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4년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키로 한 2010년 10월 28일, 세계 언론은 김정은의 공식등장에 주목했다. 2007년부터 후계자로 지목됐던 김정은에 대해 북한 당국이 외부 관찰을 철저히 차단해 왔던 터라 그에 관한 소소한 모든 것들(이목구비, 체형, 복장, 헤어 스타일, 표정, 앉은자세 등)은 뉴스(news)로 조명됐다. 김정은의 공식 데뷔는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의 대한 관심은 앞으로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1980년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까지 십 수 년을 후계수업을 받아왔던 것에 비해 김정은의 일천한 후계 경력은 모험적인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7살의 어린 김정은의 공식 등장은 당면한 북한 현실에 오버랩돼 불안정 요인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의 출생, 성장, 후계과정 등을 집중 조명한 중앙일보 이영종 기자의 『후계자 김정은』(출판사 늘품플러스)은 독자들에게 다가올 ‘김정은 시대’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길라잡이’로 추천할만하다.
20여년 가까운 그의 기자생활 경력이 말해주듯 책은 오늘의 ‘닫힌 북한’을 보는 창(窓)이 될 만한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일-김정은 공동통치시대’, 즉 가까운 북한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갖는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책은 김정은과 후계 조각가인 김정일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세세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으며, 북한사회를 줄곧 지켜본 관찰자들의 평가들도 종합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보다는 북한사회를 보는 유력한 시각들을 소상히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또 신문에 싣지 못했던 안보부서 담당자들의 당시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당시 정보당국의 정보력과 판단력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20여년 가까이 북한·통일 관련 뉴스를 생산해 왔던 그의 기자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에는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가 파리에서 사망해 시신이 평양으로 운구 되는 과정을 통해 김옥(김정일의 네 번째 여인)의 공식 등장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사정에 밝은 정보기관 핵심관계자의 말은 인용, “김정일의 특명을 받은 운구단이 평양에서 왔는데 놀랍게도 단장이 여자였다”며 “확인 결과 그 여성은 김정일의 또 다른 여인인 김옥이었다”고 소개했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악화 당시 국가정보원은 김정일의 사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면서 테스크포스(TF)를 가동했던 사실도 전하고 있다. 당시 한미당국의 감청망을 통해 김정일 병실 부관과 고위인사와 통화내용을 정보관계자의 말을 통해 “장군님 자나?”라는 물음에 부관이 머뭇거리자 “장군님 아주 자나?”라고 대답을 재촉하자 “그건 아닙네다”라고 답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왕관 쓰기까지는 험난한 길’ 구성에서는 김정은 후계의 불만세력, 북한의 최고권력 실세인 장성택과 오극렬간의 갈등, 퍼스트레이디 김옥의 후계구도 변수 가능성 등 김정은 후계의 불안요인들을 조명, 포스트 김정일 시대가 순탄치 않은 조건임을 시사했다.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 후계문제의 최대 변수를 ‘김정일의 건강’으로 보는 것같이 저자 역시 이 문제를 가장 큰 변수로 꼽았다. “미국이 2009년 말부터 한국 측에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한미연합훈련을 제안해 오는 것도 ‘김정일 수명’에 대한 판단이 한 몫하고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계문제에 최대 변수 중 하나인 김정일의 건강상태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북한에 관한 정보를 설(說)과 첩보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막연한 추정이나 기대 섞인 관측이 아니라 북한의 권력변화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정보축적을 토대로 한 대응 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3대 세습이란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나 고심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며 후계문제가 국제사회의 비판과 안팎의 저항과 도전을 받지 못하는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끝으로 “북한의 후계문제를 보는 우리 사회의 철학적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는 김씨 왕조의 3대세습 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김정일 통치시대를 넘어 김정은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작금의 북한사회 현실을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이영종 기자의 『후계자 김정은』은 베일 속 김정은을 직시할 수 있는 ‘길라잡이’로 충분하다.