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 대북정책 ‘공세적 전환’ 필요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고 만물을 지푸라기 강아지로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자연은 특정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나이 70살의 김정일은 한국 남자 평균수명 76세에 훨씬 못 미치는, 북한주민의 평균수명 69세와는 비슷한 나이에 죽었다. 김정일이 누렸던 특별의료, 특별음식, 특별주거, 그리고 온갖 사치를 북한인민 다수의 비참한 생활상과 비교하면 ‘제 명에 못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불현듯 찾아온 김정일의 죽음을 유럽 각국은 ‘기회’라고 아예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잘 죽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북한주민은 충격적인 애도의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진정으로 김일성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들의 태도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정일이 대를 잇자 북한을 휩쓴 것은 기아였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행군을 끝마치지 못하고 죽은 자가 200만에서 300만 명이었다. 그리고 이 고난은 분명 인재였다. 김정일이 배급제에 익숙했던 북한주민에게 배급을 끊고도 동시에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 조직지도부에서 시작한 후계자 수업에서 김정일이 배운 것은 권력투쟁과 용인술, 선전 책임자가 되어서 배운 것은 상징조작이다. 그리고 이 양자로부터 나온 것은 스타 대접을 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과대망상이다. 여기에는 김정일 스스로 배우 최은희에게 ‘O자루’라고 묘사한 자신의 체구에 대한 콤플렉스도  섞였을 것이다.


결국 김정일이 권력을 거머쥐고 북한에서 한 것은 통치가 아니라 통치놀음이었다. 그러나 이 통치놀이를 통해 북한인민의 삶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한 모든 것은 즉흥적 발상과 자기과시욕에 불과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핵개발 역시 세계의 이목을 평양에 집중시켜 김정일의 자기과시욕을 만족키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북한인민의 삶에는 기여한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 핵심은 그가 먹여 살릴 수 없는 북한인민의 2/3는 방치하되, 수용소와 공개처형을 통한 폭정으로 반항의 씨를 없애는 것,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기득권층을 정권의 운명과 이해를 같이하는 층으로 만드는 것, 그를 중심으로 한 권력의 핵심층은 벤츠 등 각종 사치품으로 매수하되, 필요하면 무자비한 숙청과 수용소행을 통해 충성을 강요한 데에 있다. ‘광폭(廣幅)행보’라는 말과는 달리 김정일은 인민의 삶을 위해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라곤 전혀 없는 자였지만, 수령체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역으로 김정일식 통치방식의 어느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수령체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II.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미래의 비젼이라고는 전혀 없던 김정일이 죽은 지금, 북한에 어떠한 변화가 언제 어떤 규모로 올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북한에 변화가 오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우선 29세에 불과한 김정은이 김정일과는 달리 현 상태의 유지를 전략적 목표로 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라, 깨진 바가지처럼 초라한 신세가 된 북한을 현 상태로 40~50년을 더 끌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를! 이 경우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한 일이 없는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는지, 얼마나 큰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그 어떤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였는지, 마치 공사를 중단한 평양의 유경호텔처럼 퇴락해갔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즉 이번에는 북한인민의 존경이 남아있던 김일성이 죽었을 때처럼 유훈통치의 조건은 생각만큼 확고하지 않으며, 이미 김이 빠져버린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걸기’도 북한인민을 지속적으로 결속시킬 수 있는 힘이 없음을 북한의 임시지도부가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의 권력층은 현 상태의 타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개혁개방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시도한들 지속성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다른 한편 개혁개방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령체제와 그에 기생하는 기득권층의 기반을 잠식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북한 권력층 내부의 노선갈등과 이에 따르는 권력투쟁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만약 김정은이 ‘우리식대로 살자, 굶어 죽더라도…’라는 김정일의  노선을 선택한다면, 즉 아버지의 선행(先行)을 귀감으로 삼아 유훈통치를 시도한다면, 유훈과 현실과의 괴리에 후계자 안착 자체가 좌초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김일성이 죽었을 때와는 달리 김정일의 죽음은 유훈통치의 기반을 객관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점은 김정일에 대한 평양주민의 애도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차례가 되면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우는 것이 마치 시험을 보는 것 같다.


따라서 북한의 임시지도부가 김정일의 유훈을 강요하고 북한인민이 따르는 시늉을 하더라도, 결국 북한의 모든 계층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면서 수령체제에 대한 무관심, 부패와 배금주의가 판을 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런 상황일 수도 있다. 이럴 때 김정일의 해외비자금을 관리하던 자가 ‘먹튀’를 한다 해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즉 북한체제의 원심분리가 가속화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북한의 임시지도부가 현 상태 타파를 목적으로 설정하더라도, 핵무장을 한 북한의 상황타개 방향이 평화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모험주의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III
따라서 우리는 김일성의 죽음과는 달리 김정일의 죽음을 ‘북한체제의 단층(斷層. 틈이 갈라져 서로 어긋나는 것)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인다. 그것이 체제붕괴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체제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할 책무를 부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상황은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관심은 핵개발 동결과 핵유출 방지이고,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 중국은 북한을 자국의 영향권 안에 놓아두는 것, 러시아는 북한경유 가스관 건설이나 과거에 누렸던 북한에 대한 특별한 지위에 대한 향수 등 자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북한체제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없거나 미약하다. 북한체제의 변화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유럽 국가들만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을 뿐이지만 이들이 북한에 갖고 있는 영향력은 미약하다.


다른 한편 남한 내 사정도 그렇게 밝지 않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에 이런 역사적 단층상황을 맞았다. 다른 한편 종북좌파 정당이 참여하는 야권연대가 총선, 나아가 대선 승리를 할 가능성이 몇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들은 김정은 체제가 안착하고 유지되도록 과거 김정일 정권시절을 훨씬 능가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요구할 것이다. 실제로 ‘고난의 행군’시절 김정일 정권을 붕괴로부터 건져준 것은 햇볕정책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는 햇볕정책이 북한의 현 상태 유지를 더 이상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사라졌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임기 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외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바로 소통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열강들과는 물론, 유럽 각국, 유엔과의 협조를 통해 한국이 북한인민의 생활개선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그 실행방법을 북한의 임시지도부와 상의할 수 있는 채널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한편 한국의 대북정책의 절반은 항상 대남정책이었다. 현재 좌파의 지속적인 선동과 공세로 이명박 정부하의 모든 국정이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대북강경책을 펴서 남북의 모든 관계가 망가졌다는 것이 좌파의 주장이다.


이러한 사태가 오기까지에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능력 부재에도 그 책임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국민과의 소통을 멀리하고 있다. 이점은 광우병 촛불시위, 천안함 폭침 그리고 한미FTA까지 일관된 현상이다. 온라인을 좌파에게 빼앗겼다면 오프라인에서라도 대대적인 소통시도를 했어야만 했다. 소통부재에 대해서 국민의 관심 영역에서 한참 후순위에 있는 대북정책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정권과 북한체제의 유지에만 도움이 되었던 좌파정권의 무조건 퍼주기를 중단함으로써 장마당의 활성화 등 체제변화의 사회적 토대와 체제변화의 필요성 인식에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분명한 점은 김정일이 핵개발과 대남도발을 통해 거머쥐고자 했던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죽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하에서 김정일 북한이 실패하였다는 점의 중요성을 한국 국민들은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의 죽음이 북한체제의 단층을 의미할 수 있다면, 이에 상응하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그들의 생존전략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내외적 소통을 통해 북한의 체제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예상되는 북한 내부의 노선갈등에서 체제붕괴 없이도 체제전환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거꾸로 체제전환 없이는 체제붕괴가 필연적임을 알려야 한다. 북한을 달랜다거나 그 어떤 못된 행동에도 껴안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북한에게 과거와 미래의 정확한 대차대조표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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