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유지 병적 불안감으로 이복형 김정남 제거”

북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암살 배후엔 그의 이복동생 김정은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간 김정남이 아무런 직책도 없이 해외를 떠돌며 숨어 지내는 신세였다 하더라도, 김정은의 지시와 승인 없이 김정일의 장남이자 소위 ‘백두혈통’을 이어 받은 김정남을 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을 결단했을까.

① “中에게서 北레짐체인지 위협 느꼈나”=유력한 관측 중 하나는 김정은이 중국의 대북 레짐 체인지 위협을 느꼈을 것이란 진단이다. 중국이 북한이란 카드를 버리진 못해도 김정은 자신은 언제든 포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정은으로서는 중국이 자신 대신 김정남을 지도자로 세울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에도 중국 내에선 김정남이 더 적합한 인물이라 보는 기류가 존재했다. 최근에도 중국의 ‘대북 역할론’이 부각되면서 김정은으로서는 김정남이 자신의 ‘대타’로 부상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피부로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15일 데일리NK에 “최근 중국 내에서 레짐 체인지만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기류가 감지된다”면서 “중국이 북한 레짐체인지를 결심한다면 김정은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를 김정남으로 대체하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전문가도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인 북한을 버리진 못하겠지만 김정은은 언제든 버릴 수 있다”면서 “중국이 김정은을 포기한다면 그 자리에는 김정남을 세우려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문가는 “아마 김정은은 일찍이 김정남을 북한에 불러들여 제거하려 했겠지만 김정남이 완강히 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눈엣가시였던 김정남이 중국에 체류할 동안엔 중국 보호 때문에 손대지 못했지만, 중국 품에서 벗어나자 바로 암살을 결단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② “김정은의 병적 권력욕 때문”=북한 체제 불안정성이 고조되면서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노이로제에 시달리던 끝에 이복형 암살에 이르게 됐을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김정남이 실질적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을지라도 김정은이 체제 유지에 대해 병적 불안감을 느끼면서 암살까지 하게 됐다는 것.

실제 김정은이 장성택과 리영호, 현영철 등 최측근들을 연이어 숙청했을 당시에도 권력 강화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차원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권력 유지에서 느끼는 불안감의 발로”라면서 “김정은은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인물들을 죽이고 나면 한동안 안심하다가도 다시 시간이 흐르면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병적인 불안 증세를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③ “북한 내 ‘김정남 옹립’ 세력 포착?”=김정은이 북한 내에서 ‘김정남 옹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포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위 엘리트 그룹 내에서 암암리에 권력 암투가 벌어졌는데, 일부 세력이 ‘김정남 체제’를 조성할 여지를 남겨뒀을 수 있다는 것.

김 소장은 “북한 내부에 자체 권력 암투가 벌어졌을 수 있다. 김정남이 직접 연계됐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엘리트들 사이에서 김정남을 옹립하려는 세력이 존재했을 수는 있다는 것”이라면서 “반(反)김정은 세력들이 그나마 백두혈통 중 한 명을 옹립해 나가야 한다고 보고 뭔가를 시도했는데, 그게 김정은 눈에 띄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예 김정남이 북한 내에서 모종의 시도를 했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남이 북한 내에서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면 김정은에겐 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김정은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김평일일 것”이라면서 “김정남이 모종의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면 갑작스런 암살 이유를 쉽게 진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 내에서 김정남의 권력 기반은 거의 ‘무(無)’에 가깝기 때문에 규모 있는 시도를 하진 못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정남은 권력 투쟁에서 패한 이유로 북한 내에 잔존 세력을 남겨두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잊힌 인물까지 찾아내 죽인 것은 그만큼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불안하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④ “北 3대 세습 비판하다 눈엣가시 됐을 것”=김정남이 북한 3대 세습을 반대하고 북한 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오면서 김정은의 ‘눈엣가시’로 전락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후계자로서의 토대를 잘 다져놓지 못한 채 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이복형을 보며 상당히 격앙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2011.12)한 지 한 달 뒤 일본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면 3대 세습은 용인할 수 없다”면서 김정은을 겨냥해 “(후계자 교육이) 2년 정도인 젊은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나갈지 의문”이라고 공공연히 비판해왔다.

다만 김정남은 장성택 처형 이후엔 김정은에 대한 비판을 삼간 채 언론으로부터도 몸을 숨겨 왔다. 때문에 김정은이 굳이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김정남의 비판을 괘씸히 여겨 암살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대신 그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요인들이 김정은에게 위협으로 작용, 끝내 김정남 암살로 이어졌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