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연구] CEO 김정일―2 ‘중소기업형 지도자’

▲ 대흥단 5호 발전소를 방문하여 담당부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평안북도에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뜨락또르(트랙터) 160대를 주겠다.… 60마력짜리와 81마력까지를 몇 대씩 주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것을 잘 타산(계산)하여 제기해야 하겠다.”

2000년 1월 평안북도 경지정리 현장을 방문한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트랙터 몇 대, 몇 마력까지를 직접 챙겼다. 1996년은 북한의 식량난이 정점을 이루던 때였다. 주민들에게 염소를 기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졌다.

당국은 전국적으로 풀판(풀밭)을 조성해 염소를 비롯한 초식동물을 사육함으로써 육류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린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김정일이 이철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의 말을 듣고 지시한 것이다. 이철 대사가 유럽국가들이 목축으로 큰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을 김정일에게 보고한 것이다. 염소 기르기 지시는 이래서 내려진 것이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북한에는 풀밭을 만들 땅이 없었다. 그런 땅이 있었다면 옥수수 한 포기라도 더 심어야 할 형편이 북한이다.

80년대 중반에는 오진우 당시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손녀를 오스트리아 빈 음악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영감.(김정일은 나이많은 ‘공산’혁명1세대를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국가는 안 돼요.(김정일은 그러나 자신의 큰아들 김정남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국가인 스위스에 유학시켰다.) 사회주의 국가로 해요. 체코 같은 나라로 해요”하고 말했다.(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오진우는 거의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자였지만 이런 문제까지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오래된 얘기지만 김일성 주석 시대인 70년대 초반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평양 주재 알바니아 대사관 건물 옆을 통해 통학하던 음악무용대학(연극영화대학과 함께 북한의 양대 예술대학) 학생이 있었다. 바이올린 전공인 이 학생은 알바니아 대사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대사관 정원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놀다 북한의 사회안전원(경찰·현재 인민보안원)에게 발각이 돼 어디론가 끌려갔다. 대사의 딸이 선처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대사의 딸이 유서를 써놓고 대동강에 투신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보다 못한 알바니아 대사가 김일성 면담을 요청했는데 이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알바니아 대사는 알바니아 국가원수인 호자에게 구원을 청했다. 결국 호자 원수가 김일성에게 전문을 보냈고, 이 대학생은 김일성의 지시로 알바니아 대사의 딸과 결혼했다.

김정일이 처리하는 공식적인 일도 그렇다. 김정일은 노동당, 내각,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권력, 행정, 공안기구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문건을 자신이 전부 읽고 결재한다. 참모나 서기(비서)들에게 맡기는 일이 거의 없다. 그가 1주일에 처리하는 문건의 분량은 대략 500쪽 이상이다.(외교관 출신 탈북자 고영환) 시시콜콜한 일까지 김정일에게 보고되며, 참모와 관료들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에서 식량난 못지 않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전력사정이다. 김정일도 “전기문제부터 풀어야 석탄도 나오고 철과 기계도 나오며 비료와 쌀도 나오고 철도수송문제도 풀리며 모든 문제가 다 풀려 공장, 기업소들이 잘 돌아가고 나라의 전반적 경제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다.(99. 1. 1) 96년 한 해에 특수 권력기관들에서 전력공급과 관련하여 총리를 거치지 않고 김정일에게 직접 비준(결재)을 받은 것이 190건이나 되었다.(북한 노동당 전 비서 황장엽) 인민경제를 직접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김정일이 아니라 총리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정일은 건설, 언론, 예술, 군사 할 것 없이 심지어 정치범수용소 운영에까지 중요한 것은 100% 좌지우지한다. 그의 결심을 얻지 못하면 되는 일이 별로 없다. 힘있는 부서이거나 특수한 기관일수록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해 승인받기를 좋아한다. 자기 과시도 되고 문제해결도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때로는 서로 다른 기관이 상충되는 내용을 김정일 지시로 집행하다가 충돌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김정일의 성격 탓이 크다. 김정일은 통이 큰 지도자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일이 돌아가는 사정을 본인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타입이다. 마치 중소기업을 경영하듯 하는 셈이다. 중소기업의 CEO(최고경영자)는 회사 규모가 작아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한다. 자기가 집행해야 할 때도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많다.

김정일은 국가지도자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이런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은 전술에는 능하지만 보다 큰 개념인 전략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김정일을 이렇게 만든 데는 북한 당국자들의 책임 회피적 업무 태도도 한몫했다. 김정일이 수표(사인)한대로 하면 비록 결과가 잘못돼도 일단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방침대로 하지 않아 처벌받는 것보다는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지시받은 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출처:nkchosun.com

김영윤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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