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앵벌이 외교’ 오래 못간다

최룡해의 방중(訪中) 후 북한의 반응을 보면 역시 ‘북한 스타일’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접견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세 차례나 언급했다. 반면 최룡해 발언의 핵심은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문제 해결”이었는데, 귀국 후 북한은 “북-중 우호관계”만 언급했다. “핵-경제개발 병진 노선”도 재차 강조했다.


북한 매체는 왜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생전의 김정일은 2000년부터 중국을 6, 7차례 방문한 것으로 기억된다. 돌이켜 보면 김정일이 중국 광저우의 개혁개방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천지개벽” “상전벽해” 식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에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북한에 돌아와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했다.


이것이 ‘북한 스타일’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룡해든, 김정일이든 중국 가서 무슨 소리를 했던지 간에 인민들이 시시콜콜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이 정보를 모르는 것이 통치하는 데 좋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그저 “북-중 관계는 여전히 좋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인민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의견이 분열되고 통치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전체주의에서 의견 분열은 적(敵)이다.   


둘째, 최룡해가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내놓은 이유는 “앞으로 북한과 중국이 그런 방향으로 함께 가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또 그 말은 ‘북-중 관계’에서 필요한 말일뿐, 북한의 국내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국내 관영매체에서 반드시 보도해야 할 이유가 없고,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그저 “핵-경제건설 병진”이라는 당의 방침만 주민들에게 세뇌시키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관영매체가 최룡해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이 없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 해도, 정말로 이유가 그뿐일까? 아닐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은 이미 나름의 ‘동북아 게임’에 들어가 있다.


지난 14일부터 4일간 북한을 방문한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 관방 참여(총리 자문역)는 “평양에서 일·북 수교 협상 재개 등과 관련한 사무적 협의를 끝냈으며, 남은 것은 아베 총리의 판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권철현 전 주일 대사는 “이르면 이달 말~6월 초에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중국에 간 최룡해도 아베 총리의 방북 일정 및 북·일 간 오간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일본을 끌어들여 신경을 건드리고 중-일 사이에서 이른바 ‘전술적 주체외교’ 장난을 치려는 모습에 속이 뒤틀렸겠지만, 이미 중-소 이데올로기 갈등 때부터 해묵은 북한의 ‘양다리 소행머리’라는 사실을 중국은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돈이 궁한 북한이 “우리 인민들이 배가 고파 일본 돈(식민지 배상금)을 좀 받아볼 생각인데, 중국이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경제건설을 하려면 종잣돈도 필요하고…” 어쩌고 하면, 중국도 비록 김씨 세습독재정권의 검은 뱃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우리가 도와줄테니 일본을 제끼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제 ‘대국 외교’로 국제규범을 지키면서 미국과 어깨를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미국과 잘 지내자면 북한과도 그 옛날 당 대 당의 ‘공산주의 형제국’ 개념에서 벗어나, 국가 대 국가 관계의 규범에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하필이면 센카쿠 분쟁에다 극우들이 설치는 마당에 왜 지금 이 시점에 일본을 끌어들이려 하느냐며 속이 편치 않을 것이다. 반면, 북한은 중-일 간 갈등이 고조될 때 틈새를 이용해야 이익이 커진다.    


북한은 미국과 먼저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한미의 대북공조로 이빨도 안 들어가니까 포커판의 ‘조커(joker)’ 일본을 먼저 끌어들인 것이다. 중-일 갈등은 북한의 선군주의 노선이 놀기에 괜찮은 외부환경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핵으로 위협하고 두들겨 패려고 하면 겁을 먹고 대북유화정책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박근혜 정부도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룡해가 중국에 가서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문제 해결”이라는 너무도 포괄적인 아젠다를 던져놓은 것이다.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을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미-북 회담, 미-중 회담, 남-북 회담, 미-중-북 회담, 남북미중 회담, 그리고 6자회담 등이 있다.


또 ‘관련 문제’라고 하면, 물론 북한 핵문제가 핵심이지만, 북한이 9.19공동성명 및 미북 후속회담을 부정할 경우 상황은 또 복잡해진다. 북한은 되든 안 되든 핵군축 회담, ‘先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포기 재확약’ ‘조선반도 평화보장체계(평화협정)’ 등을 또 주장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번에 최룡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공’을 중국에 넘겨주었고, 이후 북한 관영매체들은 “북-중 관계는 여전히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핵-경제 건설 병진한다” 등으로 딴청을 부리면서 중국에게 “앞으로 잘해보시라”며 북한식 압력을 넣은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북한이 지금 외교적으로 고립은 되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 갈길 간다”는 메시지를 외부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내놓은 ‘6자회담 등 다양한 대화와 협상’에 대한 ‘요리(해석)’는 먼저 중국이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키(key)를 중국이 쥐게 되었다. 이어 6월 7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역시 포괄적인 표현으로 북한 핵문제 해법에 대한 대강의 윤곽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6월 말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국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북한문제 해결에서 한중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포괄적으로는 ‘한중 미래비전에 관한 협력’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베 총리의 방북 일정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눈앞의 경제 지원이 필요하고, 아베는 납치자 문제를 부각시켜 7월 참의원 선거에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의 방북이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6월 7일 이전이 되느냐, 이후가 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대남·대중 목소리도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6월 7일 이전 아베가 먼저 방북하고 북한이 일본의 경제지원을 받게 된다면 한국, 중국의 대북 지렛대는 단기적으로는 다소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6월 한 달 동안 동아시아 외교전이 치열해진다. 동아시아 각국의 리더십이 바뀌고 처음 시작되는 외교전이다. 북한문제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도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문제는 북한이다. 김정은 정권은 어떻게 될까?


지금은 김정은이 중-일 사이에서 ‘전술적 잔재주’, 정확하게 말하면 ‘앵벌이 외교’를 하고 있는데, 이 전략이 과연 오래갈까? 결국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고, 중국으로부터는 신뢰를 더 잃게 될 것이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현실주의 국제정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중시할 것이다. 북한문제는 점점 대한민국의 힘과 역할이 커지고 있다. 지금부터는 정말 우리가 잘해야 한다. 우리가 잘못하게 되면, 그 빈자리에 다시 미국과 중국의 힘의 훨씬 더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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