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4월 개정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대신 처음으로 ‘선군사상’을 명기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그 체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조치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거나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며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한 체제의 사상적 기반을 보다 명시적으로 밝히고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이들은 풀이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4일 ‘일본의 한 소식통’을 인용, 북한의 개정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삭제되는 대신 ‘선군사상’이 `주체사상’과 짝을 이뤄 사용된 문구가 들어있”다고 보도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원래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말이 특별히 큰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며 “현실적으로 공산주의는 북한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 정치적 수사의 의미가 강하다”고 말했다.
북한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돼 있고, 노동당의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규정한 노동당 규약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998년 개정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사회주의와 함께 사용됐고 단독 사용된 경우도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진 조항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이 단어가 사용된 조항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근로대중의 창조적 노동에 의하여 건설된다'(2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문화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자연과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높은 문화기술 수준을 가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자로 만들며 온 사회를 인테리화한다'(40조),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로, 지덕체를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43조) 등이다.
장 실장은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라는 표현”이라며 “북한에서 사회주의 제도, 사회주의 생산체계 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규정과 제도들이 여전히 엄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빠졌어도 현실적 의미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매체들은 최근 들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선전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장 실장은 “북한 헌법은 이미 4월에 바뀌었고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통한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모든 인민과 자원을 동원한다는 북한의 전략이나 김정일 체제의 권력기반 강화라는 흐름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이번 개정헌법에서 표현의 변화에 대해 “북한이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개방으로 간다는 차원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며 “북한의 현 사회주의 체제를 가장 잘 설명, 상징하는 ‘선군정치’라는 사상적 기반을 더욱 명시함으로써 지금 북한 체제에서 선군정치 또는 선군사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군정치는 김 위원장의 통치방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부각시키고 완성하는 형태”라며 “헌법에 이를 명기한 것은 그만큼 김 위원장 체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헌법에 ‘선군사상’을 명기하고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강화한 데 대해 장 실장은 “정치적 의미에서 본다면 ‘김정일 체제의 완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김정일의 선군사상을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갖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군사상이 북한의 지도적 지침으로 규정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지도자로 부각되면서 김일성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 국방위가 국가관리의 중추기관으로서 집중된 권력을 갖고 후계구도를 주도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용현 교수 역시 “선군사상을 헌법에 명기한 건 ‘선군정치’라고 하는 김 위원장의 통치 방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부각시키고 완성한 것”라며 “김 위원장 체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내외에 보다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후계구도와 관련해 북한이 좀더 시간을 갖고 안정감있고 유연하게 북한 사회를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