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등장 후 주민 세외 부담 크게 늘었다

김정일 사망 후 6개월. 국제사회의 우려와는 달리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 정권의 연착륙이 순조롭게 전개되는 외형을 보였다. 다만 반년간 김정은 정권을 지켜본 주민들의 반응은 “새 사람이 등장했으니 뭔가 새로워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과 “간부들이 그대로니 국가정책이 크게 달라질리 없다”는 회의감이 조심스럽게 교차하고 있다고 내부소식통들은 전한다.


김정은에 대한 기대감은 올해 상반기 내내 이어진 ‘축제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평양 소식통은 “김정은 동지가 나라를 맡으면서 국가 공급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음력설(1.23)을 맞아 북한 전체 가구에 5일 치 식량을 특별 공급하라는 내부방침을 하달했다.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최소 3일치 식량이 일제히 공급됐다.


김정일 생일(2.16)을 맞아 각 시도 당간부들에게는 ‘김정은 선물’이 차려지기도 했다. 중국산 남방과일과 당과류 등이었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지역마다 3~5일분 식량이 ‘명절 특별공급’ 명목으로 배급됐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4.15)을 맞아 특별공급이 절정에 달했다. 북한 최대 명절에 걸맞게 공급 품목만 ’15가지 이상’이었다. 김일성 시대와는 여전히 비교가 안되지만 김정일 시대에 비해서는 놀랄만한 내용이다. 찹쌀, 콩기름, 돼지고기, 설탕, 소주, 생선, 당과류, 과일 등이 특별공급 품목에 포함됐다. 북한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면 4~5만원 규모로, 비누, 양말 등 공산품은 전표를 발급해 구역별 국영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김정은은 이같은 축제 분위기를 공개연설 때 마다 한껏 활용했다. ‘인민생활 향상’을 누차 강조하며 집권 초반 이미지 쌓기에 주력한 것이다. 그는 4월 15일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고 말했다. 또 6월 6일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연합단체대회 연설에서는 “김정일 동지께서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뿌려놓으신 귀중한 씨앗들을 잘 가꾸어 빛나는 현실로 꽃피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축포 분위기 이면에는 주민들에 대한 세외(稅外) 부담 증가라는 그림자도 짙게 늘어졌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김정은 동지 시대에 와서 국가공급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결국 백성들 부담으로 채워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상반기 북한의 주요 국책사업마다 주민들의 세외부담이 하달됐다. 주요 세외부담 분야는 ▲김정일 추모사업 ▲김일성 탄생 100주년 관련 4월 행사 ▲농업생산력 증대운동 등으로 요약된다. 주민들의 세외부담 증가는 북한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시도별 당위원회마다 부담 규모를 제각각 산정한 탓에 지역별 할당량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월 김정일 영생탑 건설을 위해 전국 각 협동농장 농민들과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에게는 가구당 5백원~5천원씩, 학생들에게는 1인당 구리 300~600g씩 징발 의무가 지워졌다. 이와는 별도로 주민 1인당 10kg씩 김일성 생일(4.15)까지 완납하라는 파철(破鐵)거 운동도 이어졌다. 파철을 완납하지 않으면 태양절 특별공급에서 제외된다는 단서가 붙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진 파철로 북한은 ‘여맹호’ ‘청년호’라는 탱크를 제작해 4월 열병식에 선을 보였다. 


현금 징발도 눈에 띄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북한의 주민 세외부담은 현물 납부를 기본으로 하고 현물 준비가 안될 경우 현금으로 징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아예 현금으로 징발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함경북도 무산에서는 4월 태양절 준비 행사를 명목으로 환경미화 및 예술공연 비용을 주민들에게 분담시켜 세대마다 2만원씩 징발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조선인민군 창건(4.25) 80주년을 맞아 군부대 원호물자를 보낸다는 명목에 따라 가구당 1만원씩 돈을 내야 했다.  


여기에 해마다 강조되고 있는 ‘농업주공전선(農業主攻戰線)’ 구호에 따라 퇴비모으기 운동(1월)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졌고, 비료난을 해소하기 위해 농장원들에게 “1인당 화학비료 5kg씩 납부하라”는 지시(4월)도 떨어졌다.


5월 22일부터 공식 하달된 ‘농촌지원전투 총동원령’에 따라 노동자, 학생, 도시주민들의 농촌지원 동원이 전국적으로 시작됐다. 통상 1개월 전후 정도였던 농촌지원전투는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내기가 지체되면서 지역마다 최소 1개월 이상 연장되었으며, 북한당국은 이를 ’70일 전투’로 규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김정은 집권이후 상징적인 국가공급이 소폭 늘어나긴 했으나 주민들의 세외부담 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종합된다. 이와 같은 불균형 속에서 김정은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유로는 북한 당국이 시장에 대해서만큼은 김정일식의 무지막지한 통제를 자제해왔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김정일 사망 전 5년 동안 북한당국은 식량거래 금지, 가격하한제, 장사 연령제한, 시장 개방시간 축소, 외화사용 적발, 한국산 물품 거래 금지 등 쉴틈없이 시장통제 정책을 쏟아냈다.


김정은 집권 6개월 동안 북한의 시장은 최근 10년래 가장 평온한 시절을 보냈다. 북한 당국이 뚜렷한 시장통제 정책을 내놓지 않았던 결과다. 물론 지난해 말 김정일 사망 직후 약 일주일간 북한의 모든 시장이 공식 폐쇄되긴 했으나, 시장 운영과 관련해 과거 관행을 뛰어 넘는 통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월에는 ‘시장 거래 가격의 국정가격화’와 ‘외화사용 금지’ 등의 조치가 공표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2월 이후부터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시장 식량가격과 환율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지난해 말 김정일 사망 직전 5,000원(kg)을 돌파했던 쌀 가격은 상반기 내내 3,000원대에서 소폭 변동을 보였고, 이에 따라 달러환율 역시 4천원대(1$)에서 등락이 엇갈렸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최소한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왕에 생산과 공급에 대한 중앙 차원의 지휘가 무의미 해진 상황이라, 중앙은 시장을 묵인하고, 지역 당조직에서는 주민들에 대한 세외부담 및 외화벌이로 상징적인 국가공급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상황 유지에 나쁠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신의주 소식통은 “각 단위별로 이것저것 걷어가는 것은 많아졌으나, 기본적으로 장사(시장)를 지 않았기 때문에 민심이 크게 나빠진 것은 없다”면서 “백성들 입장에서는 국가에서 공급해준다면서 장사를 막는 것 보다, 장사를 허용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걷어가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이 집권 초반기를 거치며 통치력에 자신감이 붙을 경우 시장 통제정책을 다시 만지작거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양강도 소식통은 “지금 우리 돈은 돈으로써 가치가 하나도 없다. 조만간 다시 한 번 화폐교환이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 묵인은 결국 자본주의를 하자는 말인데, 우리나라가 과연 자본주의로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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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진 기자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