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에게 ‘生死 양자택일’ 카드를 던져라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다.

북한의 핵실험후 우리에게 남은 실체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이 세계 여덟번째 핵실험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폭발력이 1kt 미만이었다, 실패에 가까운 실험이었다, 미사일 탑재 여부가 불투명하다, 소형 핵무기를 실험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등의 첩보는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엄연한 사실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그 결과 제논(zenon)이 검출되었으며, 공식적으로 인정되든 말든 핵보유국으로서 핵능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음이 ‘확증’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이같은 확증된 사실이다.

둘째,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엔안보리 1718호가 가동되었다는 사실이다. 탕자쉬안 중국 특사가 김정일을 만났는데 현재로서는 추가 핵실험을 할 계획이 없다더라, 미국이 금융제재를 풀어주면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더라, 김정일은 한반도비핵화를 원한다더라 하는 식의 말은 문자 그대로 ‘말’일 뿐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무슨무슨 소리를 했다더라는 식의 말은 믿을 필요도 없고 믿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목은 유엔안보리 1718호에 담긴 ‘말'(문장)이 어떤 ‘행동’으로 구체화 되는지를 관찰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유엔제재위의 활동을 검증하며, 한국정부와 중국이 안보리 결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를 폭로하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김정일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북한이 NPT 체제에 복귀하고 IAEA 핵사찰을 수용하며 사찰요원이 북한에 파견되어 사찰 프로그램이 ‘물질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핵폐기가 공증될 때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였던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지경에 오기까지 우리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어야 할 실체는 믿지 않고, 믿지 말아야 할 말을 믿은 것이다.

94년 제네바 합의가 실패한 것도 북한에 대가를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믿었던 것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카터 전 대통령에게 ‘우리는 핵을 가져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한 말을 믿은 것이 애초의 잘못이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사태가 촉발된 이후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씨 같은 사람은 북핵은 협상용이고 김정일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진정으로 원하는데 미국 때문에 북핵 해결이 실패했다고 끝까지 강변해왔다. 이는 김씨의 복심(腹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나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면 우리는 핵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 김정일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도 미국책임론과 미-북 양자대화를 주장하며 김정일의 핵개발 논리의 강력한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어차피 김대중씨 말을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간 사람들인 만큼 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북한은 5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이른바 평화적 핵이용권을 위장하여 핵개발을 했고, 90년대 초 핵개발이 들통나자 벼랑끝 전술로 국면을 바꾸어 94년 제네바 합의에 성공했다. 그 이후에는 제조하기 쉽고 관리비용도 적게 들어가는 고농축 우라늄 개발을 해오다 2002년 10월 발각됐고, 이후 협상용으로 계속 위장해오다 드디어 10월 9일 핵실험을 하면서 보유국으로 갔다. 정리하면, 북한의 목표는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었고 다만 그 과정을 평화적 핵이용권 위장 핵개발→협상용 위장 핵보유국으로 거쳤을 뿐이다.

북한의 목표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50, 60년대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에 핵관련 학과를 설치한 이후 지금까지의 핵개발 일지를 객관화 하여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짧게는 93~94년 NPT 탈퇴선언과 영변핵시설에 대한 핵사찰 거부의 과정, 2002년 10월 이후 사찰요원 추방→폐연료봉 재처리→협상→핵보유 선언→협상복귀와 9.19 공동성명 거부→핵실험 등 일련의 과정을 선입견 없이 팩트(fact)만 챙겨보면 명백히 핵보유국이 목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객관화된 행위들을 판단의 근거로 하지 않고 북한의 말을 믿거나 또는 객관화된 팩트를 외면하고 주관적 희망사항-설마 그럴리야, 아마 그럴 거야-을 덧칠하여 판단해온 데 있는 것이다. 정보(intelligence)란 철저히 주관주의를 배제해야 정보로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한 쓸모 있는 얼간이들이 ‘설마주의’와 김정일이 주사를 놓은 ‘협상용 환각제’에 빠져 결국 핵실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들의 오류는 앞으로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찾아올 수 있다.

북한 현대사 60년과 핵실험

김정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핵실험은 북한 현대사 60년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설사 지금 김정일 정권이 처한 내외적 환경이 불안하다 해도, 또 핵실험이 일정부분 내부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다 해도 남북관계에서 차지하는 핵실험의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왜 그런가.

북한정권 수립의 기반은 스탈린주의였다. 맑스-레닌주의에 개인숭배-군사우선주의 노선이 얹어진 데서 출발하여 66년 제2차 노동당 대표자회의, 67년 5.25 교시를 거치면서 김일성은 계급독재와 유일사상체계, 군국주의 노선을 유례없이 강화했다.

계급독재 정권은 기본적으로 계급투쟁의 대상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정권이다. 투쟁 대상이 사라진 계급독재 정권은 상상하기 어렵다. 계급독재의 대상은 지주 자본가 종파분자 기독교인 등등이었다. 이들이 계급독재의 희생이 되어 대부분 청산되자 투쟁대상의 자리에 그들의 자식, 친척들을 새로 끼워 넣었다. 확대된 연좌제다. 북한의 연좌제는 계급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여기에 ‘투쟁대상’이 하나 더 있다. 미국을 겨냥한 이른바 ‘제국주의 투쟁’이다. 북한은 국내의 투쟁대상이 청산되자 미국을 계급투쟁의 대상으로 한층 강화했다. 따라서 북한정권에게 미국은 계급투쟁의 대상, 즉 정권의 존립근거가 된다. 만약 미국이 투쟁대상에서 사라질 경우 그 자리에 무엇을 또 끼워넣을지 알 수 없지만, 김정일 정권이 반미투쟁으로 정권유지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김대중씨의 ‘김정일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말을 실현 가능성은 물론 이론적 측면에서도 믿지 않는다. 정권의 존립근거가 사라지는데 어떻게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김대중씨가 의미를 부여하며 계속 주장하는 ‘미-북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 조건이란 어떤 경우인가.

그것은 남한이 한미 군사동맹을 완전히 청산하는 경우다. 만약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김정일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미국과 수교까지 가려 할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 청산은 또 김정일 정권에게 ‘과도기 청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원래 ‘과도기 이론’은 사회주의 생산방식이 완성되면 계급독재를 약화시키고 공산주의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다는, 이미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해묵은 공산주의 이론인데, 북한의 경우에는 ‘남조선 혁명’이 완수되면 한반도에서 과도기가 끝난다는 이론과 관련이 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끼워넣은 것이 바로 ‘민족대단결’ ‘민족공조’ ‘우리민족끼리’ 등등 표현만 바꾼 민족우선론이다. ‘민족’을 내세워 한미 군사동맹을 파괴하고 ‘과도기’를 끝내자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김정일 정권은 이미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남은 것은 ‘선군정치’라는 이름의, 김정일을 두목으로 하는 ‘조폭사상’만 있을 뿐이다. 이 조폭사상 중에서 끝까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한미 군사동맹 파괴’다. 이것은 김일성-김정일 정권 60년을 관통하면서 작동해온 북한정권의 DNA 비슷한 것이다. 이것이 북한정권의 대남전략에서 움직일 수 없는 ‘실체’다.

북한 핵실험이 갖는 의미는 이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50년 동안 끊임없이 국제사회를 속이며 핵개발을 진행해왔듯이, 핵무기를 손에 넣은 다음의 단계는 한미 군사동맹 파괴에 실질적으로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핵실험이 갖는 역사적 맥락에서의 의미다.

김정일의 다음 전략은?

그런 관점에서 향후 예상되는 김정일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남한 내부에서 스스로 한미동맹을 파괴하도록 계속 추동하는 것이다. 이름 하여 ‘평화전략’이다. 이번 장민호 간첩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한 내부에 간첩조직과 반미투쟁조직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할 나위없이 고마운 존재들이 김대중씨 같은 매우 유능한 ‘쓸모있는 바보들’이다. 김씨는 28일 목포에 내려가 “이젠 핵실험을 해도 안심하고 산다”며 “앞으로 정치는 하지 않고 민족화해협력에 헌신할 것”이라고 가당찮은 발언까지 했다.

핵실험을 미국책임으로 덮어씌우는 김씨를 비롯한 사람들이 김정일로서는 실로 갸륵하고 기특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한미동맹 파괴는 가까워지게 된다. 암세포는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여 자기세포화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남한내 암세포들이 늘어갈수록 김정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둘째, 실제로 저강도 도발에서 고강도 도발로 수위를 높여가며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한내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논란을 계속 재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의 위협에 한미 군사동맹에 의거하여 원칙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은 정치적으로 ‘전쟁론자’로 몰리게 된다. 더욱이 북한이 핵보유를 한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북한과 대화하라고 부추기는 세력들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 남한내 반미여론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은 남한내 반미여론이 늘어날수록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게 된다. 또 미국 역시 핵을 가진 북한을 군사적으로 제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북한의 핵보유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같은 전략을 때로는 군사적 위협의 얼굴로, 때로는 협상의 얼굴로 번갈아가며 사용할 것이다. 또 그 효과는 핵실험 전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다. 김정일은 이번 핵실험으로 한미 군사동맹 파괴의 실질적인 새 장(場)을 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일을 강제로 개혁개방으로 끄집어 내야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국민들이 먼저 대각성을 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믿지 말고 행위의 실체를 믿는 것이다. 또 김정일 정권이 도발해오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예컨대 NLL이나 휴전선 등에서 도발해올 경우 교전수칙대로 하면 된다. 김정일은 핵무기를 결코 먼저 사용하지 못한다. 그날이 자신의 제삿날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들의 목숨보다 자기 목숨을 더 아끼는 것이다. 국민들의 목숨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독재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독재자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의 말을 믿지 않으며, 또 김정일과 유사한 말을 하는 김대중씨 같은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해야 할 일이다.

둘째, 김정일 정권이 명실상부한 핵정권이 되게 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한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처벌해야 하며 간첩단 사건과 연루됐을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색출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울러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심판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중심적으로 포진한 정치집단에는 표를 주지 않는 것이다.

셋째, 북한 핵문제는 김정일 정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김정일 정권 교체를 위한 국제공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핵문제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문제인식 수준과 능력을 감안할 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먼저 민간 차원에서 미 일 중 러와의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과거에 주변 4강 외교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나 각계 전문가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국제공조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넷째, 국제공조를 통해 김정일 정권에게 양자택일을 강제하는 것이다. 핵포기→국제지원→개혁개방의 길과 국제사회에 의한 강제 정권교체중 하나를 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너희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러한 프로그램에 따라 정권교체의 길을 갈 것이며, 이 프로그램에서는 김정일의 생명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여기에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한-미-일이 먼저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김정일은 스스로 개혁개방으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강제로 끄집어 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물에 빠진 개는 몽둥이가 가장 확실한 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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