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후 北 무례하고 막가파적 인상 강화돼

김정은 정권의 특징

첫째, 노동당 중심의 정치로 복귀하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은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계엄통치를 통해 노동당을 빈껍데기로 만들면서 선군정치를 펴 왔으나, 김정은은 선군정치의 구호는 유지하면서 노동당 중심 정치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노동당 대표자대회를 기점으로 당의 국가와 군에 대한 통제강화의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당대표자대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당정치국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회의 등을 열어 공식적인 주요 결정을 내리고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있다.

특히 2013년에 들어서는 ‘당 세포비서대회'(1.28~29), ‘전군 당 강습지도일꾼회'(2.22), ‘3대 혁명소조원회의'(당외곽조직 2.27) 등을 연이어 개최하면서 당의 하부조직까지 재정비하고 있다. 김정일이 내세운 기본 노선이고 비대해진 군을 의식해서 선군정치의 구호를 유지하고 군을 중시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의 지도와 통제 아래 두겠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은 당료출신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등용과 리영호의 해임이었다.

2013년 9월, 8년 만에 개정한 전시사업세칙에서 노동당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전시상태의 선포 권한이 종전 ‘최고 사령관’이라는 최고지도자 개인의 단독 결정에서 ‘당 중앙위, 당 중앙군사위, 국방위, 최고사령부 공동 명령’으로 수정했으며, 전시사업 총괄 지도기관을 종전 국방위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로 한다고 변경했다. 이런 움직임은 북한이 2013년 6월 최고지도자에 대한 주민들의 행동 규범을 적시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하면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당에 대한 충실성과 실력’으로 수정하는 등 노동당을 강조한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노동당 중심의 정치로의 복귀는 첫째 비상사태가 수습되어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선언의 의미가 있으며, 둘째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에서 노동당을 통한 통치가 명분과 정통성 확립에 좋으며, 셋째 기왕에 전 사회적으로 가장 광범위하며 체계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노동당을 활용하는 것이 국가와 군에 대한 통제에 효율적이며, 넷째 할아버지의 이미지와 방식을 추구하는 것에도 맞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김정은 정권이 경제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회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위에서 구체적으로 충분히 열거했다.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회생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외환경과 대내적으로 외자유치가 가능한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 얼마나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밀고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개방으로 인한 체제위험이 점증하여 체제유지와 충돌하는 지점에서도 계속 개혁개방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배짱과 정치적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가 핵심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회의적인 측면이 많다.

셋째,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천명했다. 2012년에 두 차례에 걸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2013년 2월 12일에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2013년 3월부터 한국에 대한 위협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며 개성공단 폐쇄 조치까지 하면서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천명했다. 김정일의 유훈인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더 이상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체제와 정권유지의 결정적인 담보물을 수호하겠다는 선언인 측면과 더불어 경제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넷째, 중국에 대한 의존도 심화, 대남정책에서의 긴장조성과 거리두기, 틀에 박힌 대미정책을 기조로 하고 있다.

2013년 한반도 위기국면을 수습하기 위해 최룡해와 김계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최룡해는 군복을 벗지 않으면 시진핑을 면담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에 따라 급히 군복을 벗고 만나는 수모를 겪으며 저자세 외교를 했다. 한편 중국의 거듭된 만류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한반도에서 수시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 중국은 많은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 3월부터 대남협박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으나 발사대에 세웠던 미사일 발사를 접어야 했으며, 개성공단 임시중단 정책도 대외적으로 이미지만 구기고 대내적으로도 불만을 키우는 큰 실착이었다. 이산가족 상봉을 몇 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연기 및 파기한 것도 매우 무례하고 막가파적인 인상을 강화하고 있다.

선행학습효과가 있는 조건에서 2012년 2·29 미북(조미)합의를 한 후에 4월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여 합의를 깬 것은 미국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각인을 줬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012년 10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인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를 개최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6자회담 당사국들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과 불가침 협정(non-aggression agreement)을 체결할 준비도 돼 있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즉각 거부의사를 밝혔다.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과의 관계는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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