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지도부’는 5년간 ‘김정일’ 못넘는다

한반도 정세가 숨고르기에 들어가 있다. 5월 7일 박근혜-오바마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동아시아 정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남·북·미·중+일·러의 말(言) 대 말, 외교전략 대 외교전략의 국면으로 넘어갈 양상이다.


먼저 최근 한반도 정세를 둘러싸고 콩볶듯했던 위기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전개될 새 국면에서 우리는 어떤 대목을 집중 관찰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 간단히 짚어보자.    


북한은 지난해 12월 은하 3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발사, 올 2월 3차 핵실험에 이어 유엔안보리 결의 2094호 채택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3월 5일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부터 ‘한밤중 전략로켓사령부 발사 대기명령’까지 온갖 버라이어티 쇼를 다 보여주었다. ‘말(言)’과 ‘쇼’로 할 수 있는 협박은 거의 궁극지경에 이르렀다.


한달 보름여 동안 김정은 지도부가 사용한 방법은 ‘핵폭탄급 폭언’과 ‘제한적 액션’이었다. 액션은 무수단급 미사일 이동과 개성공단 사태였다. 이중 개성공단 사태는 남북 간 ‘전략게임’이라는 연속성을 지니면서 현재 진행 중이며, 다른 말폭탄과 액션은 일단 허공으로 모두 사라졌다.  


3월 5일 이후 한반도 정세에서 북한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해, 김정은은 말폭탄과 액션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개성공단 사태로 얻어낸 것은 임금 등 1300만 달러다. 하지만 개성공단 사태로 인해 앞으로 김정은에게 들이닥칠 ‘후과’는 아마 수백억 달러로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김정은이 무슨 쇼를 하든 상대해주지 않았고, 중국은 드러내놓고 북한을 냉대하였다. 한국의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박살내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화제의’를 하면서 북한의 긴장고조 전술에 김을 빼고 개성공단 사태에서 ‘중대조치’ 발표로 선공(先功)을 가했다.


한국의 개성공단 인력 철수는 북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황한 북한이 내놓은 반응은 “우리가 먼저 중대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수세적인 물폭탄이었다.


북한이 어제(5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내놓은 개성공단 정상화 조건이라는 것도 “대북 적대행위와 군사적 도발을 먼저 중지해야 한다”는 앵무새 소리 같은 반복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은 지도부’의 대남·대외 전략전술의 수준은 김정일 시기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다. 도대체 ‘창조적인 아이디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협박에 사용하는 말과 프로파간다 내용만 더 험악해졌을 뿐 20년 동안 사용해온 매너리즘 사이클을 그대로 되풀이 하였다.


‘김정은 지도부’는 왜 그 정도밖에 되지 못했을까?


필자는 김정은을 비롯하여 김경희, 장성택, 최룡해의 새 지도부가 김정일의 전략전술 수준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김정일의 전략을 뛰어넘어서는 안되는 ‘금지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김정일의 이른바 선군주의 생존전략을 더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더 교조적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정일의 ‘선군사상’은 그가 사망한 후 헌법에서 북한식 표현으로 ‘법화(法化)’되었다. 따라서 김정은 지도부에서 김정일 시기보다 더 발전된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수령제’ 전체주의가 갖는 최대의 약점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자유로운 해석, 창조, 다양한 응용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앞으로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와 말씀에 대해 소위 ‘유일한 해석권자’로서 창조적인 해석을 내놓고 부하들을 따라오게 만들려면 아무리 짧아도 5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김정일은 길게 잡아 1964년~1985년까지 20여 년 동안 김일성을 따라배우면서 ‘수령 수업’을 받았다. 반면 김정은은 시간이 짧아 김정일로부터 수업을 받지 못했다. 그 차이가 이번에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북한의 수령제 시스템으로 볼 때 수령 개인이 갖는 통치 능력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아무리 경험 많고 노련한 당 비서들이 보좌해준다 해도, 김정은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니까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전략전술도 결국 ‘김정은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 구조는 적어도 5년간 들쭉날쭉하면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환언하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5년 내에 반드시 북한문제 해결의 중요한 물꼬를 터뜨려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5년이 넘어가면 김정은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뇌(腦)는 ‘지도자로서 발육 중인 뇌’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무엇보다 주도권(initiative)을 장악하는 데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소급해서 말한다면 6.25 전쟁 때부터 항상 북한이 먼저 공격하고 남한은 반격하는 형국이었다. 북한은 ‘갑’, 남한은 ‘을’이었다. 


이제부터는 반드시 이 구조를 바꿔주어야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상대에게 ‘신뢰’를 강제하는 주도권을 우리가 잡고 있어야만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선순환으로 돌릴 것이냐, 악순환으로 돌릴 것이냐를 가르는 중요한 결정권을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인력 철수’는 주도권 장악에서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향후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 전개과정은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 비핵화이다. 구체적으로는, ‘비핵화로 방향을 잡는 비확산(non-proliferation)’-현존 상태에서 핵개발 중지(freezing=핵양산 중지)-핵폐기(abandoning all nuclear weapons and existing nuclear programs )로 가는 개념계획(con-plan)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북한은 미-북 핵군축 회담과 평화협정에 강조점을 두면서 한반도 정세를 ‘평화협정 분위기’로 몰아가는 전략을 선택할 것이고, 이 방향에서 국면 전개가 불리해지면 4차 핵실험,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으로 한·미·중을 압박해갈 것이다. 향후 한반도 정세 향방의 핵심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만약 북한이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 극단적 벼랑끝 전술로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협상을 위한 북미 대화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는 미국과 대화와 협상, 평화를 원한다”는 식으로 프로파간다를 전개할 경우, 중국·러시아가 여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일부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한 테이블에 올리자”는 여론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남한 내 종북·친북세력이 “이제는 남북관계에 평화와 신뢰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박근혜 정부를 흔들어댈 경우, 한반도 정세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매개로 대화와 협상을 전개하면 그 주도권은 북한과 미국, 중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고, 한국은 본의 아니게 ‘을(乙)’로 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한·미·일·중이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북핵문제와 함께 반드시 북한 개혁·개방 문제를 병행하는 다자회담으로 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될지, 재개된다면 어떤 형식으로 재개될지 알 수 없으나, 한국과 미국, 중·일·러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전략적 노선은 ‘先 북한 비핵화 조치(=NPT 복귀, IAEA 사찰 수용)’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핵문제 외에 동아시아에 새로운 갈등국면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외에 골치아픈 이슈가 중-일 간 갈등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수정과 이와 동일티켓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핵무장’이다. 일본의 핵개발 능력은 3~6개월이면 간단히 ‘핵보유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핵실험도 필요없는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수정 움직임은 한국과 중국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특히 중국 내 배일(排日) 민족주의 경향성에 불을 지를 것이며, 이는 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우경화와 중-일 갈등이 높아지면 한반도에서도 ‘배일’을 매개로 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이는 오로지 ‘항일정권 프로파간다’로 60여 년 동안 수령독재를 해먹은 북한정권에게 유리해지는 국면이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대남전략으로 나갈 것이며, 박근혜 정부가 여기에 편승하려 할 경우 또다시 남남갈등이 전개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지지도는 또 추락하게 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은하 3호 ICBM 실험 이후 전개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4월 케리 미 국무장관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가 한국을 떠나 미-중으로 무게중심이 점차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가 대한민국에게 반드시 유리해질 것이라는 보장이 별로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한미 양국이 북한문제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을 개혁개방 체제로 변화시키는 전략목표를 공유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중이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문제 해결의 길은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과 연대하면서, 중국과 협력하여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추동해가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의 중요한 한쪽 당사자인 2400만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역할을 하도록 일깨워야 한다. 현 수령체제에서 북한의 주권은 사실상 ‘수령(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있으며 2400만 주민은 수령의 지위를 강화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정치적으로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북한주민들에게 ‘주권’을 돌려주는 것이 북한주민을 살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정보자유화가 가장 중요하다.


셋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성공시키려면 대북정책 리스크 관리 및 체제변화를 위한 ‘플랜 B’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눈앞에 전개될 향후 몆년은 앞으로 대한민국 100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앞으로 엄청난 행운아가 될 수도 있고, 자라오는 남북의 7500만 후세대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어리석은 세대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한 평가가 불과 10년 뒤면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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