책을 유지하는 이상 북한의 크고 작은 무력도발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어느 북한전문가의 말은 옳다고 본다.(중략) 그들이 추구하는 군사적 강성대국론이 대내외적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남한사회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수강경집단이 득세해야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조성에는 남한에 대한 무력적 침투나 충돌을 유도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것이 한국 좌파의 북한 해석 수준이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쓸 때 북한의 도발은 남한의 ‘보수강경집단’을 키워 군사적 강성대국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고,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의 핵실험은 ‘협상용’ 혹은 ‘자위용’이며, 이명박 정부가 햇볕정책을 수정할 경우 북한의 도발은 대북강경책에 의한 대결국면 때문이라는 것이다.
II.
그러나 1998년 대포동 미사일의 발사는 결국 2000년 6월 미북협상을 통해 북의 미사일 발사유예조치로 이어졌다. 결국 북한은 한국을 따돌리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 및 평화조약체결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명분을 거의 확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놀라운 점은 김정일이 바로 이러한 단계에서 더 이상 미국에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6년 10월 북한은 제1차 핵실험을 했다. 이어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년에 거의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이른바 10.4 합의를 통해 북한에 수 십조 규모의 원조를 약속했다. 이듬해 2008년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2012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이라는 조건부 포용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2009년 5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국장이 선포되었던 시기에 김정일은 제2차 핵실험을 했다. 김정일의 기대와 달리 이 때에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패를 거는 해’ 정도로 프로파간다의 강도를 조금 낮추었다.
“대화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가야 한다. 민족공동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력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각계각층의 자유로운 래왕과 교류를 보장하며 협력사업을 장려하여 북남관계개선과 통일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남조선 당국은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 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길로 나와야 한다.(중략) 민족 공동의 이익을 첫자리에 놓고 화해를 도모하며 각 계층의 내왕과 접촉을 통하여 협력사업을 추동해 나가야 한다.”
어느 것이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도발한 2010년 공동사설 내용이고 어느 것이 2011년 공동사설 내용일까?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전자가 올해 것, 후자가 지난해 것이다. 한심한 점은 올해의 공동사설의 내용을 놓고 한국의 북한전문가와 기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대화 강조 발언을 염두에 뒀다는 느낌이 강하다”거나 “남북관계 개선 없이 고립 탈피 어렵다고 본 듯”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적 해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북한의 공동사설의 내용은 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한 해의 남북 신수(身數)를 보는 기능’을 상실했다. 북한의 군사도발은 오로지 세 개의 조건에 의존할 뿐이다. 즉 (1)군사병영집단으로서 ‘도발의 효요성’, (2)한국을 위시하여 미국으로부터 ‘협박을 통한 원조 갈취’라는 보급투쟁의 필요성, (3)한국민의 기(氣)를 꺾기 위한 ‘공포조성’이 그것이다. 첫째는 북한체제의 본질과 관련하므로 항시적 성격을 갖고 있고, 둘째는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강약의 조절이 있을 수 있으며, 셋째는 한반도 전역의 적화(赤化)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적절한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역시 항시적 성격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해 북한의 대남도발은 한국정부의 이념적 성격과 대북정책과 거의 무관하게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대남도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좌파들이 ‘김정일에게는 대남도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절박함과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며 알아서 변호해주기 때문이다.
III.
그러나 북한정권의 도발의 약발은 연평도 포격사건을 통해서 많이 떨어졌다. 북한주민의 70~80%는 먹고 살기에 바빠서 각자 도생(圖生)의 길로 나선지 오래됐고, 군사도발이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뼈저리게 체득했다. 게다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2009년 말 화폐개혁의 실패는 북한인민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들었다.
또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더 이상 한국을 보급기지화 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입증했다. 연평도 포격 이후에는 전쟁공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북한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특히 20대의 강경한 여론은 한국군이 실탄사격훈련을 가능케 만들었다. 민주당과 좌파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올바르게 대응하는 방법과 용기를 다시 찾은 것이다.
결국 북한이 군사도발을 감행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모두 흔들거리고 있다. 지난해 말 ‘핵전쟁 가능성’을 운운하며 한국을 거칠게 협박하던 북한 정권은 불과 2주도 안되어 대남논조를 180도 바꿨다. 이제는 화해와 협력, 남북협상의 필요성과 6자회담 개최를 주장한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8일 “북남 당국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공식 제의한다”면서 “장소는 개성으로 하고 날짜는 1월 말 또는 2월 상순으로 할 것을 제의한다”고 제안했다.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한국정부가 북한의 유화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미국 대통령선거가 가까이 올수록 미국의 대북정책이 급속도로 연성화됨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일은 또 북한의 우라늄농축 공개 등에 별 뚜렷한 대응수단이 없는 미국이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암환자가 그 어떤 약방문이라도 믿으려고 하듯,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 ‘폐기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관리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6자회담을 붙잡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미국 협상파들의 계산 위에 김정일의 계산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히 4년마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미국발 훈풍의 계절을 김정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리고 약간이라도 기선을 잡았다고 판단되면 김정일은 핵실험이든 대남도발을 반드시 이어갈 것이다. 김정일이 도발과 협박 모드에서 평화와 협상 모드로 전환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듯이, 그 역방향의 전환에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정상적 정권이라면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위해서라도 이처럼 극단에서 극단으로 널뛰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은 널뛰기를 해서 잃어버리게 될 ‘신뢰’ 자체가 아예 없다.
IV.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대화제의에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상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유감표시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김정일에게 진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비록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더라도,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진정성’이란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다. 북한은 ‘때가 되면 중국과 미국이 남북회담과 6자회담에 나서도록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천안함 폭침에 사과나 유감표시를 계속 유보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을 분리할 것을 제안한다. 통일정책은 한국의 통일의지와 원칙을 북한인민을 포함하여 미․일․중․러 등 한반도 주변국가 및 아시아와 유럽에 장기적으로 확인시키고 설득시키는 것이다. 이때 통일원칙의 핵심은 평화통일 후의 체제가 한국의 헌법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임을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각인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고, 개별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사적 통일원칙을 갖고 오는 소아적 어리석음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물론 대북정책은 통일정책의 주요 수단이다. 북한인민에게 한국의 실상을 알리고 올바른 통일원칙에 대하여 믿음을 주려면 소통수단이 필요하며, 여기에 대북방송, 전단 및 심리전이 지속적으로 동원되어야 함은 필연적이다. 또 대북정책에는 북한인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동원되어야 한다. 즉 북한인민의 참담한 생활과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연구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그때그때 국제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통일정책이 방향을 제시하면, 대북정책은 구체적이고 국부적인 움직임에서 방향전환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북한인민의 해방을 위한 통일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정부가 통일에 대한 요지부동의 의지표시와 원칙고수와 함께, 파고가 잦을 때가 없는 한반도호(號)를 통일항(港)까지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