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정권수립기념일을 맞아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과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5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선대(先代)의 유훈이자 지난 5월 노동당(黨) 대회에서도 천명한 ‘핵보유국’ 주장을 대내외에 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 3월 김정은이 핵탄두 폭발시험과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시한 뒤 핵탄두 및 무수단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운반체계 기술 개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왔다.
또한 체제 유지를 위해 강력한 핵무기가 필요한 김정은의 조급성이 반영된 것으로, 주민들에게 ‘미제(미국)도 꼼짝 못하는 강력 무기 완성’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김정은 인권 제재와 대북 정보 유입 강화 등 북한 체제 흔들기에 나선 미국과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주면서 국제 공조에 대해 반발하고 고립과 제재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한미, 한중, 한일,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 공조가 재확인된 데 이어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소속 18개국 정상들이 북핵 포기를 촉구하는 ‘비확산 성명’을 처음으로 채택하는 등 모습을 지켜본 북한 김정은이 ‘해볼 테만 해 봐라’는 막가파식(式) 도발을 감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은 데일리NK에 “본인들은 어떤 억압에는 항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외부세계에 강조하면서 내부를 결속시키려는 목적”이라면서 “북한은 이런 극단적이고 최악의 사태까지 가야 한반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도발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이어 “북한은 외부와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군사력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군사적 카드를 통해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면서 “다시 말해 이번 핵실험도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압박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방경제포럼, 항저우에서 열렸던 G20 회의 등에서 제재 가속화 등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 도발을 강행한 것은 ‘핵 포기는 절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김정은 입장에서 정권수립기념일에 맞춰 핵실험을 한 것은 자신이 점진되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마이웨이(MY WAY)를 가겠다는 의지를 대내외 표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현재까지 핵실험 중 가장 큰 규모다.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2009년 5월과 2013년 2월 2, 3차 핵실험을 했다. 특히 앞서의 핵실험이 3년 주기로 이뤄진데 비해 이번 5차 핵실험은 불과 8개월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측정된 인공지진파가 5.0이라면 20kt(킬로톤·TNT 1000t의 폭발 규모)이 넘는 위력이다”면서 “지금까지 핵무기 투발수단의 다종화를 보여줬던 북한이 안정적이고 강한 폭발력까지 보여주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게끔 몰고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북한은 이번 실험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경량화라는 목표를 계속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핵 실험 기간 단축은 이제부터는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사이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안을 고려해서 필요할 때마다 실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연구위원은 “뒤집어서 말하면 북한의 핵무기 기술 수준이 그만큼 향상되었음을 의미하는 한편,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물질이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