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희호 초청하고 안 만난 것은 ‘결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이뤄진 북한 방문이었던 만큼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한 방북이었다. 김정은과의 만남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여사의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됐던 것은 이번 방북이 김정은의 초청에 의한 방북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4일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친서에서 “다음해(2015년) 좋은 계절에 여사께서 꼭 평양을 방문하여 휴식도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문건을 통해 공식적인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이다. 따라서, 이 여사가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은이 잠시라도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상식 수준의 일로 생각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 여사를 끝내 만나지 않았다. 김정은 면담은 커녕,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한다는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조차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이 여사의 방북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것은 맹경일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전부였다.

김정은은 이 여사를 안내한 맹경일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통해 “이희호 여사님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며 “여사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해드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여사의 방북을 그렇게 환영한다면, 평양 방문을 정식 초청까지 한 입장에서 잠시라도 짬을 내 이 여사를 만날 수 없었는 지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일은 초청한 사람의 기본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김정은 초청은 의례적인 것이었나

김정은의 지난해 12월 초청은 다분히 의례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 김정일의 사망 3주기를 맞아 이 여사가 조화를 보내온 데 대해 답신을 보내는 과정에서 “한번 왔다 가시라”라는 가벼운 인사말을 덧붙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관계도 안 좋은 상황에서 이 여사가 정말 오겠다고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이 여사를 만나는 것이 실익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아랫 사람을 시켜 형식적인 접대를 했을 수도 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이희호 여사와 김정은이 만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진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이 여사의 방북이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가 되려면, 남쪽과 북쪽 사이에 관계 진전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 여사와 김정은이 만났다고 해도 단순한 이벤트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이 김정은의 초청으로 방북한 이 여사를 이렇게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 여사에 대한 결례도 결례지만, 친서로 초청해놓고도 상대를 만나지 않는 김정은의 이상한 행동을 부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인데, 김정은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북은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로 작용하기는커녕 북한에 대한 실망을 크게 하는 계기가 됐다. 광복 70주년 행사도 남북이 따로 하게 된 마당에 곧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인 을지연습이 시작되니 당분간 남북관계는 더욱 냉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도 한반도의 안보상황 관리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