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북한과 핵협상을 하였던 로버트 갈루치를 포함해서 미국의 외교관계위원회(CFR)은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협상을 할 것을 오바마 정부에 제안하였다. 나아가 북한과의 협상이 진행되면 한미군사훈련 축소나 폐지, 평화협정 등에 대하여 협상을 할 것도 권고하였다.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갈루치는 ‘북한이 핵포기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단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박근혜 정부는 거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북한과의 대화는 핵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의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기 전에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금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더 강한 제재 가능성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염려하여 망설이고 있다. 물론 중국의 기존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즉 북한의 핵개발을 ‘말로는’ 격렬하게 비판하고 반대하지만, 북핵 개발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북한의 핵무기 완성일 것이고,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핵을 완성한 상태를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필자는 이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지난번 칼럼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중국은 북핵을 이용하여 한미동맹의 해체를 시도할 것이다. 혹자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북한문제 해결을 미국과의 막후 협상에서 교환할 지도 모른다고 보지만, 그것은 국제법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일부 인사들의 제안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무책임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은 이미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의 핵개발이나 미국 전술핵의 한국 내 배치에 대하여 반대해 왔다. 미국의 핵우산이 한국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왜 북한의 미본토 ICBM 공격 가능성에 대하여 염려를 하는 것일까? 미국은 북한을 수백 번 초토화 시키고도 남는 핵억지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만일 한국을 미국의 핵억지력이 보호할 수 있다면 왜 미국 자신은 보호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북한의 한국 핵위협과 북한의 미국 핵위협은 미국에게는 그 심각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생각을 하도록 만든 이유 중에는 한국 정부의 안이한 대북유화주의가 크게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한국, 당신들이 북한의 핵위협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데 우리가 왜 나서겠는가?’라는 미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란 사실 북핵문제가 미국정부의 주요 아젠다가 아니라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다. 이 점은 과거 햇볕정책을 주장한 김대중-노무현 정권 뿐 아니라, 현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 정부의 국방・외교 담당자들은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겠지’라는 무안일함으로 시간을 낭비해 왔다. 이 점은 윤병세 외무장관의 ‘Korea Formular’라는, ‘남북 신뢰관계 형성과 북핵문제 해결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탁상공론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만일 한국 정부가 북핵문제에서 외교적·군사적 주도권을 지닐 수 없었다면, 북한에 정보를 대량으로 집어넣으면서 남북 간의 정보환류체계를 만드는 일을 꾸준히 추진했어야 했다. 정보유입은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거꾸로 통일부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의 신은미 출연 TV 프로그램 제작비를 KBS에 지원하면서 업적이라고 주장하였다. 통일부는 북한에 정보유입이 아니라 한국 국민의 정신적 무장해제를 추진한 것이다.
한국정부나 미국정부나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니, 일부 미국인들이 협상을 제안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은 바람직한 목표조차 없다. 갈루치는 북한에 원조를 주면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동결을 희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폭주를 잠시 멈추기를 바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북한은 이미 한국을 핵으로 선제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핵무기를 갖고 있기에 핵동결은 미국 본토 공격을 위한 ICBM 개발을 늦추자는 것뿐이다. 그러나 핵개발과 핵위협으로 재미를 본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명백하다. 미국은 결국 북한에 코를 꿰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북핵문제에 대하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문제 해결에는 몇 가지 원칙에 의거해 분명한 우선 순위를 정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 첫째, 북한의 핵사용을 강하게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북한이 재래식이건 핵이건 한국, 미국, 일본을 공격 한다거나, 혹은 공격하겠다는 의사만 표명해도 즉시 북한 전체를 초토화시키겠다는 ‘북핵 독트린’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과 미국 정부의 태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김정은의 핵선제 공격 선언, 즉 한국과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일상적인 선전공세로 간주하여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을 한국과 미국은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즉 유엔결의를 통해 혹은 개별 국가별로 북한에 매우 강한 경제제재를 가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여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 셋째, 북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북한 내부를 흔들어야 한다. 즉 한국과 미국의 대북방송 강화, 북한에 한국 TV 방송, 인공위성이나 드론 혹은 애드벌룬을 이용하여 북한에 무선인터넷을 제공하고, 북한 핸드폰의 WiFi를 이용한 정보 대량 유입, 무선 인터넷을 이용한 남북 정보환류체계 구축 등을 즉각 시행에 옮겨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북한을 압박할 경우, 김정은이 생존을 위해 핵공격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즈가 주장처럼, 북한의 김정은이 예측할 수 없는 미친 자가 아니고 이성적이라면 협상을 하자고 나올 것이다. 혹자는 왜 우리가 먼저 북한에 협상을 제의하지 말아야 하는지 비판할지 모른다. 그 이유는 북한이 먼저 제안한 협상의 결과는 한국과 미국이 지키겠지만, 한국과 미국이 먼저 제안한 협상의 결과를 북한이 지킬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만일 김정은이 이성적이지 않고 김일성이 6·25동란을 일으켰듯이 다시 한 번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가능성은 북한을 압박하지 않을 경우 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자신의 핵위협에 대응하지 않는 한미동맹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