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모 ‘고영희’ 우상화 가능성 있나

김정은이 28일 열린 북한의 3차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후계자로 공식화됨에 따라 생모인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사업도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최근 들어 김정은이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사실을 주입시키기 위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혈통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생모 김정숙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성장한 김정일은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후 곁가지 투쟁의 일환으로 김정숙 우상화를 시작한다. 이후 문맹자에 항일빨치산투쟁에 참여한 전력에 불과했던 김정숙은 하루아침에 가장 본받아야 할 여성상이 됐다.



이후 김정일은 ‘항일의 여성영웅’, ‘혁명의 어머니’ 등의 찬양 구호를 만들고 김정숙의 이름을 붙인 지역과 대학을 만드는 등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한다.



2000년대부터는 각 학교에서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 교육도 시작됐다. 종래 대학의 전공학과에서만 실시해오던 ‘김정숙 혁명역사’ 과목은 전 학교로 확대되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단위에서 교육받도록 했다. 각 대학들은 2000년부터 ‘김정숙 노작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부자 우상화에 핵심적으로 활용된 ‘구호나무’에도 김정숙의 이름이 등장했다.



구호나무는 1930~1940년대 소위 ‘김일성 항일혁명 투쟁’ 시기에 혁명대원들이 나무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찬양하는 글귀를 새겨놓은 것을 발굴했다는 것으로 북한지역에 약 1만 2천여 개가 발견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예술분야에서도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 선전이 진행됐다. 미술 분야에서는 ‘백두산 3대 장군’을 찬양하는 작품이 대거 나왔는데, 여기서 ‘백두산 3대 장군’은 김부자와 김정숙을 말한다. 문화와 영화, 무대예술 분야에서는 이들에 대한 흠모와 숭배를 담은 작품, 음악에서는 군인과 주민의 충성심을 담은 곡들이 창작됐다.



이처럼 김정일이 김정숙 우상화를 통해 세습의 정당성을 꾀하려 했듯이 김정은도 생모 고영희의 우상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할 것이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으로 북송교포 출신이다.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남한에서 흔히 말하는 ‘기쁨조’로 활동하다 김정일의 눈에 띄었다. 1975년경부터 사망한 2004년까지 김정일과 동거하며 사실상 정부인의 역할을 했다.



고영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정철(1981년생)과 정은(1982년생), 여정(1987년생)을 낳았다. 1998년부터 군부대 등 김정일의 현지시찰에 동행하는 등 퍼스트레이디로 뿐 아니라 김정일의 정치적 동반자로써의 역할도 수행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정은으로 낙점한 데는 고영희에 대한 총애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도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군 내에서 은밀히 시작됐던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사망 전까지만 해도 인민군 강연 자료에서는 고영희가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통하기도 했지만 사망 후 모든 우상화 사업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정일은 생모 김정숙의 고향인 회령을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부르며 특별 관리를 해 오고 있다. 김정일은 3대 세습이 본격화 된 지난해 2월 생애 처음으로 회령을 직접 방문해 김정숙의 생가와 동상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는 북한에 고향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도착했던 원산을 우상화 선전과 연결시킬 가능성도 높다.



한 탈북자 단체는 북한이 김정은에 대한 후계 세습의 일환으로 강원도 원산시를 성역화하기 위한 작업을 지난해 말부터 시작했다고 전하기로 했다. 1단계로 ‘정치범 출소자’ ‘정신불구자’ 등 성분이 불순한 사람들에 대한 선별작업에 착수해 원산의 인구를 현재 30여만 명으로 10만 명 수준으로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김정은의 생가가 조성중인 평양 강동군을 김정은의 제1의 고향, 원산을 제2의 고향으로 선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도 김정일이 지난 4월 원산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의 수행을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숙의 경우 수령인 김일성의 아내로써 항일혁명 동지라는 의미가 있었던 반면 고영희는 예술단 출신의 애첩이라는 점에서 고영희의 존재 자체가 의도적으로 묻혀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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