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호전적 발언 전략전술 실종 보여준다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려라.”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

“싸움의 날 불바다에 잠기고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적진을 월내도 방어대장이 직접 사진을 찍어 최고사령부에 전송하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한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이 최근 쏟아내고 있는 호전적인 발언들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이렇게 상스럽고 야만적인 발언이 나오는 것은 별로 익숙하지 않다. 김정일 시대에는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김정일이 자기 측근들에게 얼마나 정제된 표현을 썼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북한 관영매체들을 통해 이런 수준의 발언을 공개한 적은 거의 없었다.

북한의 내치(內治)에서 최고지도자의 발언은 언제나 함축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외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해당 책임 부서나 간부의 입을 통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알 듯 말 듯 한 그들의 표현만으로는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 대화를 하자는 것인지 쉽사리 속내가 드러나지 않아,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언제나 평양발(發) 성명을 놓고 진위 가리기 토론이 이어졌다. 이런 방식은 본래 목표보다 상대방이 더 겁을 먹도록 한다는 점에서 ‘밑져야 본전’인 장사다. 북한과 대화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외교전’의 사전적 의미로만 보자면 상당히 고급한 전술이다.

중국의 병법서인 ’36계’로 따져보면 김정일의 방식은 ‘적전계'(敵戰計)에 해당된다. 적을 기만하면서 기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남 군사공격을 생각지도 않으면서 ‘전면대결태세’를 외치고, 아무런 일도 없이 조용한가 싶을 때 천안함 폭침을 감행했다. 한편으로는 남남(南南)갈등의 포석도 빼놓지 않았다. ’36계’의 제9계 ‘격안관화'(隔岸觀火)와 유사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내분이 발생했을 때, 조용히 그 내분이 극에 달하기를 기다려 이를 활용한다. 한국 내 종북세력들이 의혹제기를 그대로 이용해 천안함 폭침을 발뺌하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이 보여주는 행보는 과거 김정일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김일성 시대까지 소급해보더라도 지금까지 북한체제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행(奇行)이다.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김정은이 연평도 포격 등 대남도발을 감행했던 서해 도서 군부대들을 찾아 직접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을 연일 선보이고 있다. 북한 내부에는 전시상태에 준하는 명령이 하달되고 있으며, 정규 현역군뿐 아니라 예비전력(교도대, 노농적위대)과 청소년(붉은청년근위대)들까지 동원되고 있다. 일반 주민들 역시 시장 활동이나 봄철 농사준비와 같은 일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쟁준비에 내몰리고 있다.

북한내부에서는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나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당시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전면적인 방식으로 군(軍)과 주민들에게 전쟁 준비 임무를 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처럼 최고지도자와 전당, 전군, 전 주민 앞에 나서서 ‘전쟁의지’를 과시하는 것은 북한정권 수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만약 김정은이 이번 사태를 ‘대남위협’ 혹은 ‘대외과시’ 수준으로 끝내고 싶다 하더라도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지도자의 권위 옹호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북한에서 제일 말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최고지도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뒤집는 행동까지 허락된 것은 아니다. 최고지도자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뒤집는 순간 최고지도자의 권위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북한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놀라운 모순(矛盾)이다.

되돌릴 수 없는 탄력 때문에 결국 김정은이 대남도발의 버튼은 누른다면 그 후과는 고스란히 김정은의 몫이 된다. 우리 정부와 군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과거 정부처럼 확전을 두려워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 군의 응징을 받은 북한 피해지역 상황이 일반 주민에게 퍼져 김정은이 얻고 싶어 하는 ‘군사강국’의 이미지는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김정은은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선, 김정은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마저 완전히 고갈됐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김정은의 결정적인 약점으로 지목되어 왔는데, 반대급부로 아직 나이가 어리고, 외부세계 유학경험도 있으니 북한을 보다 상식적인 사회로 이동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북한 내외에 퍼뜨렸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김정은이 과거 김정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는 바람에 김정은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됐다. 이는 곧 김정은과의 대화나 대북지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크게 악화시키면서, 북한 주민들의 불만만 고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사회가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점도 김정은의 패착(敗着)이 낳은 결과다. 북한은 이미 은하 3호 2호기 발사 실험과 3차 핵실험을 통해 김정은이 원하는 군사강국 이미지, 군사지도자 이미지 구축 등에 충분한 자산을 얻었다. 기왕에 북한이 김일성 시대부터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김정일 시대에 그 프로그램 자체가 상당히 완성되었던 것이니 만큼, 이제 집권 1년을 겨우 넘긴 김정은 체제의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양손에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손에 쥐었다는 김정은이 직접 대남도발 프로파간다에 직접 뛰어들게 되면서부터 국제사회는 김정은의 속내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었고, 이번 사태의 숨은 ‘동기’가 김정은 권력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라는 합리적 의심을 떨칠 수 없게 됐다. ‘지금 김정은 체제 내부에 뭔가 문제가 있고, 그 때문에 대남도발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김정은 체제를 용인한다 하더라도, 그 내부요인 때문에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결국 김정은 체제전환 검토가 수면위로 급부상하는 셈인데, 이는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에 하나일 것이다. 김정은처럼 말(言)과 행동을 무분별하게 섞어버리게 되면, 반대쪽 사람들은 더욱 선명한 선택지로 쏠릴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왜 국제사회에 도발과 대화를 오가면서 핵개발을 했는지, 중국과의 관계에서 긴장과 협력을 오갔는지, 정권 출범 초기에 남북관계를 조절했는지를 김정은은 따져봤어야 했다. 혈기만 넘치고 노련하지 못한 김정은에게 그러한 외교와 대남관계의 전략전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도발은 우리에게 큰 위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속성을 빨리 파악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빨리 내놓게 하는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