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이 2012년 사들인 호화 사치품이 무려 6억 4580만 달러(약 6890억 원)에 달한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추산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식량난 해소에 한 해 1억 5000만 달러가 필요하다. 호화 사치품 금액이면 북한 주민 4년치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일 시대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호화 사치품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이른바 ‘선물정치’를 통해 당과 군의 핵심간부들을 관리하고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일반 주민들에게도 ‘선물정치’를 펼쳐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리더십을 보완하려고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 정권의 ‘선물정치’는 김일성 집권 초반부터 시작됐지만 김일성 시대에는 ‘선물정치’라는 용어가 없었을 정도로 선물이 김정일, 김정은에 비해 조촐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살림집이나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제공했다. 측근들뿐만 아니라 북한 전역의 유공자, 핵심 노동 당원, 노력영웅, 근로영웅 등에게도 김일성 이름이 적힌 ‘존함시계’ 등의 선물을 제공했다.
김정일 시대에 들어 본격적인 ‘선물정치’가 시작됐다. 고가의 사치품들을 당·정·군 간부들에게 집중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입품을 보면 벤츠·볼보 등 고급 자동차, 스위스 시계, 덴마크 캐비아 등 김일성 시대와 비교해 선물의 종류도 다양화됐고, 더욱 고가의 사치품들을 선물했다.
군단장, 사령관 등과 같은 군 고위간부들에게는 금으로 도금된 권총을 선물하기도 했다. 특히 김정일은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영화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영화배우와 가수 등에게도 고가의 사치품들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8년을 기점으로 김정일 건강이 악화되자 선물정치도 약간의 변화를 보였다. 고가의 사치품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골프용품, 위스키, 화장품 등 사치품의 수입이 증가했다.
이는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소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기보다는 좀 더 많은 간부들에게 선물을 줘 세대교체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선물정치’는 더 확대됐다. 2011년 북한의 사치품 수입은 5억 8482만 달러인데 김정은 집권 1년차인 2012년에는 6억 4586억 달러로 약 6104만 달러가 증가했다.
김정은 시대에는 김정일 시대와 달리 사치품 품목도 주류, 음료, 향수, 화장품, 핸드백, 가죽제품, 모피, 인조모피, 양탄자류, 전기기기, 음향·영상설비, 차량 및 부품, 시계, 악기 등으로 다양화됐다.
이와 관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데일리NK에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선물정치’는 더 다양화 되었다”면서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경험한 김정은의 영향으로 선물이 보석, 가죽 등 고가의 서양물품이 늘었으며 이로 인해 수입액도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 소장은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선물정치’가 관례로 굳어져 바라는 손이 많고 김정은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선물정치’를 펼 것”이라면서도 “현재 북한 경제사정을 본다면 ‘선물정치’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고위 탈북자도 “김정은은 태양절(김일성 생일) 등 북한의 명절과 애육원 방문 등으로 아이들에게도 과자, 강정 등의 선물을 자주 준다”면서 “그러나 선물의 질이 좋지 않아 주민들은 비아냥 거리지만 아이들은 이 선물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아이들에게도 ‘선물정치’를 펼치는 것은 주민들의 인심을 얻어 부족한 정통성을 얻어내기 위함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