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악수하려면 ‘알콜면’으로 손 소독해야”

“김정일을 만나는 사람은 아무리 최측근이라고 해도 김정일을 사람에게는 신변보호원칙이 있어요…신분대조를 철저히 해서 여러 과정을 거쳐서 가게 되는데, 처음에 이렇게 도착했을 때 봉투 하나씩을 줍니다. 일본상품이었는데 뜯어보니 알콜면이었습니다. 김정일과 악수할 수 있기 때문에 손을 소독하라는 겁니다.”

최근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을 소제로 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집을 발표한 탈북시인 장진성 씨는 20일 KBS 1라디오에 출연, 북한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김정일을 두 번 만난 적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씨는 “김정일을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고난의 행군’ 이후였는데 처음의 감흥과 달리 북한주민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탈북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북한의 체제와 주민들의 참상에 대해 낙서로 쓰기 시작한 것이 시집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금수산궁전이라는 시신 안치소에 엄청난 돈을 들였는데, 그때가 94년도로 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었다”며 “그것을 본 북한주민들은 말로 직접 표현 할 수는 없었지만 김정일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송 진행자가 “남한의 지원쌀이 대한민국 국기 때문에 못 들어갔는데, 북한 주민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자 장 씨는 “남한을 비롯한 외국에서 쌀이 들어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구제미’란 표현 자체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고난의 행군 이후 대북지원으로 배급제가 복원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시끄러웠다”며 “북한에선 군량미를 5년 동안 저축하고 6년 된 쌀을 교환해서 배급제로 주기 때문에 그러한 묵은 쌀보다는 시장을 통한 질 좋은 쌀을 선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는지에 대해 장 씨는 “학계에서는 북한의 가장 큰 변화를 시장화라며 그것만 강조하지만, 주민들의 가치관 변화가 더 크다”며 “일당평가제가 도입된 이후 내 몸값 계산을 하게 되어 집단보다 개인 연대감이 형성됐다”고 대답했다.

시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그는 “북한에 그렇게 대량 아사가 있었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너무도 그 부분에 대해 조용했다”며 “나는 우선 그것을 폭로하고 싶었고, 그런 대량 아사를 빚어낸 정권이 있다는 것도 고발하고 싶었다”고, 시집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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