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도 ‘권력 절대독점’이 가능한가?

북한은 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했다.


과거에 노동당에서 ‘제1비서’는 위원장이었다. 1960년대 말 노동당 직제가 위원장제에서 비서제로 바뀔 때, 사로청 위원장이 ‘사로청 제1비서’로 되었다. 따라서 김정은이 이번에 추대된 ‘제1비서’는 ‘총비서’와 권한이 같다. 


말하자면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영원한 국가주석’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국방위원장’을 맡은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른바 ‘어버이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는, ‘조선노동당스러운’ 프로파간다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만약에 이번에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아니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제1비서’로 되었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이 제멋대로 고쳤던 ‘당총비서’와 다르고, 당이 정치국-비서국의 지위와 역할에서 그나마 다소 제꼴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됨으로써,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승계는 역시 우리가 예상한 대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김정은이 제1비서라고 해서 ‘총비서’ 권력 승계를 못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지난번 이 칼럼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미 ‘수령의 후계자’와 ‘영도자’로 내외에 천명된 김정은이 당직과 국가직을 승계하는 데는 원래부터 문제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떤 모양새를 갖출 것이냐’가 관심거리일 뿐이었다. 


김정은이 당 수반이 된 것은 시기적으로 김일성 100회 생일과 강성대국 진입의 해가 걸린  2012년 4월15일 전후가 가장 큰 의미와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당직과 국가직을 너무 오랫동안 공석으로 두면, 비록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외국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당규약 30조에 따르면 당대표자회는 당의 노선과 정책 결정,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목적으로 열리는데, 김정은 제1비서의 노동당도 ‘주체의 선군혁명,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로 김정일 시대와 똑같다. 따라서 당의 주인이나 노선이 바뀐 게 하나도 없는 만큼, 향후 김정은의 대내외 생존전략도 바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조선노동당’은 언제 변할 수 있을까? 또 그들은 과연 스스로 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스스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노동당 내부에서 참지 못할 갈등과 균열, 또는 외부의 강력한 힘에 의하지 않고는 노동당의 주인과 노선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구 공산권에서 당 내부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그것은 대략 노선투쟁을 형식으로 하고, 권력투쟁을 내용으로 할 때 변화가 전개되었다.  


스탈린 사망후 이른바 ‘개인숭배’ 문제와 ‘과도기 논쟁’이라는 노선 투쟁이 있었고, 물밑에서는 권력투쟁이 전개되었다. 중소 이데올로기 갈등도 겉으로는 노선 투쟁, 물밑에서는 공산권 내부의 주도권 문제를 둘러싼 권력투쟁이었다. 


원래 공산권의 권력투쟁은 무자비했다. 반대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 스탈린이 있었고, 그가 사망한 후 베리야 등 3인은 3년간 권력투쟁을 벌였다. 1억명 이상 희생자를 낸 문화대혁명도 촉발제는 마오쩌둥의 권력투쟁이었다. 마오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혁명동지 류샤오치도 끝내 죽였다.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뒤질 게 없었다. 김일성은 1953년, 55년 박헌영과 남반부 출신들을 모조리 통제구역에 가두고 죽였다. 이들 중에는 나무에 묶인 채 1주일 가량 굶긴 군견(셰퍼드)들의 밥이 된 경우도 있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거의 실각할 뻔했던 김일성은 1958년 제1차 당대표자회 직전까지 부하들인 빨치산파(군부파)를 내세워 소련파 연안파들을 은밀하고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2시∼4시 사이에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전통’과 상대의 저항을 원천 무력화하는, 현재 보위부의 심리전 기법도 아마도 이 시기에 체계화되지 않았나 싶다. 


김정일은 1966년, 1967년 갑산파 사건과 5.25 교시로 촉발된 지식인 대숙청 시기 정치수업을 본격 개막했기 때문에 권력투쟁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공개처형을 할 때도 동원된 군중들이 극도의 공포감을 갖는 방식을 택했다. 테러, 차량사고 위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잇따랐다.


청진 6군단 사건 때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장성택은  헬기를 타고 지휘하고 김영춘(전 인민무력부장)이 군인들을 데리고 관련자 수백명을 창고로 몰아넣어 집단 사살했다고 한다. 식량난 시기에 발생한 황해제철소 사건 때는 농성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탱크가 그대로 덮쳐 깔아뭉갰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국가보위부 내에서 자신의 추종세력을 만든 류경 부부장은 김정일이 죽기 전 도끼로 은밀히 살해되었다고 한다. 또 김정은은 불순분자들을 박격포를 쏘아 박살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권력투쟁과 권력감시를 위한 폭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방식으로 벌어진다. 그 근본 이유는 뭘까?  


필자는 생전의 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권력투쟁이 자본주의 체제와 달리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전개되는지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다음은 그 답변이다.


“소련을 비롯하여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현실적으로 지탱해준 3대 기둥은 배급제와 무상치료, 무상교육이었다. 대부분이 ‘평등한 가난’ 속에 살았지만, 그나마 이 세 가지가 해결되면 사람들의 요구(욕망)는 다른 것을 향하게 된다. 지식과 교양이 좀 있는 사람들은 독서, 연극, 음악회 등 문화적인 것을 원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제도적으로 부화(간통)사건을 엄격히 통제했지만, 인간의 본능인 성욕과 관련한 사건들이 많았다. 나머지 중요한 욕망이 권력욕망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권력을 얻으면 사회적 명예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것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권력투쟁이 무자비해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 중국은 마오 시기와 많이 다르다. 현재의 중국을 구공산권 사회와 동일시할 수 없다. 하지만 ‘유물론자’들의 전통적인 권력투쟁 DNA도 변이(變異)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포탄을 실은 트럭이 적발되었는데, 그것이 충칭시 보시라이 당서기 사건의 권력암투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모든 것이 변화하지만 가장 늦게 변하는 것이 인간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체제는 1978년 이후 중국이 걸어온 개혁개방의 길을 반대로 걸어간 결과이다. 김정일은 철저히 문을 걸어 잠그고 수령절대주의와 선군정치로 거꾸로 걸어가서 과거의 스탈린 체제마저 추월했다. 따라서 1978년을 기준으로 2012년까지를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34년X2 , 즉 지금 북한은 중국에게 68년이나 사회발전이 뒤떨어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김정일 시기에 권력을 보존하기 위한 각종 감시와 통제가 얼마나 강력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사회도 90년대 식량난 이후 많이 변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인민들의 먹고 사는 방식이지, 북한정권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3대 세습 권력도 변하지 않았고, 또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사회가 변화하면 권력 지도부는 그 변화의 수준에 맞게 사회관리 방식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체제 생존을 위한 대내외 전략이 변한 게 없다. 


2012년 4월 김정은 정권은 중요한 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11일 당대표자회, 13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회, 12∼16일 장거리 로켓 발사, 15일 김일성 출생 100회 기념일,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 등을 통과한다. 하지만 ‘2012년 4월’을 통과한 이후에도  북한정권의 기본 노선이 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며칠 사이 언론에는 2012년 4월의 북한에 관한 분석기사와 전문가 칼럼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필자는 김정은이 국방위원장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왜 그렇게 주목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김정은은 이미 수령의 후계자로서, 김정일이 죽은 후 ‘당과 인민, 군대의 영도자’로 내외에 객관화되었다. 지금 북한에 김정은 외에 당 수반, 국가 수반이 될 사람이 누가 또 있나? 또 이번에 되든, 다소 늦어지든 북한에서 그것이 무슨 본질적인 의미가 있나? 또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든, 안되든 그의 권력행사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또 국방위원장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놓고 그런 ‘퀴즈’를 잘 맞추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차라리 이번에 중앙당 조직비서(조직지도부장)가 누가 되느냐, 아니면 그냥 공석으로 두느냐, 군 총정치국장이 누가 되느냐, 또 그것이 권력내부의 역학관계에서 어떤 함의를 갖느냐에 관심을 갖는 게 더 전문가다운 세밀한 관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도 북한문제를 놓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감당해야 할 일, 우리 국민에게 닥칠 버겁고 힘든 문제들을 고려하여, 좀더 본질적인 영역을 천착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2012년 4월 북한에서 진행되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은 대부분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미사일 실험, 핵실험 목적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정권은 김일성 출생 100회(4월 15일)와 강성대국 원년, 4.25 창군 기념일을 기해 ‘위대한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힘’을 내외에 크게 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치 오래 전 TV에서 상영된 아동드라마 ‘헐크’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옷을 찢고 근육을 과시하며 괴성을 지르듯, 김정은 정권은 광명성 3호를 쏘면서 만방에 힘을 뽐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2.29 베이징 합의’를 금세 깨버리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는 것은 북한식 사고방식으로 볼 때는 합리적이다. ‘김일성 출생 100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강성대국 원년도 물론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간적 개념에서 ‘2012년 4월’은 이번에 한번 뿐인 것이다. 


노동당 규약의 첫 문장은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로 되어 있다. 조선 인민의 당, 노동당 당원의 당이 아니라 ‘김일성의 당’이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서문의 첫머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로 되어 있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 국가이다.


당-국가 체제의 형식과 내용이 이럴진대, 2012년 4월을 맞은 북한정권이 그까짓 미국의 ‘영양 24만톤’을 받든 안받든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만약 북한체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2012년 4월과 유사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해는 앞으로 100년 뒤인 2112년 4월 15일 김일성 출생 200년 때나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 북한정권은, 말하자면 전당 전국 전군이 ‘100년만에 처음하는 총화’를 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면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며 경제제재를 받고 미국과의 대화도 끊어지며 중국도 싫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물론 당분간은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정권에게 고립이나 제재쯤은 문제가 아니다. 시쳇말로 북한정권이 이런 ‘장사’ 처음 하는가? 지금까지 수차례 국제적 고립에, 경제재제에, 중국이 진짜 화를 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이 북한정권의 기본 속성이다. 미국과의 약속이 깨지든 말든, 중국과의 약속을 뒤집든 말든, 북한정권에게 ‘협상’이란 자신들이 유리할 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북한이 손해보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경제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북한정권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를 가르는 기준은 경제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사상적 군사적 외교적인 기준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영양 24만톤’과 ‘사회주의 조국의 시조(始祖)’ 김일성  100회 생일은 비교의 차원이 아예 다르다.


다만, 약간의 의문이라면 북한이 그렇게 빨리 약속을 뒤집을 바에야, 2.29 베이징 합의는 왜 해줬느냐는 것인데, 그 이유는 어떤 심각한 내부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과거보다 정교하지 못한 탓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특히 대외, 대남관계에서 울퉁불퉁한 비균질성을 보여왔다. 2010년 5월 김정일이 중국 가서는 미리 준비해간 <홍루몽>도 상연하지 않고 원자바오 총리가 주재한 식사자리에서 밥 먹다가 열받아서 귀국한 사건도 있었다.


이번에 베이징 합의 파기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는 이익이다. 북한으로서는 미사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위성’에 불과하고, 농축우라늄 일시중지와 IAEA 감시요원 복귀 등 미국과의 합의는 나중에 ‘복구’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할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마땅치 않다. 북한의 대미 압박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 구조는 2009년과 큰 차이가 없다.


‘광명성 3호’ 미사일 실험후 미국, 중국 등이 유엔안보리 성명을 내고 당분간 제재를 시도하게 되겠지만 중국이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현실에서 입증된 것이다. 중국도 지도부 세대 교체 중인데 북한에 압박을 가할 여유가 있겠는가? 또 이같은 사실을 북한이 모를 리 있겠는가. 북한이 하는 짓이 잘못된 건 분명하지만 별 방법이 없는, 다시 말해 손이 묶여 대책이 없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또 북한은 오바마가 오는 11월 대통령 재선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미국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압박해놓고, 유리한 입장에 선 다음, 적절한 시기에 마치 시혜라도 베풀듯이 유화적으로 대미 협상에 나서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2007년 코너에 몰린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여 10.3 합의를 받아낸 사례도 있다. 


따라서 여러 내외적인 조건을 고려하면 베이징 합의 ‘일시 파기’는 북한에게는 이익인 것이다. 결국 북한은 2012년에 ‘핵 보유국 지위’에서 미국과 평화협정 담판을 강력히 압박하든가, 아니면 이를 매개로 남한 내에 ‘평화냐. 전쟁이냐’의 구도를 만들어 북한정권에 유리한 정권을 창출하는데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에 펄펄 뛰며 가장 화를 내야 할 당사자는 물론 한국이다. 만약 한국이 이스라엘이라면 이미 모사드가 모종의 ‘작업’을 끝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와 국회와 국민들의 정신상태로 그런 ‘작업’을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적어도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국회, 국민들이 ‘제정신’을 갖고 효과적으로 대처해왔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크든 작든 우리의 잘못에 대한 후과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도 ‘공짜’란 없다.  


한국사회는 1987년 이후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또 한편으로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해왔다.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성숙해가는 이면에 무질서 깽판주의도 도를 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종의 사상적 변태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종북친북 세력을 제외하고 최근에 나온 유파들이 바로  ‘나꼼수’의 김용민 류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도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출몰한 히피, 마약, 프리섹스 그룹 같은 단순 일탈주의 변종들이 있었다. 이들은 말하자면, 한 사회공동체의 법치와 불법, 권위와 반권위, 공동체에 대한 권리의식과 책임의식의 조절을 맡은 ‘민주주의 괄약근’이 무디어진 상태에서 속옷 옆으로 잠시 삐져 나온 ‘정치 설사’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같은 설사도 오래 갈 경우 공동체의 안정을 심각히 해칠 수 있다.


문제는 향후 다가올 북한문제의 심각성을 이들은 모르고 있고 또 설명해봐야 알아들을 수준도 못되기 때문에, 한국사회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지만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선의 방법은 이들 그룹이 적어도 정치적인 영향력은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책임있는 제1 야당이 이러한 필터링 기능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에 따른 효과적인 제재 방책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제1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핵 해결에 대해 안전한 묘수를 찾아야 하는데, 아마도 이번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북한 핵 대비’에 관하여 각 정당들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국민 여론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자, 쓸데 없는 말이 많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김정은 체제도 김정일체제와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권력 안보’ 때문에 더 선군노선 지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개혁개방으로 다소 방향을 틀고 싶어도 권력 내부를 단속하느라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했던 것은 당총비서,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위가 아니었다. 이른바 수령의 후계자로서, 영도자로서 당 군의 엘리트 대략 250명에 대하여 완전히 감시 통제 압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정치를 본격 시작한 1964년 이후 스스로 구축한 능력이었다.


이번에 김정은이 ‘제1비서’ 그리고 국가 수반직을 승계한다고 해서 권력 승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형식으로서의 ‘권력 승계’가 되었을 뿐이다. 내용적으로 권력 승계는 이제 시작이다. 김정은이 여기에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앞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지금 북한정권 내부를 잘 관찰해야 할 대목은 권력의 독과점 또는 분점 문제이다. 다시 말해, 공식출범하는 ‘김정은 시대’를 맞아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 ‘권력의 파이’를 누가 많이 가지느냐, 아니면 어떻게 나누느냐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특히 권력을 갖게 되면 명예와 돈, 이권 등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달리, 북한체제는 김정일의 권력의 절대독점 시대에서 김정은의 독과점 또는 권력의 분점 시대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형식의 면에서는 김정은에게 절대권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절대권력 시대는 김정일로써 사실상 끝났다.


이미 물 밑에서는 권력 독과점, 분점 문제를 놓고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젊은 김정은은 아버지처럼 권력의 절대독점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북한의 권력투쟁과 내부 분란은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