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2015년부터 내리막길 시작이다

세상일은 간단치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늘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그 어떤 지속 상태를 바라지만(Status Quo Bias)’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계획을 갖고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변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 일단 변화를 당하게 되면 생존의 환경과 조건이 불리해지고 시간도 자신의 편을 떠나게 된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다. 국가, 기업, 개인도 매한가지다.

대한민국은 정치가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못해 정부, 민간 분야 모두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한편에서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또 한편으론 질서에서 무질서로 진행되어 왔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먼저 법과 질서의 절차민주주의가 확고해지고, 이어 국민과 정부가 공동체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여 자유민주주의가 고도화(高度化)되면서 꽃피게 된다. 자유민주주의가 고도화된 사회는 국민 개개인들의 자유와 창의성의 지평이 넓어지고, 동시에 국가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은 더 깊어진다.

한국사회는 자유민주주의 고도화의 길목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공동체 분열의 길로 가고 있다. 정치 갈등과 빈부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의 행정력은 권위주의 시대보다 떨어지면서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희망적으로 보아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 현상인지, 아닌 말로 대한민국이 망하는 길로 가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북한문제와 관련한 비정상적인 행태들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국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막은 것을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내세우는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북한인권법을 ‘삐라지원법’으로 왜곡하는 전직 총리까지 있다.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 후세대들이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이같은 발언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어찌 해서 불과 20년 전에 이런 저질 정치인들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정치는 ‘객관적으로’ 제정신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정치가 일정 수준 정상 궤도로 진입할 것이냐의 여부는,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첫째 헌재가 통진당 해산을 선고할 것이냐, 둘째 19대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될 것이냐로 압축된다. 이 두 사안이 해결된다면, 이후 대대적인 정치 혁신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사회가 앞이 좀 보일 것이다.

그러면, 김정은의 북한은 어떠한가?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지 3년이다. 3년 동안 북한도 변했다.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
첫째,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극단적인 공포정치로 자신의 독재체계를 세우는 데 일단 성공하였다.
둘째,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여 김정일 시기 체제생존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셋째, 對中·對美·對南 관계 개선에 실패하였다. 김정일 시기 중국·한국의 경제·외교적 지원이 거의 단절되었고, 제한적인 무역관계만 남게 되었다(對日·對러시아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나 한계가 분명하다). 
넷째, 국내적으로 주민들에 의한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당국이 변화를 주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끌려가면서 사후적인 조치로 대처하고 있다(과거 중국공산당이 개혁개방을 강력히 추진하고 인민들이 정부를 따라가던 양상과 다르다).
다섯째, 나선지역 제외 19개 경제개발구의 투자유치가 전무하고, 해외에 노동력을 송출하여 노예노동으로 통치자금을 벌고 있다. 마식령 스키장 등 일부 관광사업이 성공할 가능성도 낮다.  
여섯째, 북한인권문제의 국제여론화가 진행되어 2014년 3월 유엔북한인권조사위(COI)의 인권실태 발표로 세계적인 범위에서 북한 지도부가 반(反)인도 범죄집단으로 객관화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외교활동이 사실상 어렵게 되었고, 다른 나라들도 ‘범죄정권’과의 정치·경제·군사·문화·과학·관광 분야 등의 교류협력을 꺼려하게 되었다. 김정은 정권에게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타격이 심화된 것이다.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김정은 정권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멍석말이’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일곱째, 북한 주민들의 외부세계 정보 접근이 누적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와 관련한 탈북자들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한 국가공동체가 망하는 것은 대부분 내부 균열이 주된 원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북한은 전체주의 수령독재체제이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도 수령독재체제의 균열에서 시작될 것임은 자명하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하고 김정일 시기보다 더한 공포정치로 일단 자신의 독재체계를 세우는 데는 성공하였다. 일부에서는 집권 3년 안에 장성택까지 처형했으니 김정은의 권력이 안정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북한의 수령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또는 전체주의 수령체제의 이면(裏面)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견해이다.

북한의 수령체제는 수령 개인이 갖는 권위와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수령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당과 군·국가의 간부들이 한마음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수령과 수령체제를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사상적 기반, 국가자원 및 식량·에너지·외화와 같은 물질·경제적 기반, 당·군·국가의 유기적인 행정적 기반, 국제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외교적 기반 등이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기반들을 수령이 점검하고 운영할 수 있는 독재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수령 개인의 능력과 수령제 시스템이 잘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김일성 시기, 김정일 시기의 체제(정권) 내구력과 김정은 시기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시기는 주체사상, 안정된 진영외교, 계획경제, 김일성의 카리스마 등 수령체제의 좋은 환경과 조건 하에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였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시기는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어 큰 위험에 봉착하였으나 다른 기반들이 유지되고 있었고, 결정적인 시기에 중국과 한국이 김정일을 도와주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일본 등 서방세계도 북한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 체제는 사상·행정·물질경제·외교적 기반이 어디 하나 허물어지지 않은 곳이 없다. 경제적 기반은 20년 가까이 시장화의 진행으로 김정일 때보다 나아졌지만, 시장화의 진행이 김정은 체제의 내구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능할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 보면, 북한 수령체제의 기반은 맨 아래로부터 인민대중→노동계급→당→핵심 통치집단→수령으로 구축된다. 여기에서 인민대중과 노동계급은 주체사상과 배급제 붕괴로  수령으로부터 이탈되었다. 인민대중과 노동계급 속에서 주체사상은 벌써 와해되었고, 이 자리에 ‘돈 사상’과 시장을 통한 ‘개별 생존’이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이들 마음속에 당과 수령이 자신을 먹여살린다는 환상은 없다.

노동당은 중앙당(당중앙위원회)과 지방당으로 분리되어 갈등과 반목이 심하다. 중앙당의 영(令)이 지방당에 먹혀들지 않는다. 국가자원 배분의 심한 차별로 지방당이 중앙당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환경이 성숙되고 있다.(김정은이 핵문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19개 경제특별구에 공포통치로 외자유치를 독촉할 경우 예기치 못할 사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당·군의 핵심 통치집단과 수령(김정은)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전통적으로 볼 때 ‘동지(同志)적 유대관계’가 제일 유리하지만, 서른 살의 김정은과 대부분 60~70세 이상의 노인들인 측근들과 ‘동지 관계’는 가능하지 않다. 최룡해, 조연준, 황병서, 현영철, 리영길, 변인선, 김영철 등등을 그나마 김정일과는 억지로라도 ‘동지 관계’로 엮을 수 있겠지만 김정은과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들 사이에 ‘동지’로 엮여지는 사상적 또는 경험적 유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이들의 관계는 사실상 주종(主從)관계, 즉 지주(김일성·김정일)의 아들과 늙은 머슴의 관계이며, 최룡해 등 빨치산 가족의 경우는 지주 아들과 집사의 관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빨치산 원로들의 관계를 예우해주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70년대 초부터 매주 2회씩 정기적인 비밀파티를 열어 이상한 ‘동지 관계’라도 만들었다. 또 이 비밀파티 주요 멤버가 곧 ‘권력 서열’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30~40대로 자신만의 새로운 동지들을 정치 세력으로 만들려고 해도 인적 자원이 없다. 김정일처럼 빨치산 유자녀(만경대혁명학원)·남산학교·김일성종합대 동기들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이 스위스의 중학교 동기들을 데려와 ‘정치 용병’으로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김정은의 출생성분도 복잡하다. 김정은이 젊은 김일성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김일성은 죽을 때(1994년)까지 김정은의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김일성에게 손자는 김정남, 손녀는 김설송이었다. 셩혜랑의 수기 <등나무 집>을 보면 김정일이 ‘처형(妻兄)뻘’인 성혜랑에게 “남자 아이 이름으로 김정남 말고 다른 이름을 하나 짓는다면 무엇이 좋을까?” 하여 성혜랑이 ‘김정철’로 지어주었는데, 나중에 그 이름이 고영희의 첫아들인 ‘김정철'(김정은의 형)의 이름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시 말해, 김정일이 고영희에게서 얻은 첫아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성혜랑에게 짐짓 ‘엉뚱한 핑계’로 작명을 부탁한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은 고영희의 소생들을 되도록 김일성과 성혜림 가족에게 감추려 했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최근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김정은과 북한식 수령체제는 이미 내용적으로는 모순이다. 합치되는 게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몸에 맞지 않는 옷, 수령 시스템에 김정은을 억지로 집어넣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리한 환경에서 김정은은 장성택까지 제거하고, 노병들의 계급을 붙였다 떼고, 칠십 넘은 사령관들에게 체력 테스트를 하는 등 공포정치를 강화하였다. 또 올해 8월, 10월에 당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의 장성택 관련자 20여명을 무더기로 총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덕분에 김정은은 불과 3년만에 자신만의 유일독재체계를 수립하는 데 일단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지금 김정은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수령제 시스템에서 인민대중-노동계급은 오래 전 이탈되었고, 당은 중앙당-지방당이 분리되었으며, 김정은과 핵심 통치집단 사이에 동지적 유대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직계 가족이다. 진정으로 믿을 사람은 마누라(이설주), 여동생(김여정), 이복누나(김설송) 뿐인 것이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 북한의 수령제는 이미 갈데까지 다 간 것이다. 김정은이 최측근에 여동생 등을 배치한 것은 수령제 몰락의 필연적 귀결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북한식 수령제의 균열과 와해가 바깥으로 표출되는 것만 남은 셈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김정은은 너무 일찍 독재권력의 정점(頂點)에 올라섰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길게는 20년에 걸쳐 자신의 권력기반을 구축하였고(64년-85년), 김일성 사망 전 10년 동안 아버지를 대리하여 절대권력을 행사하였으며(85년-94년), 이 때문에 김일성 사망 후에도 17년간(94년-2011년) 자신의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김정은은 짧은 후계자 시기를 거쳐 김정일 사망 후 3년만에 독재체계를 구축하였다. 이것을 과연 ‘김정은의 수령독재체계의 완성’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김정은의 권력은 김정일 시기부터 점점 허물어져 온 수령제에서,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극단적인 공포정치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더 무너뜨리면서 홀로 독재권력의 정상에 오른 것이다. 정상에 올라보니 수령제의 권력 기반이 미약하기 그지 없다. 장성택을 죽이고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것. 그것은 김정은에게 소탐대실(小貪大失), 자승자박(自繩自縛)이었다. 지금 김정은의 권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앞으로도 김정은이 공포정치로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권력의 지속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정은이 독재권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돈을 벌어들여 측근들의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김정은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좋지 않다. 2015년부터 김정은에게 내리막길이 시작될 것이다. 빠르게 오른 길은 내려가는 길도 빠르게 된다.

김정은 권력의 명줄을 쥘 나라는 한국, 중국, 미국이다. 한국 정부는 이 게임에서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이번만큼은 한국 정부가 허물어져 가는 수령제를 다시 살려주는 어리석은 짓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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