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에 대한 ‘내재적 접근’…핵포기 못하는 이유

2007년 북한은 대외관계에서는 유화적인 국면조성, 내부에서는 강경 흐름이 병존하는 현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즉 대외관계와 내부 사정의 불일치 현상이다.

북한 외무성은 6자회담 등 핵문제를 비롯한 대외관계에서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가기를 원할 것이다. 이미 핵실험을 한 만큼 대미 협상에서 과거보다 유리해졌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6자회담을 천천히 진행하면서 외교적 방법으로도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대미관계 등에서 잠정적인 유화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 사정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에너지, 식량 등의 자원고갈 현상과 관료와 군, 특수기관 지배층의 무질서, 부정부패가 심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대북 금융제재로 인한 외화벌이의 어려움이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더 압박해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자원 배분을 둘러싼 군부의 ‘장군님’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있다. 이같은 추세는 대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올해는 군과 외무성의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북한문제를 분석할 때 꼭 ‘내재적 접근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대상은 ‘김정일’이다.

북한체제의 기본특징은 수령주의다. 지금은 과거와 다소 달라졌지만, 김정일(수령의 대리인)을 절대화 하고, 당 군 내각과 인민들은 그가 지휘하는대로 따라가는 기본 흐름은 남아 있다.

북한체제의 기본이 수령주의라는 사실은 북한 전문가라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수령주의가 어떤 식으로 현실에 작동하느냐에 대해 외부에서는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이 때문에 외부세계의 ‘합리주의’ 잣대를 북에 갖다대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6자회담 관련국은 북한이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핵폐기 절차를 밟아가면 평화적 핵이용권도 보장받고 에너지 문제 해결을 비롯하여 한 미 일 중의 지원으로 개혁개방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또 한반도 비핵화도 달성된다고 본다. 이는 합리주의 관점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북한’이 그렇게 보지 않는 게 아니라 ‘김정일’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북한’이라는 국가적 시스템으로서의 판단은 없고, ‘김정일’의 판단만 있다는 이야기다. 김정일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핵폐기에 들어가서 개혁개방으로 나가면 자신의 수령독재정권이 타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개혁개방과 수령독재정권은 양립할 수 없다. 이 점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이 애초에 9.19 공동성명을 받아들인 이유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군사동맹이 파기되어야 달성된다. 물론 북한은 이미 핵실험국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조선반도 비핵화가 목적이 아니라 국제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보장받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반도 비핵화, 즉 한미군사동맹 파기 전략을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김정일의 욕망과 현실 사이

그러면 김정일이 추구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현실로 가능한가? 물론 한국과 미국이 반대하는 한 가능하지 않다. 그러면 김정일은 왜 되지도 않을 일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것은 김정일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원래 주관적이다. 주관적 ‘욕망’과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97년 황장엽 조선노동당 비서는 남한에 망명하여 “김정일은 통일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처음 언급한 적이 있다. 김정일이 현실적으로 ‘통일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는 남한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속으로 모두 웃을 일이지만, 김정일이 그런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내재적 접근법을 사용해야 할 대상이 ‘김정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문제와 관련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을 때 김정일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판단하고 이에 기초해서 대책을 짜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의 대외적 행동패턴을 정확히 맞추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덜 틀리는’ 수준에는 접근할 수 있다.

그러면 김정일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정일의 주관적 욕망을 객관화하여 내재적 접근을 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 개혁개방 문제 등 김정일의 결정 없이는 그 어떤 변화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김정일이 어떠한 ‘행위’를 해왔는가에 기초해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94년 북한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핵활동을 동결하기로 했다. 대가는 경수로 2기와 중유 제공이었다. 이후 북한은 플루토늄 핵무기보다 제조와 관리가 용이한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은밀히 진행해오다 2002년 10월 적발됐다. 이어 6자회담이 진행됐고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先 경수로 제공, 先 BDA(방코델타아시아) 금융제재 해제를 내세우며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했다. 이후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10월 핵실험으로 갔다.

90년대 초 1차 북핵위기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김정일은 핵보유국을 기본목표로 하고 그 과정에서 협상을 벌여 이익을 챙겨왔다는 것이 사실에 정확히 부합한다. 이 말은 핵무기를 만들어 판돈을 키운 다음, 협상을 해서 대가를 받고 핵을 포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은 어디까지나 핵보유라는 기본목표의 종속변수일 뿐이다. 이익이 되면 협상을 하고 이익이 안되면 협상을 깨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이 판돈을 키우려고 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아직도 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판돈을 키우려 한다’는 말은 김정일이 만족할 만한 판돈을 먹을 수 있을 경우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렇지 않다. 김정일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핵이 있어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외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 즉 사담 후세인 꼴이 되는 경우는 막아야 겠다는 이야기다. 둘째, 김정일은 군을 정권유지의 기본축으로 선군정치를 하고 있는데, 핵을 포기하면 선군정치가 어렵다. 김정일은 핵이 없는 ‘장군님’을 군부가 계속 믿고 따라올지 의심한다. 셋째, 핵이 있어야 분란을 일으킬 수 있고, 분란을 일으켜야 협상을 하든 무엇을 하든 챙길 것이 나오게 된다. 챙길 수 있는 대상은 인접해 있는 남한과 중국, 그리고 한 다리 건너 일본이다.

이상 세 가지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와 둘째다. 김정일은 핵실험으로 첫째, 둘째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것이다. 아직도 미국 일각에서 대북 선제공격론이 남아있긴 하지만 적어도 북한이 핵물질을 테러집단에 이전하지 않는 한 미국의 선제공격은 가능하지 않다. 북한, 남한, 중국, 러시아가 반대한다. 결국 남은 것은 셋째인데, 이는 상대가 있는 만큼 김정일이 ‘게임’을 벌여야 한다.

BDA 문제에 ‘외교 융통성’이 있나

그러면 지금 김정일을 둘러싼 내외적 환경은 게임을 벌이기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김정일은 핵실험을 한 만큼 이전보다 게임이 유리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당장의 현안은 BDA 금융제재를 풀고 유엔 대북제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중 유엔제재는 남한과 중국이 적극적이지 않은 만큼 BDA 문제가 핵심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줄곧 미북 양자대화를 주장해왔다. 김정일은 미국과 양자대화의 끈을 이어가면서 강온 양면 전술로 나가면, 즉 미국과 직접 맞상대하면서 게임을 하면 과거 제네바 합의 과정처럼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는 김정일로서는 미국과 맞상대하여, 즉 매우 중요한 외교전을 벌여 이끌어낸 최초의 ‘성공사례’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고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김정일이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군을 끌고 나가야 하는 자국의 선군정치에 장애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이 BDA 문제에 원칙적으로 나갈 경우 김정일은 내외적 환경을 감안해서 강온 양면전술중 ‘강’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강’ 전술로는 추가 핵실험이 유력시 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BDA 문제에서 어느 정도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실 ‘융통성’이라고 말하기보다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핵심이다. 만약 BDA에 합법계좌가 있다면 미국이 풀어주어야 마땅하다. 합법계좌를 풀어주지 않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6일 로이터 통신이 미국이 BDA 자금 중 일부 합법계좌(800만 달러 추산)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과 부합된다고 본다.

그러나 위조달러 세탁 불법계좌는 북한이 위조달러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후 조치를 해야하고 미국으로서는 재발방지가 검증돼야 한다. 위조달러와 동판이 회수, 폐기돼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국제조사단이 북한에 들어가 조사활동을 벌이는 것이 원칙이다. 자국 화폐를 위조했는데 검증은 마땅하며, 이 점에서 중국과 한국에서 기대하는, ‘외교적’으로 해결 가능할 것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 더욱이 달러가 국제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우리식 표현으로 ‘적당한 선’에서의 봉합은 어렵다.

미 재무부는 이 점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외교적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김정일 정권은 미 위폐 조사단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BDA 문제는 겉으로는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미북간에 근본적인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정권은 BDA 문제를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풀어내기 어렵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CVID적인 핵포기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달러 고갈 北, 압박 강도 높여

그렇다면 현재 미북간에 진행되는 ‘BDA 양자대화’와 지금 추진되는 6자회담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외교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은 핵동결(핵프로그램 일시중단)을 양보의 마지노선으로 해서 BDA 문제 등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할 공산이 크다. 1차 핵위기 때도 핵동결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러나 핵폐기를 바라는 미국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북한은 초기에 유화국면을 조성하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강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6자회담은 의장국인 중국을 비롯해서 어느 나라도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6자회담은 이어져 가야 하는 것이다. 농담을 섞어 말하면 6자회담은 북핵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도 각국의 외교관들이 열심히 ‘밥값’을 해야만 하는 자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제로 달러 고갈현상과 대외 금융거래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북한과, 부시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 북핵문제에 가시적인 해결을 원하는 미국이 서로 압박의 강도를 차츰 높여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김정일이 먼저 추가 핵실험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좀더 높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달러와 에너지가 있어야 선군으로 수령독재정권을 안정되게 이끌 수 있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