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 부시가 준 절호 기회 놓치지 마시오”

2차대전 당시 프랑스를 포함한 전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을 나치 히틀러에게 내던진 채 보따리를 싸들고 겉으로는 망명정부를 세워 대독항전을 계속한다는 명분으로 영국으로 도망첬다.

자신의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국민들은 나이 어린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80세의 노인까지 직업과 성별에 관계없이 300만 명 이상이 북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남쪽으로는 발칸반도와 에게반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에서 레지스탕스의 이름으로, 빨치산의 이름으로, 중무장한 독일군에게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그들은 도망간 자신들의 망명정부를 믿지도 않았으며 미국의 루즈벨트나 소련의 스탈린, 프랑스 드골은 더더욱 신뢰하지 않았다. 이해타산에 따라 언제든지 히틀러와 야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또 2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으나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과 기대는 바로 영국의 처칠이었다. 유럽의 평화는 히틀러와 양립할 수 없다는 처칠의 확고불변의 신념과 언젠가는 유럽을 나치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그의 약속이 이들의 목숨 건 투쟁의 보상이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히틀러가 망가뜨린 전쟁 전의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의지 하나밖에 없었다.

6년간의 지루한 전쟁으로 나치의 두꺼운 망토에도 구멍이 나기 시작하였다. 민심이 이반하고, 대규모 탈영병이 생기고 히틀러 암살기도 사건도 일어났다. 드디어 영 미 불로 구성된 100만 명의 연합군은 1944년 6월6일 1만3천여 대의 항공기와 6천 척의 전함으로 노르망디로 상륙하여 유럽해방전쟁을 시작하였다. 이후 1년 만에 나치는 패망하였다.

처칠은 자서전에서 “이 작전의 성공은 바로 레지탕스와 빨치산들의 희생적인 후방교란과 첩보수집 활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영국까지 미국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하는 처지가 되고 미국이 제1전선이 될 뻔했다’고 술회하였다.

처칠은 히틀러가 후계자인 부총통 루돌프 헤스를 망명으로 위장하여 영국에 보내 자신과 담판을 하려 했으나 만나 주기는커녕, 종전 후 전범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때려 평생 감옥에서 살다가 죽게 했다.

그 당시 다른 지도자라면 히틀러와 흥정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처칠의 굳은 신념과 역사에 대한 정확한 혜안이 2차대전 승리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북한 60년에 이런 기회는 없소”

우리는 오늘의 북한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북한의 공산주의 수령독재체제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취약성은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다.

중국은 문화혁명 10년의 뼈저린 고통을 통해 맑스 레닌주의의 피해를 스스로 깨닫고 등소평이 개방개혁으로 나라를 구했다.

반면에 북한은 어떤가. 지금 북한은 중국과 같은 피비린내나는 내부갈등을 겪지 않고도 대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있다. 왜 그런가. 부시 미 행정부의 “북한은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복귀하라”는 일관되고 집요한 요구가 북한 지도부에게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이지만 북한에게 중국의 문화혁명과 같은 괴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개혁의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 없이 아마추어리즘이 극에 달했던 YS의 경수로식 대북정책이나 DJ의 잘못된 햇볕정책 그리고 현 정부의 안개속 대북행보가 일방통행식으로 지속되었다면 북한 지도부는 이미 용도폐기된 공산주의 성채(城砦) 속에서 지금도 징 장구 치며 날라리 피리를 불고 있을 것이다.

이제 북한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더이상 덮을 것도 없다. 김정일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낡은 아파트 리모델링하듯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의 복귀를 향해 체제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만약 김정일이 소위 ‘통 큰 결단’을 하고 대개혁으로 나가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역사적인 대반전(大反轉)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지난 시기 북한주민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북한의 60년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과 같이 좋은 역사적 기회는 정말 찾기 힘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에게 역사적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부시의 일관된 대북정책이 아니었으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 지도부에게 독약이 아니라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보약이 되고 있다. 우리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시비를 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시보다 더 확고한 대북정책을 고수해야 한다.

처칠이 끝까지 히틀러와 흥정하지 않음으로써 전 유럽뿐 아니라 독일 사람들까지 나치로부터 구해냈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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